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토스 머니스토리 공모전
신혼방학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 나와 남편은 방학 같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이 많은 대신 수입은 적은 그런 나날들. 여유로운 시간이 많다 보니, 함께 장을 보고 끼니를 해 먹는 것이 가장 자주 하는 일이자 중요한 일이다. 처음엔 각자에게 필요한 것과 익숙한 것들을 모두 담아 장을 보니 예상보다 지출이 커지기만 했다. 나와 남편은 연애 때부터 하던 습관대로 앱을 활용해 꼼꼼히 가계부를 기록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들어간다고만 생각했던 소비를 더욱 줄이는 것. 그때부터 우리는 가계부 속 ‘장보기’ 카테고리를 줄여보기로 결심했다. ‘장보기’ 안에 뭉뚱그려진 지출을 파헤쳐 조금 더, 조금만 더 아낄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돈을 쓰는 것은 쉽다. 하지만 조금 더 줄이고 아끼는 것은 어렵다. 아마도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생기는 아쉬운 마음, 심지어는 서글픈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매주 장을 볼 때마다 꼭 사야 하는 식품들을 놓고서 하나씩 작은 포기를 해나가야 했다.
첫 번째로는 달걀. 아니, 그놈의 유정란.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싶다. 나는 건강에 더 좋다고 하는 비싼 유정란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와 둘이 살던 나에게 달걀은 언제나 유정란이었다. 엄마는 ‘비싼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시며 일반 달걀 보다 더 비싼 유정란을 항상 먹게 해 주셨다. 물론 식구가 적고 내가 외동딸이어서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안다. 항상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으셨을 그 마음에 참 감사하다. 하지만 나에게 익숙한 것을 결혼하고서도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어느 정도 포기 아닌 포기를 해야 했다. 내가 그놈의 유정란이라 부르는 이유는 사실 유정란이 뭐길래, 뭐 그렇게 중요하길래 나는 다른 달걀을 집으면서 그렇게 속이 상했을까 싶어서다. 더 좋은 걸 입에 넣고 싶은 이 욕심은 남편을 속상하게 만들고 스스로 서운한 마음이 들게 했다. 유정란 안 먹어도 안 죽는데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가계부는 매주 사던 달걀을 평 범한 달걀로 바꾸면서, 아니 나의 작은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가벼워졌다.
다음 타자는 우유. 마트에 가면 정말 많고 많은 브랜드의 우유들이 줄을 서 있다. 심지어는 한 브랜드 안에서도 보통 우유, 고급 버전 우유, 지방이 적은 우유, 소화에 좋은 우유 등 고르기조차 어려운 많은 종류가 선택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도 나만의 고집은 존재했다. 언제나 먹던 맛, 언제나 보던 상표여 야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 가격을 보고 사본 적도 없었으면서 이유도 없이 어떤 특정 한 우유를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격도 보고 할인도 따져봐야 했다. 굳이 다른 우유를 먹어야 하냐고, 이것까지도 욕심이냐고 철없이 굴던 내 생각은 다행히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우리는 우유에 사용할 비용을 대략 정해두고서 그에 맞는 괜찮은 우유를 골랐다. 어떤 날은 묶음으로 할인하는 처음 보는 브랜드 우유를 골랐다.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나오는 로컬 브랜드의 우유를 고르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더 자유롭게 골라보고 먹어보고 소비했다. 꽤 괜찮은 변화였다. 가격이라는 기준에 갇혀 제한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게 어떻게 자유로운 일이냐고? 나에게 당연했던 선택들을 굳이 고집하지 않게 되니 내 마음이 더 자유로워진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갈아먹는 바나나는 어땠을까. 아무리 갈아서 먹는다고 해도 바나나는 좀 큼직하고 달콤해 야 하는데. 나는 바로 그 브랜드 상표가 붙어 있는 바나나가 맛있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은 여지없이 과일 코너에서도 달려들었다. 가끔 먹는 것도 아니고 매일 먹는 것이다 보니 단순히 가격만 보고 사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시도해보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아서 머뭇거리던 것뿐이었다. 바나나는 익숙 한 그 브랜드 로고가 붙어있지 않아도 맛있는 과일주스가 될 수 있었다. 이전에는 서둘러 먹지 않으면 버리게 되니까 소량만 샀었는데 오히려 넉넉하게 사두니 주스용으로 썰어 얼려 두면 사용하기도 더 편했다. 결국엔 다 그랬다. 아무것도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장보기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은 이렇듯 나의 작은 포기부터 시작되었다.
솔직히 나는 알뜰한 사람이 아니다. 모두 이쯤 되면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 전, 엄마가 장 볼 때 옆에서 먹고 싶은 것 몇 가지만 담아봤지 가격을 보거나 가성비를 따져보는 살림꾼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독립을 했지만, 이제껏 먹던 것들은 꼭 먹어야 하며 가정의 경제 상황에 맞게 어떻게 무엇을 아낄 수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하던 어린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마트에서 재료를 고르고 비용을 생각하며 장을 보려다 보니 처음엔 정말 쉽지가 않았다. 고민만 하다 아무것도 집어 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수많은 상품의 가격표 앞에서 눈알을 굴리며 고민하는 순간이 달갑지 않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규모에 맞게 소비하려는 노력이었지만 왠지 서글퍼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도해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여전히 지난 과정을 돌아보면 내가 남편에게 어린 아 이처럼 굴던 모습에 부끄럽고 또 미안하다. 함께 상황에 맞게 소비를 조정해나가는 작고 작은 과정에 먼저 아이디어를 주고 열심을 내준 당신에게 고맙다.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아이템 중 몇 가지가 변화되 고 가성비를 고려하는 눈이 생기니 우리의 가계부는 훨씬 자유롭고 가벼워졌다. 이유 없이 부리던 욕심들을 내려놓고 보니 작은 포기들은 큰 변화들을 만들어냈다. 포기라는 마이너스(-)를 통해 나는 남편과 하나 되는 마음을 얻었고(+) 실제로 월 10만 원 이상의 변화(+) 경험했다.
‘살림’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라고 한다. 결혼을 하고 서로 다른 남녀가 공동 경제를 꾸려 나가는 살림은 결코 간단하지도 수월하지도 않다. 하지만 의미 있는 시행착오를 쌓아가며 서로의 가치를 한 번 더 발견하게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달걀, 우유, 바나나 같은 것을 고르다가도 나의 철없는 욕심을 발견하고 상대의 성숙한 책임감을 알게 되는 것이 결혼이지 않을까. 살림을 혼자 꾸리는 것보다 둘이서 꾸리는 것이 더 복잡하고, 돈은 쓰는 것보다 아끼는 것이 더 어렵지만. 그렇기에 부부가 함께 적는 소비 일기는 더욱 보람차게 느껴진다.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있을 모든 부부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2023 토스 머니스토리 공모전에 지원한 글이다. ‘소비’에 대한 많은 이야기 중 남편과의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을 주목했다. 살림, 장보기, 가계부와 같은 평범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글이지만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 감사함,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전히 혼자 보다 둘은 더 번거로울지 몰라도, 둘이기 때문에 분명히 가치 있고 더욱 아름답다고 믿는다. 결혼을 하고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결혼, 이혼, 비혼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이 시대에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모든 이들에게 참 잘했다고, 앞으로 맞이할 모든 날들에 때 이른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