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에 담긴 작은 선택들에 대하여
. 유학이나 교환학생을 이유로 출국할 때, 일반적인 가족들은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기 직전까지 함께하며 작별 인사를 나눈다. SNS를 넘기다 보면, 자식을 혼자 타지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음에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도 자주 보게 된다. 그 마음과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직접 그 상황에 놓인다면, 오히려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 평생 다시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영상 통화나 메신저를 통해 언제든 근황을 나눌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출국 직전까지 발이 붙잡혀 있다는 느낌, 언제 일어나야 할지 애매해지는 그 어색한 시간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잘 다녀와라, 도착하면 연락하고.” 이 담백한 인사 한마디가 더 든든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 어렸을 때부터 해외여행은 비교적 자주 다녔지만, 혼자서 출국한 것은 열네 살 무렵이 처음이었다. 당시 고모부께서 도호쿠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계셔서, 고모네 가족은 센다이에 거주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조금 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보고 시야를 넓히길 바라셨고, 친척 식구들 역시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일본 사람들의 일상을 짧게나마 직접 경험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 출국 당일, 아버지는 나를 인천공항까지 데려다주셨고, 그대로 떠나셨다. 이후의 과정은 온전히 혼자였다. 짐을 부치고, 비행기를 타고, 타국의 땅을 밟은 일까지. 그때 느꼈던 항공사 직원들의 시선과 입국 심사관의 “혼자서 왔니?”라는 당황 섞인 질문은 지금도 또렷하다. 뭐든 혼자 해봐야 익숙해진다는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의 의미를 금방 깨닫게 되었던 일이었다.
. 그래서일까, 오늘날의 나는 언제나 새벽에 혼자 큰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한다. 누군가의 신체적·감정적 개입 없이, 오롯이 나만의 리듬으로.
. 유학하는 친구들을 보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한국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택배로 보내주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나는 그런 도움을 크게 바라지 않는 편이다. 생필품만 있다면 웬만한 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에 비해 내가 느낄 감사함이 부족해질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출국할 때도 옷이나 화장품 말고는 챙기지 않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물품들로 최대한 자급자족하며 지냈다. 하지만, 나는 한 사건으로 인해 그 선택지가 늘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 대학교 1학년 때, 방 안에 둘 방향제를 하나 샀다. 하필이면 민들레 향이었다. 창문을 열어둔 채 수업을 다녀왔고, 돌아와 보니 벌들이 방 안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벌들이 알아서 나가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부엌에서 버텨야 했다. 영국에서는 집에 둘 만한 방향제가 대부분 꽃 향이었고, 같은 일이 몇 번씩 반복되고 나서야 모든 방향제를 버렸다. 향기가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 이 이야기를 들은 여자친구가 그랑핸드(Granhand)의 사쉐를 선물해 주었다. 처음엔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출국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준비해 주었다. 그 정성에 마음이 움직여, 나는 파우치를 캐리어에 넣어 영국으로 가져갔다. 막상 방에 걸어 사용해 보니 벌은 더 이상 꼬이지 않았고, 방 안에는 내 취향의 은은한 향만 남았다. 과하지 않았고, 기능은 명확했다. 인테리어로 두어도 세련될 정도의 존재감이었다. 세상을 넓게 보라는 말을 배우며 자라왔지만, 정작 이런 작은 선택들 앞에서는 내가 꽤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이후로 나는 ‘도움이 되는 물건’과 ‘부담이 되는 배려’를 조금 다르게 구분하게 됐다. 나만의 생활 리듬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 고마움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제 역할은 정확히 해내는 물건들이다.
. 이런 물건들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브랜드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유명한 이름 인지보다, 성분이 어떤지, 실제로 얼마나 잘 작동하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잘 알려진 브랜드라도 효율이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남는 제품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 그중 하나는 건조된 블록 형태로 보관하다가 끓는 물에 넣기만 하면 국이 되는 간편식이었다. 요크 같은 소도시에도 한식당은 두 곳이나 있었고, 심지어 맛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김치찌개 한 그릇에 4만 원을 지불할 용기는 없었다. 평소에는 파스타나 볶음밥 같은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했고, 두 달에 한 번쯤 한국 음식이 너무 당길 때에만 사치처럼 한식당을 찾았다. 직접 해 먹을 수도 있었지만, 아시아 마트의 비싼 재료들은 인건비와 가성비를 생각하면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선물 받았던 이 블록 국은 생각보다 훨씬 작은 패키지 안에 한 끼를 해결하기 충분한 역할을 담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해서 질리지도 않았다.
. 또 하나는 단호박 죽이었다. 코스타(Costa)에서 처음 마셨던 펌킨 스파이스 라테의 실망감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떠올리던 단호박의 녹진하고 달달한 맛과는 전혀 달랐다. 단호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국은, 그 맛을 제대로 만나기 쉽지 않은 나라였다. 찌개류와 마찬가지로, 요리해 먹기엔 시간과 노력의 부담이 컸고, 그래서 몇 개씩 챙겨온 단호박 죽은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꺼내 먹게 되었다.
. 이 두 가지 제품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필요할 때만 등장해, 제 할 일을 마치면 조용히 사라진다는 것. 그 점이, 내가 이 물건들을 오래 기억하게 만든 이유였다.
. 돌이켜보면, 유학 생활에서 가장 고마웠던 것들은 끝까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지인들이 캐리어에 담을 물건을 고를 때면, 나는 그 기준을 떠올린다. 이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괜히 부담이 되는 배려는 아닌지. 정성의 크기보다, 상대의 생활 리듬을 얼마나 존중하는 선택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 내가 유학 시절에 쏠쏠하게 사용했던 것들이 그들의 곁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문득 필요해졌을 때까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것들로.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의외로 그런 것들 덕분에 버틸 만해진다.
. 당신의 선택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물건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