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조금 괜찮아지는 마법의 문구
일기를 쓰고 필사를 한다. 무언갈 꾸준히 잘하지 못하는 내가 꾸준하게 오래도록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필사는 나의 언어를 조금 더 가다듬고 싶어 시작했다. 그때도 나는 조곤조곤 말하는 사람을, 담담하게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을 좋아했다. 작가가 된 것처럼, 마치 내가 그 글을 써내려 가는 것처럼 경건히 글자를 옮겨 적은 게 그 시작이었던가. 나의 언어들도 그들처럼 조금 더 단정하고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책의 한두 페이지를, 칼럼의 일부를 따라 적는다.
오늘의 필사는 박완서 작가님의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의 일부였다. 사회적 약자를 약자로만 두고 있는 우리 사회에 관한 짧은 글이었는데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 터라 옮겨 적으려 마음먹고 있었다. 책과 노트와 펜 한 자루. 한 자 한 자 옮기며 작가의 호흡으로 글을 읊는다.
박완서란 작가를 제대로 인지한 건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라디오에서다. 작업을 할 땐 종종 팟캐스트를 틀어 놓는데 거기서 작가님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마음을 잡은 건 "매사에 감사. 점심은 생선초밥으로 혼자 맛있게"라는 부분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작가님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도 일기를 쓰셨다고 한다.
"병원 가는 날, 퇴원 후 바깥나들이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되었는데 잘 다녀왔다. 원숙 원순이 같이 가서 혈액검사 X레이 사진 등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하고 나는 자신이 좀 생겼다. 집에 와서도 많이 앉아 있었다. 일기도 메모 수준이지만 쓰기로 했다. 워밍업이다.//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점심은 생선초밥으로 혼자 맛있게."
캐스터가 알려주는 작가님의 마지막 글에 나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봐야 했다. 느린 몸으로 천천히 거동을 하고 꼭꼭 씹어 초밥을 먹고 볕을 쬐며 이 날의 작가님은 그간의 고통에서 조금쯤은 해방되었을까. 살아나서 고맙다 여기는 사람의 식사는 얼마나 뜨거울까. 마지막까지 일상을 잘 살아보겠다 다짐하는 사람은, 쓰기를 멈추지 않겠다 다짐하는 작가의 글은 이렇게나 단단하고 찬란하다.
그때부터 나는 종종 되뇐다. 보통의 일상임에도 유독 힘에 부친다 느껴질 때, 홀로 끝없는 터널을 따라 걷는 것 같아 눈앞이 아득할 때,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아 그냥 다 던져버리고 멀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때, 나는 작가님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매사에 감사. 점심은 생선초밥으로 혼자 맛있게'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조금 위로가 된다. 나를 둘러싼 공기와 시간이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딛고 있는 바닥과 단단하게 조여있는 내 운동화,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과 하늘, 그리고 바람. 지금 내가 여기 이곳에 있구나, 완전히 잊고 있던 걸 깨달은 것처럼 파드드 놀란다. 깜깜한 터널 속에서 양지바른 툇마루로 나온 기분이 든다. 그리곤 그게 뭐든 조금 괜찮아진다. 그래, 많은 보통날 중 하나일 뿐이지. 어깨와 마음이 조금쯤 가벼워진다.
하늘을 한번 땅을 한번, 나는 괜스레 멋쩍다. 이 멋진 세상에 혼자만 버겁고 고되기 억울해 부러 훌훌 털어본다. 심통이 나고 속상한 나를 위해 맛있는 밥 한 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툭툭- 마음을 턴다. 내일은 생선초밥을 먹어야겠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