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너를 집에 두고 일하러 나선 길, 버스를 기다리는데 문득 추위가 조금씩 가시고 따뜻한 기운이 만연한 걸 느꼈어. 완연한 가을에 태어났던 너와 실내에 박혀 지내고서 벌써 한 번의 겨울을 지나왔을까. 어느새 봄이 왔더라.
춥고 헐벗은, 배고픈 겨울이 가는 것만으로도 기쁜 소식인건지 예로부터 사람들은 봄이 오기 전 반짝 하고 다시 찾아오는 추위를 두고 봄이 오는 걸 시샘한답시고 꽃샘추위라고 불렀어.
그렇지만 나로서는 봄이 늘 달갑지만은 않았어. 봄이 오기 전 반짝 찾아오는 추위가 유독 싫었던 건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찬 바람 때문이 아니라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일 만큼. 내게 겨울은 옛날 어른들이 느꼈던 것처럼 이겨내기 힘든 추위와 배고픔으로 점철된 계절은 아니었기에.
그보다 봄은 늘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였기에, 새로운 것들에 정신없이 적응해야 했기에. 봄이 오면 가끔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주해야 했고, 겨우내 묻어둔 것을 들추어볼 일도 있었고, 여러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익숙해져야 했지.
그런 여러 이유들로 봄을 좋아할 수 없었어. 봄이 마냥 따사롭기만 한 계절이 아니라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썼던 시인이 있었고 봄의 화사함 앞에서 초라해지는 자신을 돌아본 시인도 있었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 S. 엘리엇
“입춘이 드는 날 나는 공일무휴의 오피스에 지각을 하는 길에서 겨울이 가는 것을 섭섭히 여기지 못했으나 봄이 오는 것을 즐거이 여기지는 않았다. 봄의 그 현란한 낭만과 미 앞에 내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약하고 가난할 것인가.”
백석
그러나 요사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음이 몸소 느껴졌던 날, 이 따스한 햇빛이 무던히도 반가웠어.
너와 함께 할 첫 봄.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함께 바람 쐬며 걸을 일, 네가 처음 보는 형형색색의 꽃을 만지고 향을 맡아볼 일을 나도 모르는 새 기대하고 있었나봐.
차분히 내리는 봄비 소리를 들으며 함께 즐거운 상상을 하고 싶어. 장미가 피는 담벼락에 가서 이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알려주고도 싶어. 유모차에 너를 태우고 함께 장보러 가는 길, 마트에 가서 같이 이것 저것 구경하고 하고 싶어.
훈풍이 불어오는 계절, 바람을 피하지 않고 곧이 곧대로 맞으며 즐겨도 되는 계절. 봄을 기대하게 만드는 마법같은 너와 맞이할 이 계절이 오는 것이 너무 반가워서 절로 웃음이 나. 어쩌면 엄마도 추위에 움츠러든 어깨를 활짝 피게 할 이 계절을 좋아하게 되려나 보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피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