우리의, 우리를 위한, 우리만의 결혼식

by 천소이

상황은 사람을 바꾼다. 난 결혼과 관련한 정보를 아는 게 없었다. 결혼식에 무심하게 살아왔던 난, 조급한 마음에 결혼 준비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앞으로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돈과 시간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평소 소비를 잘 하지 않는 데다가, 한 번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수명 기한이 다 할 때까지 버리지 못하는데, 결혼 한번 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구매 목록이 계속 늘어났다. 이게 필요하면, 저것도 있으면 좋다는 식의 이야기가 인터넷에 넘쳐 흘렀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돈이 줄줄 새어나갈 것 같았다. 필요한 것만 합리적인 비용으로 구매하고 싶었다. 광고 글을 걸러내고 진짜 내돈내산 후기가 담긴 결혼 준비 커뮤니티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예비신부들은 결혼과 관련된 여러 상품과 서비스를 비교하며 꼼꼼히 따졌다(자신을 예신으로, 상대방을 예랑이라고 부른다는 면에서 내가 본 글의 대부분은 예비신부들이 쓴 글로 판단했다). 어떤 예식장이 세련되고 연출이 아름다운지, 밥은 맛있는지, 계약서를 쓸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이것도 골라야 하고 저것도 골라야 하고 수많은 고민의 현장이었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마치 제 일인 것처럼 공감해주고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을 기꺼이 나눠줬다. 그들은 귀찮아 보이지 않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게 하소연하며 서로를 축하하고 응원했다. 그러나 내겐 그들이 가진 만큼의 에너지와 의욕이 없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닌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결혼식을 1년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식장 예약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시간대는 보통 예약이 꽉 차 있고, 지역이 어디든 손님들이 찾아가기 편한 곳은 애매한 시간도 자리를 잡기 힘들다고 했다. 예식장이 한두 개도 아니고, 요즘 다들 결혼을 안 한다고 하는데, 자리가 넉넉하지 않나 막연한 생각을 했다.


동네를 벗어나 대로변을 따라 걷다 보면 뜬금없이 예식장이 나타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나름의 역사가 있는 곳인데, 최근 추세에 맞춰서 리모델링을 했다. 산책 삼아 외부만 구경하러 갔다. 차려입은 티가 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식장 앞에 세워진 소형 밴에 차례로 올라타고 있었다. 근처 지하철역을 외치며 안내하는 기사들의 손짓에 맞춰서, 삼삼오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사라졌다. 주말마다 그 예식장 앞을 지나가면서,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사람들과 식을 보고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을 보며, 결혼을 안 한다는 통계와 내가 보는 풍경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1년 전에 식장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주변에서 결혼을 알리는 소식이 들리고 청첩장이 뿌려졌다. 결혼 관련 사업은 여전히 크고 화려해 보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결혼을 앞둔 커플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늘어나고 고급을 지향하는 홍보에 발맞춰 가격이 올라갔다. 인생의 행복한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이 세계를 시들지 않고 계속 푸르게 만드는 자양분이었다. 그 세계에 서 있는 나와 그를 상상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식의 모습인지 겹쳐 보고 결론을 내렸다. 그곳은 우리의 장소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맞는 결혼식 장소를 고르기로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야 하고, 밥은 맛있어야 한다. 우린 식에 어떤 꽃을 쓰는지보다 밥이 얼마나 맛있게 잘 나오는지가 더 중요한, 먹는 것에 진심인 커플이다. 소박한 분위기의 조그마한 레스토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게 밥을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우리가 상상하는 결혼식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딱 맞는 곳을 발견했다. 상담 예약을 잡고, 방문해서 레스토랑을 둘러봤다. 이미 그곳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린 커플이 여럿 있었기에 식을 어떻게 진행할지 이야기하기가 편했다. 층 전체를 빌려서 식을 진행하면 되고, 요리는 한 접시씩 코스로 나와서 손님들이 정성스레 대접받는 느낌이 들 거라고 했다. 홈파티처럼 직접 진행하거나, 레스토랑과 제휴 맺은 업체에 의뢰할 수도 있다고 했다.


위치와 식사,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일단 날짜를 잡고 예약을 했다. 예식장이 아니다 보니 1년을 기다릴 필요가 없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식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정하기 위해 담당자가 말한 업체에 연락해서 상담을 받았다. 전반적인 식 진행을 돕고, 스태프는 몇 명이 투입되고, 꽃장식은 별도인데 패키지로 하면 좀 더 할인이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상담을 마치고 우리가 직접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화로 장식을 하면 향기롭고 아름답지만, 우리가 정한 예산을 넘어서고, 화려한 장식은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고, 나의 예비신랑인 그가 친구 결혼식의 사회를 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앞에 나가서 떨지 않고 말을 잘하니 해볼 만했다. 우린 직접 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꽃장식은 화분 두어 개 정도 놓고 돈을 아끼기로 했다.


소심하고 무대 울렁증이 있는 나에겐 큰 난관이 되겠지만, 서로 힘이 되어주며 함께 헤쳐나가기로 약속한 그가 내 옆에 있다. 직접 사회를 보고 진행을 하면 긴장이 배로 늘어나겠지만, 오랫동안 생생히 기억할 우리만의 결혼식이 될 거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기로 했다. 식장을 잡았으니 결혼 준비를 거의 다 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잠시 기쁨에 취했다. 그러나 우리 앞에 ‘스드메’라는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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