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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승리 Aug 14. 2022

절망의 맞바람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오랜만의 캠핑으로 지저분한 상태로 일어났다. 어제 뜨거운 물을 허벅지에 쏟아 그걸 식힌다고 가지고 있던 물을 썼더니 남아있는 식수가 많지 않다. 중간에 마트에 들러서 음료수라도 사야겠다. 



수프를 먹고 냄비를 물로 한번 대충 헹궈 휴지로 닦아냈다. 오늘은 날이 좋은지 이른 시간인데도 해가 벌써부터 쨍쨍하다. 자 그럼 출발해볼까나.


어제 슬그머니 나타난 오르막길을 지나왔더니 오늘은 출발부터 내리막길이다. 이미 뉴질랜드 풍경은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길은 또 색다르다. 햇살이 금빛 물결을 만들어 주어 출발하고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기쁜 마음으로 라이딩을 했다. 



캬. 이 맛에 자전거 타는 거 아니겠는가. 얼굴에 연신 미소를 띠며 five river를 지나 mossburn으로 향했다. 모스번 가는 길에는 계속 옆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상당히 강한 바람이라 중심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옆으로 순식간에 밀려난다. 그렇다고 찻길 쪽으로 중심을 잡으면 차가 지나가는 순간 차도로 몸이 쏠려 위험하다. 


'아 뭐냐 차라리 역풍이나 불지.' 



투덜거리며 mossburn에 도착했다. 바람만 안 불어도 더 빨리 도착했을 텐데 늦어졌다. 그래도 점심때라 길가에 있는 카페에서 모카치노를 시켜 빵과 함께 먹었다. 달달하고 따듯한 모카치노가 몸을 훈훈하게 했다. 

커피를 마시고 슈퍼마켓에 들러 음료수를 사려는데 싼 게 없다. 대부분 4~5불이다. 그냥 가자. 오늘 내로 te anau에 도착할 테니까. 챙겨간 음료수는 거의 다 마시고 식수는 200ml 정도가 남았다. 불안하긴 했으나 정 급하면 강물이라도 챙기지 뭐. 그냥 출발. 



모스번을 벗어난 지 얼마나 됐을까. 옆으로 불던 바람이 내 투덜거림대로 맞바람이 됐다. 바람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분다. 마치 언덕길이라도 오르는 것처럼 자전거를 앞으로  끌고 가기도 힘들다. 순간 중심을 놓치면 휙 하고 옆으로 밀려난다. 한 번 중심을 잃었을 땐 자전거가 뒤로 넘어져 버렸다. 


하... 참.


지나가던 사람이 괜찮냐고 물어본다. 그때까지만 해도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바람이 엄청 심하게 부는데도 그걸 즐길 여유가 그땐 있었다. 

조금 더 가는데 '진짜 야!!!!'라고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의 바람이 분다. 실제로 소리도 한 번 질렀다. 이놈의 바람은 멈출 생각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밀포드 사운드는 뭐가 이리 수줍어 나를 이리 밀어낸단 말인가. 


하필 도로 양 옆으로 진짜 허허벌판이어서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래도 이때까진 여유가 있어 혼자 웃으며 동영상도 찍고 그랬더랬다. 근데 그 바람이 하루 종일 맞바람으로만 계속 불지 누가 알았겠는가. 남은 길은 50km가 넘는데 자전거 속도는 맞바람 때문에 시속 6~7km를 내기 힘들다. 게다가 나중에야 알았는데. 꾸준한 오르막 경사여서 속도를 내기가 더 힘들었다. 



80km 거리를 달리는 거야 시간만 투자하면 일도 아닌데 시속 6km로 몇 시간째 달리니 미칠 노릇이다. 게다가 바람 저항을 줄인다고 허리랑 고개를 계속 숙이고 갔더니 몸이 미친 듯이 뻐근하다. 정말 바람만 멈춰도 순식간에 시속 15km 이상으로 속력을 낼 수 있는데 바람이 멈출 생각이 없다. 


30km 위치에서 50km 이동하는데 3시간은 걸린 것 같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의 바람이다. 언제쯤 이 바람이 멈출까.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까. 느릿느릿 거북이 마냥 한발 한발 내딛으며 온갖 고통을 몸으로 느꼈다. 


보통 때라면 언덕이 좀 있더라도 100km은 갔을 시간 동안 간신히 80km를 넘어 ta anau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한 상태에 더럽기까지 한 몰골로 홀리데이 파크에 들어가 바로 텐트 사이트를 빌렸다. 



짐을 풀자마자 텐트에 집어넣고 마트로 갔다. 오늘은 꼭 맥주를 마셔줘야겠다. 언젠가부터 고생을 하고 나면 포상처럼 맥주를 마시게 됐다. 맥주와 고기, 쌀, 과일을 사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어제 캠핑하느라 씻지도 않은 상태라 바로 샤워부터 하고 먹을 걸 챙겨 키친으로 갔다.



키친이 넓은 식당처럼 생겼고 매우 깔끔했다. 다만 사람이 붐비는 시간이라 싱크대를 모두 사용 중이다. 나는 물만 있으면 됐으므로 쌀을 씻어 가스레인지에 올리곤 기다렸다. 밥을 하고 고기를 굽고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미드 24시를 봤다. 24시 갈수록 막장일세. 한참 키친에서 쉬다가 텐트로 들어왔다.




코스

경사가 심하진 않으나 꾸준한 오르막 경사가 있으며 미친 맞바람이 분다. 풍경은 볼만하나 mossburn에서 te anau 가는 길은 딱히 특별하진 않다.


숙박
키위 홀리데이파크에 묶는데 시설이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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