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팡 리쉬 데프리메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협업, 성공적일 것인가?
. Enfants Riches Déprimés (ERD)는 프랑스어로 ‘우울한 부잣집 아이들’을 뜻한다. 헨리 알렉산더 레비가 2012년에 설립했으며, 지금까지도 순수예술과 패션을 융합한 독자적인 철학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빈티지에서 형태를 취해 재조율하고, 펑크 · 추상표현주의 · 문학 · 음악과 럭셔리가 만나는 지점을 강조하며, 배타적 미학을 분명히 하고 있다.
Founder of Enfants Riches Déprimés
(Late 2012-Present)
“The concept? I am the concept.”
“The luxury side is extremely important for me. It’s not for everyone.”
.....................................Vogue Italia, July 2018
. 그는 미국 애틀랜타 출신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숙학교 중 하나인 스위스의 Institut Le Rosey에서 공부했으며, 이후 UCLA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예술학부에 재학했다. 그러나, 부족함 없는 환경 속에서도 15세에 마약 중독에 빠져 재활 치료 시설을 다니기 시작했다.
. 대학을 자퇴하면서 부모님의 지원이 끊기게 되었고, 그는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찾기 위해 패션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탄생한 ERD는 엘리트 펑크 (Elite Punk)를 핵심 미학으로 삼았다. 그는 펑크가 엘리트 집단처럼 커뮤니티 안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위해서 작동하며, 이러한 공동체는 분리와 고립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았다.
. ERD는 특정한 감각을 공유하고 좁은 안목을 가진 이들만 읽어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펑크의 반항적 태도와 특권적 배경에서 비롯되는 요소들을 럭셔리의 문법으로 결합하여 작품에 하위문화적 성격을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브랜드를 니힐리즘(허무주의)적 럭셔리로 정의하고, 극소량만을 생산하며 대중을 위한 합리적인 가격에는 전혀 관심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비욘세, 지드래곤, 예 등 글로벌 셀러브리티들이 ERD 제품을 착용하며, 패션 신 안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 신세계인터내셔날은 ERD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하며 2025년 5월, 서울(도산)에 파리 마레 지구에 이은 전 세계 두 번째이자 아시아 최초의 단독 매장을 오픈했다. 그는 공간 구성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이며, 영적이고 개인적이며 도발적인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모든 경험의 요소들을 감성적 · 건축적으로 신중하게 고려했다고 인터뷰했다. 또한, 브랜드 정체성을 오롯이 보여줌과 동시에 한국 전통문화와 유산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브랜드 철학과 한국적 미감을 결합한 상징적인 오브제로 공간에 깊이와 의미를 더했다.
. ERD는 한국에서 성공한다기보다는 존재하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되는 브랜드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단기적인 매출보다 포트폴리오 상 상징적 위상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이며, 서울 매장은 아는 사람만 방문하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 파리-서울이라는 극소수 국가 단독 매장은 브랜드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서울에만 있는 ERD'라는 메시지는 큰 파급력을 가지며,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특히 중국과 일본)에게 구매 거점이 될 것이다. 도산공원이라는 입지 역시 고급성과 희소성에 무게감을 더한다. 이 지역은 세련되고 트렌드에 민감한 MZ 세대 상류층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다. 명확한 정체성과 팬층을 가진 유수의 브랜드들이 팝업 혹은 단독 매장을 열기 위해 선택하는 지역으로, 단순한 쇼핑을 넘어 브랜드 세계관을 풀어내는 실험적 시도들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ERD 역시 파리 마레 지구와 마찬가지로, 하위문화 · 예술 · 초고가 배타적 미학이 공존하는 럭셔리 커뮤니티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지적 전략과 정체성이 맞물린다고 볼 수 있다.
. ERD는 대중적 성공보다는 선택된 감각을 지닌 이들이 만들어내는 상징 자본의 힘으로 움직인다. 전 세계 두 번째 매장의 위치로 서울을 결정한 것은, 브랜드가 구현하고자 하는 미학과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 도시로서 고민한 결과로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역할은 단순한 유통사를 넘어, 브랜드 정체성을 온전히 구현해 내는 파트너로 확장되었다. 실제로 매장 공간 구성에 깊이 관여하며, 브랜드 철학과 한국적 분위기를 정교하게 반영했다.
. 하지만, 앞으로 중요한 것은 단순한 현상 유지가 아닌, 어떻게 ERD만의 세계관을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해나갈 것인가이다. ‘Seoul Exclusive’ 컬렉션을 한국 매장 전용으로 출시하며 기념성을 강조했지만, 아직 브랜드 세계관을 지역 소비자들에게 구체적 서사로 확장해 나가는 단계에 대해 뚜렷한 내러티브는 보이지 않는다.
. ERD의 서울 매장은 선택된 이들을 위한 은밀한 장소로 남을 것인가, 혹은 아시아 시장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해석을 통한 또 다른 실험의 장으로 확장될 것인가? 그 가능성은 브랜드뿐만 아니라 유통 파트너의 전략적 감각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