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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챠 Jan 27. 2024

미처 몰랐던 뒷모습도 있어

사랑하는 딸, 네가 태어난 뒤로 엄마는 이전에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새삼스레 감사하게 돼. 내 품 안에서 응앙대며 포동포동 살이 오른 너를 보면 그간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던 것,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


요즘에는 이렇게 추운 겨울에 너와 따뜻한 방에 있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네가 배고파할 때 먹일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에 감사하지. 네 피부에 듬뿍 바를 로션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살 수 있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사실에도 감사하고, 더러운 것이 묻으면 얼마든지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환경도 정말 감사해.


우리가 이렇게 편안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일면 우리의 일반적인 생활 수준이 상당히 향상되었기 때문이야. 가령 1950년대에 미국은 이미 대부분의 가정이 식기세척기 정도의 가전은 갖추고 있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는 식기세척기는 무슨, 집집마다 세탁기도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이렇게 잘 살게 되었을까? 지금 이렇게 풍족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불과 한세기 전만 해도 몹시 가난한 나라였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만 해도 이 나라는 전쟁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겪어냈지.


박완서 선생은 그 비극의 한 가운데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어. 마침 6.25가 발발하던 그 해는 선생께 특별한 해였어. 스무살이 되어 드디어 원하던 대학에 입학하는 해였거든. 당시 일본에게서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수선했던 우리나라는, 행정 편의상 지금처럼 3월에 입학하지 않고 6월에 입학하도록 하고 있었어. 그런데 6월 25일, 전쟁이 터지고 말았지.


선생은 채 한 달도 다니지 못하고 휴학을 해야 했지. 그리고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어.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처참했고, 선생의 집안도 전쟁의 비극을 직격으로 맞았거든.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던 선생은 전쟁 통에 아버지처럼 여기던 작은 아버지를 잃고, 또 하나 뿐이던 오라버니를 잃게 돼. 그런 사정이니 전쟁이 끝난 뒤 마음 편히 공부를 할 수나 있었을까? 선생께서는 공부를 포기하고 생계에 뛰어 들어야 했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생계에 매진해야 했던 삶은 비참했을까? 글쎄, 그건 이렇다 저렇다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삶은 그렇게 행복과 불행으로 쉬이 나뉘지도 않지. 그러나 선생에게서 대학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평생 남아있었던 것이 분명해.


본래는 자신이 밟았어야 할 교정에 미군들이 자리를 잡은 것을 볼 때마다 선생의 마음은 생채기를 입었고, 시간이 오래 지나 이제 한참 어린 친구들이 가득 채운 대학을 보면서 본인이 누리지 못했던 학업이 선생을 속상하게 했던 것도 같거든.


그렇지만 대학을 포기하던 때의 선생은 모르기도 했을 거야. 그 비극적인 전쟁의 상흔이 자신의소설 속에서 살아나 한국문학사에 굵직한 선을 그을 줄은. 대학에 가지 못한 자신의 선례가 이후 대학을 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많은 여성들의 삶에 위로가 되기도 했음을. 또 선생이 쓴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기도 하고, 풍성한 상상력을 주입하기도 했음을.


바라던 것을 이루지 못할 때 삶은 참 슬퍼지지. 가끔은 뜻하지 않은 불행으로 인해 고달파지기도 하고. 허나 지금 당장은 실패와 좌절이 손해와 상처 뿐인 것 같더라도 인생을 길게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그것들이 삶에 녹아 어디로 이어질 지 모르는 다음 단계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기도 하는 것 같거든.



딸아, 나는 네게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이유로건 맞이하게 될 실패와 좌절에 단순히 절망하지 말라고, 그것은 결국 네 삶에 피와 살이 될 것이라 하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란다. 삶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현재의 불행이 반드시 미래의 불행을 만들어내지는 않고,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실패를 담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실패가 위로되는 것은 아니고 이미 생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딸. 나는 언젠가 좌절과 실패를, 또 불행을 겪을 네가 기억하고 또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 뒤에 숱한 상처로 얼룩진 역사가 있듯이 한 사람의 일생에서도 그렇기 마련임을. 지금의 아픔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곧 상처에 딱지가 이고 새 살이 돋아 아물면 더 이상 아프기만 하지는 않을 것임을. 그 흉터야 살갗에 늘 남아 있을 것이고, 가끔은 욱신거리기도 할테지만, 늘 처음 같은 고통을 주지는 않음을.


단순히 좌절과 불행이 나중엔 행복해지는 길로 널 인도할 것이라는 순진한 낙관만을 전망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이건 바라고 소망하지, 상처들이 올곧이 네게 남아 네 일부가 되어 만들어질 너도 썩 괜찮은 모습일 거라는 거. 꽤 근사할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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