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단골인 고객님

스물여덟 10년 차 직장인 이야기

by 고사리


출처:픽사베이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자주 보는 고객들은 반갑게 느껴질 때가 많다. 대부분은 웃는 얼굴로 간단한 안부인사 후 지나가지만, 특별히 나에겐 친할머니처럼 각별한 단골손님 한분이 계신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취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늦은 오후 점심을 먹고 나른한 기분으로 졸린 눈을 억지로 떠가며 근무를 이어갈 때쯤, 나보다도 작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진 할머니 한분이 장바구니 가득하게 짐을 싣고 오셨다.

출처:픽사베이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네~ 안녕하세요~"


내가 건넨 짧은 인사말에도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대답해주셨다.


"많이 사셨네요~ 무거운데 어떻게 다 들고 가시려고요~"

"우리 딸이 멀리 살아서~ 오늘 우리 집에 놀러 오는데 맛있는 거 해주려고 많이 샀어요~"


문득 멀리 계시는 우리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손녀 놀러 온다고 시장에 나가셔서 이것저것 사 오시던 우리 할머니 감히 짐작하건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마음은 모두 같을 이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아요~ 엄마가 얼마나 기특할까 이렇게 젊은 학생이 돈 번다고 나와서 일도 하고.. 힘들겠어요"


갑자기 툭하고 던져주신 말이 순식간에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루 종일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녹아듦과 동시에 따뜻한 말 한마디에 눈물이 턱까지 차올랐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추운데 조심히 들어가세요 따님이랑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요 꼭 자주 놀러 오세요!!"


평소와는 다를 만큼 활기차게 인사했다. 가시는 뒷모습까지 지켜볼 만큼 감사했던 걸까 한참을 서서 보고 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에도 가끔씩 장을 보러 오시면 꼭 나에게 계산을 하러 오셨고, 그때마다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할머니와 나는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출처:픽사베이

한동안은 할머니가 오시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지 소식이 뜸해졌고, 문득 나도 모르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프신 걸까.. 이사를 가신 걸까 자꾸만 아른거리는 뒷모습이 떠올랐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나쁜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참 후 모습을 보이 신건 약 일 년이 지난 후였다. 몰라보게 수척해지신 얼굴이 그간에 고단함을 보여주었다. 무슨 일인지 목에는 의료용 테이프가 잔뜩 붙어진 모습이었고, 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그간에 안부를 빠르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답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작게나마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시는 할머니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내실수가 없었다. 지병으로 목을 뚫는 수술을 하셨다고 한다. 상한 마음에 눈물이 맺혔다. 어떠한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그저 말없이 손을 잡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지금까지 할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어딘가에 건강히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만이 간절하다. 따뜻하게 위로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는데, 다시 오시면 그땐 제대로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감사했다고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음은 전할 수 있을 때 전해야 뒤늦게 후회하지 않는다. 할 수 있을 때 용기를 내는 것도 방법이다. 어딘가 계실 할머니께 꼭 내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