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m 고개를 넘어 - 나 홀로 자전거 여행
옷을 여러 겹 껴 입고 잤는데도 춥다. 어제는 꽤나 지친 상태라 8시부터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은 꽤 높은 곳을 지나야 하므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우유를 데워 코코아를 만들고 빵이랑 같이 먹었다. 짐 정리 후 출발 준비를 마쳤다. 교회를 나서며 쉐릴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릴까 말까 고민이 됐지만, 어제 인사를 했는데 다시 찾아가는 게 맞는 건지. 가서 사진이라도 같이 찍자고 할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멀리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지려나? 여전히 추운 날씨 속에 페달질을 했다. 조금 움직이니 몸이 데워져 입었던 후드를 벗었다. 막상 후드를 벗으니 살짝 쌀쌀한 게 느껴졌지만 다시 달리면 괜찮을 것 같다.
오늘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약 1000m에 달하는 고개를 지나야 하는데 다행인 것은 50km에 걸쳐 천천히 높이가 올라가므로 높이에 비해 그다지 힘들지 않은 것 같다.
꾸준히 페달질을 하며 가는데 화장실이 급해졌다. 어디 볼일을 볼 곳이 없나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쉼터가 보였다. 하지만, 도착한 쉼터엔 화장실이 없다. 중간에 간식으로 달걀이랑 바나나를 먹었다.
주변에 혹시 볼일 볼 곳이 없나 둘러보다가 인적이 드문 곳이 있길래 냉큼 가서 볼일을 봤다. 누가 갑자기 오지 않을까 긴장한 상태로 볼일을 보고 개울에서 손을 닦고 나오는데 어떤 동양인 여자가 앞으로 걸어간다. '헉. 설마 내가 바지 까고 볼일 보는 걸 본 걸까?'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처자도 볼일을 봤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처자도 날 수상하게 바라본 것이 아닐까. (누가 봐도 내 모습은 수상해 보였을 것 같기도 하다.)
볼일을 보고 한결 간편해진 마음으로 페달질을 했다. 점점 맑아지리라 빌었던 날씨가 여전히 우중충 하더니 기어코 빗줄기가 내린다. 그래도 비가 막 떨어지진 않고 보슬비 같은 것이 꾸준히 내렸다. 처음에 짐이 젖지 않도록 커버를 덮을까 말까 하다가 빗줄기가 좀 더 심해져 커버를 덮었다. 날씨도 추운데 비까지 오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 하는 건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열심히 달리는 것뿐이다.
산과 산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한참 달려 거의 고지에 다 달았다. Lindis Pass라는 팻말이 보였다. 여길 지나면 이제 내리막길 시작이다. 장장 50km 되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물론 계속 오르막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꽤나 지치는 여정이다. 왼쪽 무릎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업힐을 오를 때 무릎이 당기더니 더 이상 무리를 하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통증이 왔다.
Lindis pass를 지나 2km만 더 가면 드디어 내리막 길이 시작한다. 마음 같아선 끝까지 페달질을 해서 올라가고 싶었지만 무릎을 상하게 할 순 없으므로 끌바를 하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기만 지나면 드디어 정상이다. 조금만 더. 낑낑 거리며 겨우 고개를 넘었을 때 이정표가 보였다. 진행방향으로 Omarama 32km 왔던 방향으로 Tarras 48km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Lindis summit 965m라고 쓰여 있었다. 드디어 오른 것이다. 하하.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다운힐을 즐기기 시작. 힘들던 왼쪽 무릎도 다운힐에서는 꽤 달릴만했다. 앞으로 30km만 더 가면 쉴 수 있다. 희망을 갖고 저녁으로 뭘 먹을지 생각했다. 따듯한 미역국에 밥이랑 같이 먹어야지.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한결 밝아진 마음으로 나머지 길을 달렸다.
드디어 Omarama에 도착.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Top 10 홀리데이 파크가 보인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다른 홀리데이 파크는 8km를 더 움직여야 하므로 여기서 머무는 게 나을 것 같다. 바로 체크인을 하고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짐을 넣고 슈퍼마켓에 갔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슈퍼마켓 물건들이 죄다 한 가격 한다. 고기랑 빵 그리고 팀탐과 바나나를 사고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장 봐온 것들을 텐트에 집어넣고 샤워를 했다. 아. 따듯한 물이다. 따듯한 물에 몸을 녹이니 살 것 같다. 야영을 하면 돈은 아낄 수 있지만 워낙 고되다 보니 이렇게 씻고 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이 감사히 느껴진다.
샤워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키친으로 갔다. 밥을 하고 고기를 굽고 미역국을 끓였다. 미역국을 좀 맛있게 하려면 국간장과 마늘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을 들고 다닐 수 없으니 그냥 소금 간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금이 갈릭 소금이라서 마늘은 대체되지 않았을까? 최대한 미역을 우리는 방향으로 끓여보자.
밥이 다 될 즈음 고기를 굽고 미역국을 먹었는데 뭔가 밋밋하다. 소금을 좀 더 넣으니 꽤 괜찮아졌다. 오랜만에 국물과 함께 밥을 먹는다.
고기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고추장이 어느새 많이 사라졌다. 맙소사 앞으로는 뭘 먹으라고. 점점 사라져 가는 고추장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면서도 고기를 입으로 쏙쏙 집어넣는다.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TV lounge에서 전자제품들을 충전하며 TV를 봤다. 그러다 어떤 아저씨가 날씨를 봐야겠다면서 채널을 돌렸는데 때마침 일기예보가 나온다. 덕분에 날씨를 보게 됐는데 밀포드 사운드 날씨가 아주 맑단다. (젠장) 그렇게 힘들게 갔을 땐 우중충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다행이라면 내일이면 구름이 걷히고 날씨가 괜찮아질 것 같다.
코스
천천히 높이가 올라가는 오르막길이다. 큰 경사를 이루는 길은 없다. 고개를 넘기 전인 마지막 2~3km가 조금 높은 경사를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