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슬픔, 난임 / 난임일기 EP 2.
올해는 장마전선이 너무 빨리 북상해 벌써 북한을 지나 중국에 닿는 국경선에 가있고, 7월과 8월은 내내 불볕더위를 겸해 전무후무한 가뭄에 시달릴 거란 기상관측을 떠들어대던 인터넷 뉴스에 '기상청이 불볕더위를 예보하였으니 이제부터 집중호우를 대비하자'던 댓글을 보고 피식했던 날이 있었다. 나 또한 공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기상청에 근무하는 분들의 노고와 좌절을 충분히 이해하니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그 뉴스 이후 정말로 내가 사는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고, 에어컨 없이는 숨도 쉴수 없겠다고 느꼈던 바로 어제와 달리 에어컨 없이도 실내 온도는 26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적어도 향후 3달간은 폭염과 사투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던 내게, 7월의 초가을은 감격적인 선물이리라. 에어컨 없이도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잠을 청하고, 창문을 열어 매미울음을 들으나 온도는 더할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요 며칠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한여름의 가을이었다. 그러니 이 충만한 행복 속에서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축복인 것이었다.
병원을 다니며 1년간 자연임신을 시도하다 결국 상세불명의 난임 판정을 받은 후 두 달이 흘렀고, 지난 월요일에는 1차 인공수정을 시작했다. 내가 그리도 두려워했던 난임 시술은 '생각보다' 그리 고난의 길만은 아니라고 (지금은) 생각했다. 내 손으로 배에 찔러넣어야 하는 주사도 (뱃살이 많아 그런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고, 인공수정의 과정도 고통 없이 간단히 끝났던 것이었다. 인공수정이 이리도 간단한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시작할걸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다른 부부들 또한 건강하다는 검사결과를 받아든 이상 난임판정을 받고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보다 특정하지 못하는 어느날 기다리던 아이가 까꿍하며 찾아오는 감격적인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을 터였다. 그러니 다시 작년 6월로 돌아간다 해도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1년 간의 자연임신 기간을 허송 세월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참이다.
난임을 키워드로 하는 글에는 위로되는 말들이 많았다. 요즘 가장 괴로운 것이 비교하는 마음, 그보다 더 뒤틀리고 꼬여가는 마음, 그보다 더한 것은 그런 내 스스로를 현실로 인정하고 못난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나는 정신과적 문제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난임을 겪는 많은 분들의 글 속에서 나에게만 특별히 찾아온 마음의 병일리는 없다는 것을 알았고, 친한 사이일수록 난임에 관하여 내려치기를 당하는 듯한 기분은 그저 망상이 아닌 인간 세상의 범사라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와 같은 입장일 수 없고,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을 헤아려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망상이고, 더욱이 원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관계에서는, 예를들면 남편과 나 사이에서는, 그러한 망상이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낼지 모르는 위험한 선택일 것이었다. 내 행복을 위해 가정을 꾸리고, 내 행복을 위해 아이를 기다리는 지금, 아이가 더디 온다고 좌절하고 슬퍼할수록 아이가 찾아올 확률이 높아질 리 없었다. 어릴적 공부할 책상이 없으면 바닥에 누워 공부를 하였듯, 어떤 해는 다이어트를 위해 더운날도 뛰고 추운날도 뛰어 10키로를 감량하고야 말았듯, 그저 원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낼 뿐이었다.
이 아까운 난임휴직의 기간 중 병원을 왕래하고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인 것을 허송세월이라 느끼던 어느 날, 오늘 하루도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생각으로 멍하니 누워 우연히 보게된 어떤 방송에서 말했다.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낭비한 시간이라고.
허송세월이던 그 하루가, 그 한마디에 행복으로 가득한 하루가 되었다.
아기를 기다리는 모든 시간이 남편과 함께하는 행복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