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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atever Nov 16. 2022

전 용기를 낸 게 아니라, 살려고 발버둥 친 것뿐이에요

정교사를 관뒀다는 이야기는 타인에게 신기하게 들리는 주제인 것 같다.

이때 대표적인 리액션은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용기 있어요!'와 '그 좋은 직장을 도대체 왜..!'였다.

난 첫 번째 리액션에 대해 '전 용기를 낸 게 아니라, 살려고 발버둥친 것뿐이에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난 그 시기에 정신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다.


  내가 겪은 우울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하는 능력은 나에게 없기에, 내가 겪은 고통이 타인의 고통에 얼마큼 준하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나의 상황이 좋지 않음은 스스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잠을 자도 항상 새벽에 깼고, 피곤하지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종종 헛구역질을 하거나 토했다. 식욕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현 직장에 대한 불만족,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의 나의 모습에 대한 초라함이 켭켭이 쌓여 나를 짓눌렀다. 일과 생활 중 심장이 아프다는 기분을 잦게 느꼈고, 눈물로 지새우는 날도 잦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무기력함에 압도당하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주변 사람에게 내 힘듦을 털어놓고 싶지도 않았고, 친구를 만나고 싶지도, 책을 읽고 싶지도, 영화를 보고 싶지도, 운동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재에 체념하며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유튜브 추천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퇴사, 우울증, 심리상담, 정신과, 이직, 진로' 등의 키워드를 반복적으로 타이핑하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


  내가 교사 생활을 시작한 2020년은 코로나가 터진 첫 해였는데, 그로 인해 개학 연기가 되어 4월 초가 돼서야 온라인 개학을 했고 5월 말이 되어서야 학생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출근 이틀 차에 여러 이유로 교사를 관두고 싶어진 건 맞지만, 그래도 학생들을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는 '그래, 학생들을 실제로 만나면 달라질 수도 있을거야. 난 학생들이 좋아서 이 일을 선택한 거잖아?'라는 마지막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교사를 관두고 싶어졌다.

발표에는 자신감이 컸던 나인데, 학교를 가면 매 교시마다 날 쳐다보는 약 50개의 학생들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무섭고 압박감이 들어 도망치고 싶었다. 그나 도망칠 수 없었고, 내 몸인데 나에게 선택권이 하나도 없었다.

대면 수업을 시작한 지 1주일쯤 됐을 때, 자다 일어나 새벽 1시에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하려고 했다. 사실 집중하면 10분이면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를 너무나 가고 싶지 않은 데 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아파왔고, 내가 정말이지 너무도 무능력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었. 몇 줄의 아이디어만 생각하면 끝날 일인데 너무 불안하고 눈물이 나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내 호흡이 가쁘게 울다가, 새벽 6시쯤 우는 소리를 듣고 부모님께서 일어나셨고, 엄마는 그날 나를 신경정신과에 데려갔다.


  그렇게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고 약 4개월 동안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교사가 최고의 직장일 수도 있고 도대체 이 직장을 왜 그만둔 거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시기의 나한테는 학교라는 공간이, 교사라는 직업이 이처럼 너무나 힘들고 무서웠다.

나는 타인이 보기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너무 힘들어서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진로를 변경하게 된 사람'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이 글은 첫 해 1학기 때의 기록이고 신경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또 조금씩 침대에만 누워있지 않고 다른 진로에 대해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2학기와 두 번째 해에는 정신적으로 보다 나아진 시기를 보냈다. 사실 첫 해 1학기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있어서 '여기가 진정으로 내 밑바닥이구나.'라고 느꼈던 시기인데, 내가 왜 그렇게까지 힘들었나를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상황에 '매몰'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잘못된 선택을 통해 나의 인생이 망했다는 생각, 즉 나의 실패에 매몰됐다.


  그렇지만 2년이 지난 지금에서 내 인생을 보자면, 나의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나의 몫이다. 내 인생에서 제일 젊은 지금, 실패에 매몰돼 있지 않고 실패를 밑거름으로 나의 직관을 믿고 실패 극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선택을 했고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허지원 심리학과 조교수님의 정신 의학 신문에 기고된 '실패에 우아할 것'이라는 글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계속해서 우아한 실패를 하자.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한 실패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일하는 장면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장면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겠지요. 우리는 그때마다 우아한 쇠퇴, 우아한 실패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늘려갈 회복 탄력성에 기반해, 내가 지금 실패한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실패에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 해도 그 기분이 당신의 어떤 측면도 감히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보호자, 당신의 책임자, 1인 가족의 가장. 당신은 이제 당신의 인생을 살아요. 당신의 가치를 주입식으로 폄하하는 사람들, 환경들과 우아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당신이 품위를 잃을 필요가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본문: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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