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밀포드 사운드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밀포드 사운드에 일찍 도착하려는 마음에 알람을 6시부터 맞춰놓고 잤으나 7시 반에 되어서야 일어났다. 일어나자 마지 죽을 끓이고 코코아를 마셨다. 식사 후 짐 정리 완료. 텐트를 접는 사이 오랜만에 샌드 플라이들이 나타나 종아리를 뜯어먹으려 한다. 욕이 절로 나온다. 오늘도 샌드 플라이의 다그침에 탭댄스를 추며 짐 정리를 마친다.

호수 사진을 찍고 가려는데 옆에 머물렀던 아주머니가 여행 잘 하라며 인사해준다. 이제 the divide만 지나면 계속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4km 정도 이후 the divide가 보인다. 그 후로 잠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기분 좋게 안개 사이로 다운힐을 즐긴 지 얼마 안 되어 본격적인 업힐이 시작된다.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겠다는 욕심에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페달을 밟았다. 어떤 곳은 경사 가 가팔라서 댄싱을 하며 힘겹게 올라야 했다. 계속 날씨가 좋길 바랐지만 옅게 깔린 안개는 사라질 생각이 없다. 어딘가 해는 뜬 것 같은데 구름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참 가다가 평평한 지형이 나왔다. 멀리 구름 사이로 눈 덮인 산이 보인다. 크...

본격적인 업힐이 시작되고 묵묵히 나가다가 길 옆으로 무슨 열매가 보였다. 뭐지 먹어도 되나 하고 하나 먹어봤는데 맛이 구리다.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아야지.

호머 터널이 보이면 거기가 경사의 끝이므로 호머 터널만 나오길 바라며 페달질 하길 3시간. 드디어 눈앞에 터널이 보였다. 마지막 힘을 다해 터널 앞에 도착하고는 잠시 쉬며 터널 안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토마토와 바나나로 점심 해결. 자전거 뒤에 야간 전등을 달고 헬맷에 고프로 카메라를 부착, 라이트를 꺼냈다. 그러는 사이 뒤쪽에 다른 라이더들이 무더기로 도착했다. 안 그래도 여러 차들 사이에 혼자 터널을 지나갈 생각을 하니 긴장됐는데 이 라이더들이랑 같이 가면 낫겠다. 그들이 출발하길 기다렸다가 파란 신호를 받고 출발했다. 야맹증인 내 눈으론 어두운 터널 안이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는데 다행히 앞서 가는 다른 라이더가 빨간 전등을 켜고 가서 그 전등 불만 쳐다보며 따라갔다. 1.2km의 터널을 조용히 숨죽여 달렸다. 앞이 제대로 안 보이니 길바닥이 평평한지 구덩이가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체감상 꽤 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호머 터널을 지날 수 있었다. 반대편엔 차들이 신호 대기를 하고 있다. 앞서 가던 라이더들도 터널을 지나 다운힐을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부턴 계속 다운힐이다. 오랜만에 다운힐을 즐기며 내려가는데 뒤에서 뭔가 퍽!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물통이 떨어졌다. 다시 가서 주웠는데 옆구리가 터졌는지 물이 샌다. 다시 출발. 경사가 다시 줄어들더니 어느덧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 위해 퀸스타운에서부터 장장 3일이 걸렸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크루즈 예약을 했다. 날씨가 안 좋지만 내일 아침엔 떠나야 하니 아쉬운 대로 오늘 바로 크루즈 관광을 하기로 했다. 한 40~50불 하겠거니 했는데 무려 75불이다. 결제를 하고 숙박할 곳이 있나 알아봤다.

가장 저렴한 텐트사이트가 있는 곳을 안내받았다. 크루즈는 오후 3시 45분에 출발한다. 캠핑장으로 가서 먼저 짐을 풀었다. 인포메이션으로부터 1~2km 떨어진 밀포드 랏지라는 캠핑장이다. 체크인을 하고 텐트를 치였는데 샌드플라이들이 보인다. (후...) 겨울엔 안 사는 줄 알았는데 도대체 무슨 조건이어야 얘들이 없을까.

와나카는 정말 축복받은 마을이다. 텐트를 치고 짐을 넣자마자 샤워를 했다. 어제 야영을 했더니 꼴이 말이 아니다. 씻고 개운해진 상태로 버스를 예약하러 버스 터미널로 갔다. 버스로 크롬웰에 가고 싶었으나 디렉트로 가는 노선이 없단다. 결국 퀸스타운으로 다시 가기로 했다. 왔던 길 60km 미터를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게다가 버스가 오전에 출발하지 않고 오후 3시 20분에나 출발한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크루즈를 하루 미뤄 타보는 건데 아쉽다.

버스 예약 후, 한 시간 정도 여유 시간이 생겼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었더니 배도 고프고 몸 좀 따듯하게 데울까 싶어 카페에 갔다. 모카치노와 피자 조각을 시기고 느긋하게 먹고는 다시 터미널로 갔다. 날이 안 좋은데도 여러 사람들이 크루즈를 타고 있다.

'아. 날만 좋았어도.'

아쉬운 마음으로 크루즈에 올랐다. 날이 흐린 데다가 구름이 많이 껴서 대부분의 산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밖이 몹시 추워 크루즈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했다. 2시간이 지나고 크루즈 관광이 끝났는데 별 느낌이 없다. 힘들게 도착한 밀포드 사운드가 이렇게 막을 내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