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슬픔, 난임

도대체 이 글의 제목을 무엇으로 해야할까?

by 오월이

내게는 어려움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가난했지만 우리 오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부모님 밑에서 좌절이랄 것이 있었을까. 사실 가슴에 절절이 맺히는 일들은 대개 부모님이 어찌할 수 없던 가난에 관한 것인데, 나는 내 힘으로 그 가난을 극복했기에 가난에 대한 슬픔이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난임이란, 의지를 기울여 극복하기가 어려운 영역이라 요즘은 대체로 내 삶을 그곳에 쏟아 붓는다.


주변의 어르신들 기준 조금은 늦은 나이, 서른 다섯에 결혼을 하고 만 1년이 되었다. 이제 내 나이에 1년간 소식이 없으면 '난임'이라 부른다 하는데, 내게는 그 이름이 꽤나 무서웠다. 어려울 난, 임신할 임. 도대체 우리 부부 양자 간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지난 1년간 좋다는 것은 모두 찾아다녔어도, 나 빼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만 아이가 찾아와주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1년밖에 안된 새댁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징징거릴 글은 아니다. 그보다 조금 심오한 '행복'에 관한 이야기.


그래 누가누가 더 가난했는지에 대해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내 어릴적은 내 욕심보다 기필코 가난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난에 대한 몇몇 장면은, 왜곡된 기억일 것이나 어린 내 일기장에도 남아 증명을 해주기에 원래보다 더 구슬픈 왜곡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모두 처음이었던 나와 달리 학원에서 모든 것을 선행했던 친구들, 친구들은 '학원'이라는 곳을 다닌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나서 부러운 친구들의 학원가방을 매고 걸어보던 어린 나, 그래도 늘 반에서 3등 안에 들었던 내가 어느 날 반장에게 들고가 풀이를 물었던 문제에서 '이것도 모르냐'는 짜증섞인 핀잔을 듣고, 깊은 상처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던 그 날을 기억한다. 더욱이 내게 가장 슬펐던 일은, 전교 리코더 대회에서 1,2등을 다투던 우리에게 심사위원 선생님이 만원짜리 리코더를 살 것을 권유했으나 나는 살 수가 없고 내 친구는 다음날 '그 리코더'를 불어 1등이 된 것이었다. 물론 그 친구가 더 잘 했을 것임이 틀림 없는데도 나에게는 그 리코더가 1등을 내준 깊은 슬픔이자 열등감으로 남아버렸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그 욕심 많던 상처투성이 어린이가 내 새끼의 가슴에는 가난의 아픔을 새기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살아온 세월이 10년, 나는 그저 열심히를 타고 난 사람처럼 대학도 수석졸업, 지금은 10년차 연봉 1억의 전문직으로 살았다. 남자들도 못하겠다 훠훠 털며 떠나는 이곳을 나는 10년을 날고 기며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올 해, 우리 아기를 위해 휴직을 결정했다.


다만 갑자기 긴장 없는 휴직시절을 보내자니, 이 또한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너무 많아져버린 시간, 혼자 출근하는 남편, 급여, 커리어...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은 물론 일터에서 얻는 효능감이 없다는 것 또한 새로운 고역이었다. 그리고 휴직의 이유인 임신은 어떤가. 삼신 할매가 노망이 나셨다는 소식인데, 원하는 집에는 아이를 주지 않고 원치 않는 집에는 덜컥 아기를 데려다주어 뭇 세상 엄마들의 혼란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나는 이 혼란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늘도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행복하다.

삶의 전쟁터에서 잠시 휴직을 하더라도 건강한 아기를 염원하겠다는 남편을 만난 일.

우리가 아직 아기가 없더라도 어느날 어떤 천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

이 어려운 인정욕구와 커리어의 유혹 속에서, 괴물이 되지 않고 가정이라는 행복에 눈을 뜨고 휴직을 결정한 것.

우리에게 아무런 생물학적 문제가 없다는 희망.

어떤 슬픔에 잠겨있던 가난한 어린 아이가. 내 새끼에게 충만한 사랑을 주겠노라 자신할 수 있도록 성장한 것.


오늘은 공허함을 이길수 없어 '난임임에도 불구하고' 소주를 딱 반 병 먹은,

취권으로 쓴 난임일기이자 오월이가 오월이에게 보내는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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