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 am Me Apr 06. 2021

내 친구의 남자친구의 친구의 여자친구의 직장동료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 (1)  - 만남 편


29살, 20대의 끝자락이었다.


3년간 솔로로 긴 공백기가 있었던 나는 20대가 끝나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소개팅을 주구장창 받았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로 몇 번 만남을 가졌던 직전 소개팅으로 진이 빠져있던 나는  "이 남자 만나볼래? 남자 29살"이라는 친구의 카톡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러겠노라 답했다. 연애 구직활동을 하고 있던 나를 위해 친구가 무려 다섯 다리를 건너 구해온 소개팅이었다.


"내 친구의 남자 친구의 친구의 여자친구의 직장동료" 가 바로 그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 사는지 아무 정보 없는 그에게 연락이 왔다. 몇 마디 하다가 말을 놓아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그러라 했다. 초면에 말 놓는걸 불편해 하는 나였지만,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이 사람과 그렇게 잘되리란 기대감도 없었고 지쳐있던 나머지 에너지도 없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달랐다.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 링크를 보내고, 함께 볼 영화를 예매했다. 점점 기대감도 생겼다. 토요일 점심에 첫 만남을 가진 우리는 밤 10시가 돼서야 헤어졌다. 나쁘지 않았지만 뭔가 조금 불안했다. 얘기해보니 사회생활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곰 같은 내가 능수능란한 사람한테 호되게 맘고생당하진 않을까 고민도 됐다.


정말 고민 고민하다가 두 번째 만남을 가졌는데 웬걸?


아예 다른 느낌이었다. 첫 번째 만남에서 느꼈던 '나를 가지고 너무 재고, 맘고생시키진 않을까?' 했던 고민이 이 말 한마디에 싹 사라졌다.


" 나는 너랑 있는 게 즐겁고 좋아.
 그래서 또 만나보고 싶어 "


카페에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던진 말이었다. 이 솔직한 감정표현에 내 마음의 경계심이 싸악 녹아내렸다. 그리고 이 사람이 믿음직스럽게 다가왔다.


그 후로 거의 여덟 번은 더 만난 것 같다. 이 사람이 만나보자고 했을 때 선 그러자고 대답을 못하고 만남만 길어져갔다.


두려웠다.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찾아 헤맸던 나지만, 갑자기 3년 만에 새로운 관계 안에 들어간다는 게 무서웠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남자 친구, 여자 친구라는 타이틀의 책임감도 느껴졌다.


질질 끌고 있는 형국이 미안하여 물었다 "내가 사귀자는 말에 답도 제대로 안 하고 이렇게 만나니까 답답하지 않아?"


돌아온 답변은 본인은 한 달이 걸리던 두 달이 걸리던 상관없으니 내 마음에 더 확신이 들면 그때 선택하라고.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사귀자고 해버렸다.


과거 고백을 받았을 때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을 때 오늘 바로 답을 달라거나, 거절하면 보지 말자는 등 협박 아닌 협박에 못 이겨 사귀기로 하고 서로 맞지 않아 한 달도 안되어 헤어진 적이 몇 번 있었다. 이럴 때 내 감정은 아직 그 정도로 올라오지 않았는데 상대방의 감정 레벨에 내가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 감정의 속도를 이 사람의 기다려주는 배려심에 크게 반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지금도 이 사람의 무한한 배려심에 감탄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민대리는 연애 안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