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승리 Aug 14. 2022

Lake Gunn 호수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새벽에 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3시간 정도 잤을까. 피곤하지만 출발해야 한다. 날이 흐리다.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비가 오면 안 될 텐데. 키친으로 가서 수프를 끓이고 빵이랑 같이 먹었다. 몸이 좀 데워지고 짐 정리를 했다. 

텐트를 걷고 출발 준비를 마치니 9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보다 좀 늦게 출발하게 됐다. 마을을 벗어나 호수 옆의 차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이 꽤 있었으나 이제 오르막길 오르는데도 익숙해져 그리 걱정할 건 없다. 다만 계속 오르막길이 나오니 속도가 좀처럼 붙질 않는다. 그래도 어제 맞바람을 맞으며 계속 같은 길을 갈 때보다는 풍경도 계속 바뀌고 속도도 붙었다 줄었다 해서 지루하진 않다.

중간에 카페가 있으면 들러서 점심을 먹을 생각으로 배가 고파도 참았다. Downs te anau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 같은 거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고 호텔 하나에 카페가 같이 있다. 그리고 경고문처럼 밀포드 사운드 가는 90km 지점까지의 마지막 카페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들러서 모카치노를 시키고 간식으로 싸온 달걀과 토마토를 같이 먹었다. 

구름 낀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엔진에 오일 붓듯 달걀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카페를 나와 다시 출발. 이제부터 계속 오르막 길이 이어질 거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옆으로 무수히 많은 관광버스가 지나간다. 저기 탄 사람들은 좋겠다.

멀리 장엄한 산 위 먹구름들을 바라보며 달리고 달린다. 맞바람이 심하진 않으나 계속되는 오르막길로 좀체 거리가 늘질 않는다. 몸이 지치진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제자리걸음이다. 그래도 꾸준히 밟고 밟는다. 가는 길에 꽤 많은 캠핑장들이 보인다. 화장실들도 같이 있어 길바닥에 볼일을 보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열심히 페달질을 하는데 오전에 봤던 관광버스들이 벌써 관광을 끝냈는지 되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전 하루 더 달려가야 합니다...'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차량 중에 날 못 본 차는 없을 거다. 가고 오는 길이 하나이다 보니 가던 사람이나 오는 사람이나 자전거를 타고 낑낑 거리는 나를 봤을 거다. 80km를 달리는데 하루 종일 걸렸으니 저 사람들은 쟤가 언제쯤 도착하나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중간중간 응원해주는 사람들도 있어 기쁘다.


분명 오르막길인 듯한데 내리막길을 지나고 분명 내리막길인데 오르막길을 몇 번 지나고 mirror lake가 보인다. 밀포드 사운드를 검색하다가 봤던 곳인데 날이 좋은 날엔 호수에 주위의 풍경이 아름답게 반사되어 그런 이름이 지어진 것 같았다. 오늘은 날이 흐려 그냥저냥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혼자 이상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름다운 장소나 반가운 사람들 덕에 즐겁기도 하지만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 수도 있다.

Mirror lake를 지나면서부터 경사가 가팔라졌다. 80km 지점쯤에 오늘 캠핑할 장소가 있는데 60km 지점부터 경사로 인해 앞으로 가기가 힘들다. 그래도 이제 웬만한 경사는 끌바 없이 간다. 물론 거의 막판에 급경사가 다가와 결국 끌바로 올라갔다. 더 이상 무리하면 무릎이 나갈 듯한 기분이다. 


오늘 쉬려고 한 곳이 lake gunn이란 곳으로 호수 주변 doc다. 옆에 드디어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산중에 저런 어마어마한 크기의 호수라니 대단하다. 직감적으로 이제 다 왔음을 느꼈다. 조금만 참으면 돼. 그사이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마음이 급해져 초인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Lake gunn이란 팻말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여러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장소를 둘러보다가 적당한 곳에 텐트를 쳤다. 짐을 넣고 저녁으로 미고랭을 먹었다. 호수 물을 받아 쓰려다가 혹시나 하고 그냥 챙겨 온 물을 썼다. 내가 물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걸 봤는지 옆에 있던 여행객이 고맙게도 물을 주었다.


주행거리: 82km

매거진의 이전글 절망의 맞바람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