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슬픔, 난임 / 난임일기 EP 1.
우리는 보통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건이 좋으면 우월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보다 조건이 나쁘면 열등감을 느낍니다.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비교하느냐 하는 데서 일어나는 내 마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모두 삶의 기준을 타인에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내 삶을 내가 산다는 주인의식 없이, 내 삶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그래서 열등감과 우월감은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 법륜⌋
'난임' 판정 이후 내 인생에는 없을거라 자부했던 열등감이 불쑥 불쑥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난임이라는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고 내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부정적인 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나의 결정까지도 그놈의 '난임' 에서 탓을 찾고 있었다. 오늘처럼 우연한 기회로 번뜩 정신을 차리는 날이면, 그런 나의 모습들이 얼마나 인정하기 싫은 못난이인가를 처절히 인정할 밖에 도리가 없었다.
열등감은 '친밀한' 사이에서 더욱 뾰족하게 모습을 드러내기가 일쑤였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의 숱한 조언과 응원의 말에도 난데없이 깊은 상처를 받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더 괴로운 것은 그런 친구들을 미워하는 나를 스스로 비난하는 날들이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뿌리가 같은 것이라 하였거늘, 나는 정녕 내가 겪는 이 '난임사태'가 아니었다면 친구들의 조언을 들을 이유도 없고, 휴직으로 인해 동료들에게 기회를 뺏길 이유도 없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우월감에 빠져살던 나르시시트였다는 말인가.
누군가 생각을 조심하라 했다. 생각이 쌓이니 생각은 곧 말과 행동으로 번져갔다. 글에 담지 못한 엉뚱한 미움들은 차곡차곡 쌓였고, 자책과 혼란을 반복하다 어느 순간 애꿎은 남편에게 심판이 되어달라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못난 말을 하고 있는 내가 못마땅해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이런 내가 괜찮다고, 주변 모두가 악마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나를 위로하기를 바랬을 터였다. 다행히 남편은 그럴 때마다 못난이가 되어버린 나를 가여이 여기지도, 탓을 하지도 않은채,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위로의 말들을 해주지도 않은채 그저 나를 안고 괜찮다고, 괜찮다고만 말하는 것이었다.
"괜찮다, 다 괜찮다."
리코더 대회에서 1등을 놓치고 집에와 울던 날, 그러니까 1등은 만원짜리 리코더를 불고 나는 삼천원짜리 리코더를 불어 1등을 내주었다 믿었던 내 유아적인 세상에서 느낀 두려움, 억울함, 슬픔의 순간, 어린 내가 엄마 아빠에게 들었던 성장의 말이었다. 만원짜리 리코더를 갖지 못했다는 열등감은, 그 친구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우월감과 뿌리가 같은 것이었다. 그 날 1등과 나를 비교하지 않았다면 나는 전교 리코더대회에서 2등을 했다는 대단한 행복감에 충만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 분명했다.
유치한 억울함에 통곡하던 아이가 '괜찮다'는 말에 어린 세상을 벗고 나와 상처없는 어른이 되었듯, 나도 어느 날에는 이 슬픔의 세상을 벗고 나와 의연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 날에는 누구와도 나를 비교하지 않는 남편이 내게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나는 열등하지도 우월하지도 않은 그저 오늘도 행복한 사람임을 매일 알아채며 살아가기를. 다짐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