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지기를 위한 축사

친구를 위한 축사로 다시 시작한 글쓰기

by 오월이

축사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랑과 신부의 10년지기 친구입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오늘 두 사람은 제가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만큼 오늘 이 자리에서 축사를 하는 것이 매우 영광스럽지만, 또 마음속 한편 중매자로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저의 부모님은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을 하셨는데, 저의 아버지께서는 부부싸움을 하신 날이면 자식들에게 늘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소개는 신중하게 받아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소개할 때도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잔, 잘못하면 뺨이 석대다'. 35년간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이 피맺힌 교훈을 떠올리며 뺨 석대를 맞지 않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서 신랑 신부에게 미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신랑측에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평생을 말씀하신 두 번째 교훈은 바로 '최씨를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엄마가 최씨입니다. 저의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최씨의 고집은 그 유례가 깊고 조선 팔도에서 가장 유명해서 이길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의 엄마는 IMF 당시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오랜 세월 가장이 되셨을만큼 힘든 시절에도, 한평생 고집스럽게 가족만을 위해 사신 분입니다. 아버지와 저희 두 남매는 그런 엄마의 고집과 헌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제 친구이자 신부 최00도 그런 고집으로 누구보다 굳건한 아내이자 며느리, 그리고 누구보다 강인한 어머니가 될 것이라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부디 신랑께서는 신부가 고집스럽게 이루어온 많은 것들을 존중해주시고, 신부 최양께서는 남편 앞에서만큼은 고집보다 사랑을 먼저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다음은 신부측에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소개한 신랑이 대구 분이신데, 저의 남편 또한 대구 사람입니다. 제 남편은 집에 오면 신발장에서부터 옷과 양말을 벗으면서 들어와 제가 치워야 합니다. 또 집에서 빨래도 요리도 설거지도 안합니다. 대구 상남자들은 원래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신부, 혹여 새신랑께서 신발장 앞에 옷과 양말을 벗어두더라도 새신부께서 거두어 깨끗하게 빨아주십시오. 대구 상남자들이 빨래나 요리는 잘 안해도, 분리수거도 잘 하고 음식물쓰레기도 잘 버리며 아내를 최고로 생각하고 가방도 잘 사줍니다. 대구 상남자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여자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신랑은 저의 10년지기 동료이자 절친한 술친구인데, 그동안 술값은 모두 제가 냈습니다. 그런데 제친구 최양과 데이트 할때는 신랑이 맛있는 것을 많이 사주신다고 하여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저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신랑이 내 와이프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는 밥도 술도 물 한모금도 사주지 않는 멋진 남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제 친구 최양을 소개해주는 날이었던 작년 1월에도. 그 날조차도. 제가 술을 샀습니다. 진짜 반성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신랑은 제가 이렇게 술을 사면서까지 제 친구에게 소개하고싶던 훌륭한 남자입니다. 업무능력 그 하나로 모든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또 늘 진중하고 예의바르면서도 누구보다 당당한 사람으로서 제가 군생활에서 드물에 존경하는 동료입니다.


오늘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친구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내일은 저의 생일인데,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 다음날이 제 생일이라 매년 생일선물로 술 석잔을 마실지, 뺨 석대를 맞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밀고, 술 석잔도 모두 제가 사겠습니다. 두사람의 앞날을 그 누구보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축사가 끝나자 하객들의 갈채가 쏟아졌다. 친구에게 축사를 부탁받고 단 15분만에 써내려간 축사인데, 어른들이 많이 오시는 결혼식이니만큼 우리끼리 아는 이야기가 아닌 어른들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유쾌한 축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전략이 다행히 예식에 잘 스며들었고, 양가 부모님께서는 직접 나를 찾아와 축사가 와닿고 재미있다며 고마움을 표하셨다.


조금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당일 예식을 진행하던 전문 사회자께서도 지난 10년간의 사회 경력에서 들은 축사 중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이라 했다. 신랑의 친척이라 소개하며 내게 오신 어떤 어른 한분은, 나에게 글쓰는 사람이냐 물어보셨다. 본인은 학교에서 문학수업을 하는 교사이며 그 따님은 작가이신데, 내 글 스타일이 너무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수많은 친구들이 축사에 대한 호평을 해주어 나는 오랜만에 피가 끓었다. 뭐그리 대단한 글솜씨는 아니라 객관화가 잘 되어있는것과, 기분이 좋은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내 글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이 행복감. 어쩌면 작가와는 영영 멀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내가 매일 일기를 쓰는 이유가 아닐까. 예전 싸이월드 시절에 내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글을 쓰면 내 글을 좋아해주던 몇몇 이들이 찾아와 댓글을 남겨 주었는데, 내 다음글을 기다린다는 그들의 말이 좋아 사진보다는 글을 많이 남겼던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남들이 보게되는 일기였으나 '내 미니홈피'였기에. 그러니까 내 글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만 읽는 글이었기에 꽤나 안정감을 가지고 솔직하고 진중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다. 그러나 싸이월드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가 소셜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내 일기는 굳이 내 계정을 찾아 들어오지 않더라도 접속하는 누구나가 읽어지는 글. 그러니까 '현수막'이나 '전단지'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그 후 내 일기는 내가 보는 종이에만 적혔고, 그 종이일기는 내가 나와 가장 내밀하게 소통하는 방법이란 의미가 있었으나 다른 이들에게 내 마음을 글로써 보여주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이번 축사를 통해 다시 알았다. 내가 매일 일기를 쓰는 이유는 도저히 글쓰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라는 것을. 내가 나에게라도 글을 써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을. 그러니 내 글을 찾아 눌러 읽어야만 하는 이 무대는, 2025년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와 큰 틀에서 비슷해 안정감을 준다. 무엇보다 조회수가 낮을지언정 내 종이 일기장의 조회수보다는 늘 많은 수가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 무대에서 글을 시작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