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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May 10. 2022

젖은 옷을 말리는 방법

누군가의 가정폭력 생존기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있다. 대체로 이런 속담은 어디에 적용해놓든 들어맞는 경우가 많아, 가랑비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지켜진 태도는 누군가를 물들이곤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에 물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가랑비는 부모님에 의한 가정폭력이었다. 전형적이면서 전형적이지 않은, 엄마의 폭력과 아빠의 방관, 화목하지 않은 가정. 나는 매체가 노래 부르는 아름답고 희생적인 부모의 사랑 같은 것은 겪어본 적이 없고,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하나하나의 사건이 뉴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도 이런 가정에서 커보는 게 처음이어서. 계속해서 맞다 보니 아픈 줄도 모르고, 그냥 다른 아이들과 내가 다른 것이 내 부족함인 줄로 알고 우울한 유년냈다. 10평도 채 안 되는 작은 빌라에 살며 혹시라도 엄마가 오늘 술을 마실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할까 마음을 졸이느라 평범한 친구들이 고민하는 것들을 고민하지 못하며 자랐다.


 추웠던 중학생 시절의 어느 겨울날. 부모는 내게 왜 가출을 안 하는지 물었고 난 거기에 누구 좋으라고 나가 사느냐 답했다. 집을 뛰쳐나가 쉼터에 사는 것조차 학교에 적응도 잘하지 못한 내겐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다. 춥고 시린 길바닥에 생존하며 저당 잡혀야 할 모든 것들이 까웠고, 또 이런 이야기를 성인이 되기 전 털어놓은 일이 없어 내가 겪은 것이 그렇게 심각한지에 대한 자각도 없었다.


 그렇게 길고 어두웠던 미성년을 지나 성인.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태로 집에서  대학으로 도망가 4년을 지냈고,  집에서 멀고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미성년자였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대학생활 내내 부모님에 의한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견뎌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멍에 같던 가족을 반쯤은 끊어낼  있게 되었다. 원래는 30세가 되는 해로 미루어두었던 계획임을 생각하면 눈부신 발전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평생 원하던 일을 해냈는데, 앞으로 내 삶은 해피 에버 애프터일 것 같았는데. 오히려 시시때때로 차오르는 분노에 사로잡혀 보낸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생각이 많아지니 일에서도 실수가 잦아지고, 술에 만취해서도 잊어버린 적 없던 소지품들이 맨 정신에 손 안에서 흘러나갔다. 안갯속을 걷는 것 같은 일상을 사니 내가 사실을 말하는 게 맞는지 스스로 확인해보아야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러니까... 나의 삶은 말하자면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생존기와 같다.


그리고 지금 이 타이밍에 여물지 않은 경험을 부득불 꺼내 든 이유는, 이야기를 차분히 엮으며 내 삶을 재정립하고자 하는 치료적인 목적과 함께, 어린 내가 원했던 것을 이루기 위함이다. 내가 겪은 것이 가정폭력이 맞는지, 이렇게 힘든 것이 맞는 건지. 누군가가 자기의 상황과 비교해볼 수 있는 수많은 선들 중 하나가 되고 싶어서.


또 나의 상황에도 마침표가 지어지기를 바라면서, 그간 나의 이야기를 꺼내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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