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부인과 추쌤 May 31. 2018

산부인과 의사가 겪은 아내의 출산

레지던트 이야기 #3

안녕하세요.
한 ‘여자’의 아빠, 한 ‘여자’의 남편, 산부인과 전문의 포해피우먼입니다.

출산 당일 작성했었던 일기와 예전에 포스팅하였던 「육아수기공모전-육아대디로 입문하면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출산 당시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당시의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해서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찾아온 그 것, 진통


우리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보다 엄마의 배 안이 좋은지 예정일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유도분만을 하기로 되었고, 입원날짜를 받아 두었다. 우리 부부는 04/25일 입원할 준비를 하고 잠을 청했다. 새벽 4시 무렵에 아내가 날 깨웠다.  


아내: 여보, 배가 조금 뭉치는 것 같은데? 그리고 이슬이 비쳤어.

나: 음… 아?! 그래?!! 아프진 않아??

아내: 응. 아직 아프진 않은데, 간격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나: 그럼, 병원 가볼까? 어떻게 할래?

아내: 짐 챙겨서 나갈 준비하면 될 것 같아. 조금씩 간격이 짧아지는 것 같거든~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진통이 당연히 찾아오지 않아 유도분만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배가 뭉치기만 하던 아내가 새벽 4시쯤 되었을 때는 인상을 찡그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았을 때, ‘아! 오늘 드디어 분만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진통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어서, 나는 직장으로 바로 출근할 준비를 한 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아내의 심적 안정을 위해 찾아서 들려줬던 노래는 “그 애(愛)”였다. 노래 가사 중에 일부분이 마치 우리에게 찾아오는 “그 아기”에 대한 내용인 것만 같아서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넌 내 삶의 전부야

내가 사는 이유야
설명 할 수 없는 기적이야
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랑이라면
한 걸음 더 다가와

정엽(Jung Yup) - 그 애 (愛) (닥터스 OST part.3)
정엽(Jung Yup) - 그 애 (愛) (닥터스 OST part.3)

누리지 못한 그 것, 무통 천국


의료진으로 분만과정에 참여하는게 아니라, 남편으로서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아파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손잡아 주는 일, 입을 적실 얼음을 가져다 주는 일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의 자궁경부 내진은 담당 치프선생님과 주치의 몫이었고, 통증은 심한데 자궁경부는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무통주사를 일찍 맞추지 못했다. 오히려 교수님께 ‘조금 더 기다렸다가 맞는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씀도 드렸다. (아직도 아내는 그 일을 떠올리면 이해는 되지만 섭섭했다고 말한다.) 어느정도 자궁경부가 더 진행하고 나서 무통주사를 투약하게 되었는데 진행이 느린 듯하여 자궁수축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촉진제의 용량이 늘어날 수록 통증은 심해지고 아내는 더 힘들어 했다. 무통주사가 선사한다던 ‘무통 천국’을 아내는 결국 누리지 못했고 배가 뭉치기 시작한지 1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5cm 정도 열리게 되었다. 다행히도 이후의 진행은 매우 빨랐다. 5cm 열리고 얼마 있지 않아 자궁경부는 10cm 다 열리게 되었다. 빨리 열리는 만큼 아내의 표정 또한 급속도로 안 좋아지고 있었다.



아찔하고 숨막혔던 그 3 분


자궁 경부가 다 열리고 나서 힘주기 자세를 연습하였다. 연습중에 양막이 터지더니 갑작스레 아기의 심박동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격하게 떨어져 심박수는 정상의 절반인 60-70대 밖에 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심박수가 떨어지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많이 겪어 봤었다. 하지만 침대 옆에 있던 태동모니터 경고음과 저음의 심박동소리가 방을 가득 채우자, ‘혹시… 설마…’라는 걱정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아기의 상태가 안 좋아짐을 확인한 담당 전공의들은 즉각적인 조치를 시작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가 수련받았던 의국, 내가 믿는 전공의들이었기 때문에 믿고 처치하는 장소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혹여 내가 있어서 평소와 다르게 처치를 할까봐 심박수가 회복될 때까지 방 밖에서 기다렸다. 회복까지에 걸린 시간은 채 3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다리는 3분이 얼마나 길었는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VIP 증후군이라고 저희들끼리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더 잘 해주기 위해 평소와 다르게 하다가 오히려 일이 커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보통 일컫습니다. 그래서 아내 곁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만약 아기에게 문제가 생겼더라면 얼마나 원망을 들었을 지 생각만 해도 끔직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곳에 있지 않아서 담당 수석의와 주치의 선생님이 원칙대로 잘 봐주셨으리라 믿습니다.

