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미냐노에서 찾은 나만의 속도

옷과 마음에 스며든 Chill의 여유

by 포르마


. 요크와 첼시에서 나와 시간을 함께한 친구, Leonardo(이하 레오)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우리의 우정이 한층 깊어질 무렵, 그는 부활절 연휴를 함께 보내자고 제안했다.


. 망설임은 없었다. 지중해권 유럽의 시골마을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에,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토스카나였다.


. 여행 준비는 간단했다. 고요함을 만끽하기 위한 호텔을 예약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현지의 느린 시간에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펜과 노트북을 잠시 내려두고,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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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석양과 함께 Vance Joy의 Riptide를 들으며 시골 도로를 달리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몬테풀차노의 깊은 와인 향과 시에나 대성당의 흑백 줄무늬, 닮은 듯하지만 저마다의 개성이 스며 있는 작은 마을들이 길 위에 이어졌다.


. 여행의 중간쯤, 우리는 산지미냐노에 도착했다. 처음엔 큰 울림이 없었지만, 이곳이 훗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소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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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지미냐노는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파란 하늘과 포도밭이 펼쳐진 아침이 나를 맞이했고, 골목 카페에서 갓 나온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을 즐기고, 따스한 햇살 아래 느릿한 고양이와 돌담길을 함께 걸었다.


. 거리에는 부드럽게 흐르는 린넨 셔츠와 깔끔한 스트레이트 팬츠, 오래된 가죽 샌들, 얇은 스카프가 어우러져 있었다. 신축성 있는 블랙 슬림핏 롱 슬리브나 깨끗한 화이트 블라우스처럼, 움직임이 편안하면서도 미니멀한 실루엣이 이곳의 잔잔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 이러한 풍경 속에서 나 역시 불편함을 내려두고, 살결에 닿는 촉감 그리고 자연이 품은 색감에 마음이 끌렸다.



산지미냐노에서 나는 이렇게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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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on Blue / Laundry Shirt (Brown)

40수 고밀도 코튼 100%로 만들어진 셔츠. 드라이한 바스락거림과 차분한 브라운 컬러가 특징이며, 루즈하지도, 타이트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실루엣이 편안한 여유를 완성한다.


· The Fabric / Burberry Cloth Cotton Pants (Natural Beige)

일본산 버버리 코튼 원단을 100% 사용한 하이웨이스트 · 레귤러 핏 팬츠. 촘촘히 직조된 원단이 주는 은은한 광택과 단정한 베이지 톤이 착장 전체에 안정감을 더한다.


· Calvin Klein / 10년 된 가죽 벨트 (30mm, 블랙)

스티칭을 최소화한 매끈한 소가죽. 오래 사용해 길들여진 표면이 살짝 러프한 느낌을 주며,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상·하의 톤온톤 조합을 가르는 담백한 구분선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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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자주 입에 올리던 말은 Chill 이었다. 늘 무언가를 채우려 애쓰는 나는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산지미냐노의 느린 시간 속에서, 그 말의 의미가 비로소 몸으로 와닿았다.


. 서두르지 않고 하루를 입듯이 살아가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레오가 말하는 진짜 여유, 마음의 느긋함과 같은 것이었다.


. 옷은 결국, 그날의 공기와 속도를 입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단순히 질감과 실루엣을 넘어, 나만의 여유와 기분을 담아내고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옷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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