아기를 처음 만났던 그 곳, 분만실


평소 유연함을 자랑하던 아내는 자세를 잡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딱 3번 힘을 주곤 분만실로 옮길 수 있었다. 가족분만실을 이용하지 않는 병원이어서 침대를 일반 분만실로 옮기고 분만대로 넘어와서 분만을 진행하였다. 아기가 내려오지 못하거나 자궁경부가 열리지 않아서 산통은 산통대로 다 겪고 수술을 받으러 가게 되는 길과 분만실로 들어가는 길의 갈림길에서 서서 혼잣말로 말했다

“다행이다…”

산통을 산통대로 겪다가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은 산모가 두 배로 힘들 뿐만 아니라, 수술 후 감염 등의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걱정되는 그 사람, 아내



분만실에서 힘주기를 하면서 우리의 아가는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아기는 피가 흠뻑 묻은 채 간호사님에게 넘겨져 처치를 받게 되었다. 아기도 아기지만… 아내의 상태가 계속 신경쓰였다. 자궁 수축이 좋지 않은지

약 주세요

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이 귓가를 울렸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낯선 환경에서 큰 울음을 내는 분만장에서도 교수님의 그 한마디는 귀에 박혀들어왔고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자궁수축이 안 좋다는 것은 그만큼 출혈이 많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공의 수련을 보면서 수없이 보았던 산후 응급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설마...


하지만 아내의 시선은 나와 다르게 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라도 잊지 않고 눈에 담으려는 듯이… 아내는 정신 없던 그 와중에 나에게 물었다.

아기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기만을 계속 쳐다 보고 있었다. ‘엄마란…’



다행히 별 탈 없던 우리 아가


자궁수축제가 투여되면서 출혈양은 감소한 듯 하였고, 교수님께서는 회음부 절개부위를 꿰매기 시작하였다. 어느 정도 출혈이 조절되어야만 꿰매기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후…’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내에게 신경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우리의 아가가 떠올랐다. 손/발가락은 10개씩 잘 있는지… 다른 외형상 기형은 없는지 간호사와 함께 샅샅이 살펴보았다. 걱정되는 마음은 차마 내색하지 못했지만… 외관상 특별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내가 임신한 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직접 초음파를 봤었지만, 초음파 검사에서 놓치는 기형들에 대해서는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 아기의 손가락/발가락, 구강, 배꼽, 항문, 척추 등을 순서대로 다 살펴보는 동안 아기는 따뜻한 곳에서 다시 편안해졌는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왜 그렇게 낯설었는지… 탯줄 자르기


드디어 나에게도 탯줄을 자를 기회가 왔다.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자른 탯줄이 수백번은 될 텐데, 왜인지 모르게 우리 아기의 탯줄은 자르는게 너무 무서웠다. 평소에 잘 끼던 수술장갑조차도 왜 그렇게 안 껴지는지, 손은 왜 떨리는지… 자르고 나서도 내가 제대로 자른게 맞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병원마다 탯줄을 남편이 탯줄을 자르는 시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아내가 출산한 병원에서는 탯줄을 의료진이 먼저 넉넉하게 자르고, 최종적으로 남편이나 간호사가 적절한 길이로 자릅니다.

분만을 마치고...


교수님께서 회음부 절개를 마무리하시는 동안,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다주기 위해서 분만실에서 나왔고 바깥에는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장모님! 곧 나올거니, 걱정하지 마시고 저랑 같이 신생아실 다녀오시죠~”

이 한마디를 말씀 드리는 그때야말로 산부인과 의사로서 도움이 된 유일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신생아실로 아기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니 아내는 회복실로 나와 있었다. ‘고생했어’라는 말을 하고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2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자궁수축이 좋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병실로 입실을 할 수 있었다.


10개월간의 임신기간을 출산을 통해 끝마치고 그렇게 아내는 엄마가, 그리고 난 아빠가 되었다.




건강을 구독하세요 - https://forhappywomen.com/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남자 산부인과 의사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