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라는 그들의 외침은 '인간의 죽음'으로 메아리쳐 돌아왔다.
2015년, 고베에서 교환 학기를 마친 후 방콕에 있는 유네스코 지역사무소에서 인턴십을 하게 되었다. 11월 중순부터 근무를 시작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해의 끝이 다가왔다. 국제기구에서는 연말이 되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휴가를 떠나지만, 나는 이제 막 일본에서 태국으로 건너온 터라 굳이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캄보디아인 형이 생각났다. 그 형은 한국 교회의 후원으로 신학 공부를 잘 마치고 캄보디아로 돌아가 교회를 세웠다. 형이 불교권 국가인 캄보디아에서 목회를 하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나름의 응원과 격려를 전하고 싶어 잠시 캄보디아에 다녀오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캄보디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앙코르와트 같이 대단한 유적지도 가볼 만해 보였지만, 유독 내 마음을 끄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그 이름부터 섬뜩한 '킬링필드'였다.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폴 포트가 이끌던 급진 공산주의 성향의 크메르루주 정권에 의해 학살된 캄보디아인들이 매장된 곳을 의미한다. 크메르루주 정권은 노동자와 농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지식인들을 시작으로 정치인들과 군인, 그리고 어른들과 아이들까지 약 200만 명을 학살했다. 이 시기 캄보디아의 전체 인구가 800만이었으니 인구의 4분의 1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가족과 친척, 친구 중에 죽임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캄보디아에 도착 한 다음 날 형의 오토바이를 타고 킬링필드 박물관에 도착했다. 나는 형에게 박물관 안을 같이 둘러보자고 했지만, 형은 처음 보는 슬픈 표정으로 나 혼자만 다녀오라고 말했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은 슬픔과 고통의 기억으로 킬링필드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을 주저한다고 한다.
과거는 점으로 끝나지 않고 선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여전히 많은 캄보디인들의 삶에 큰 상처로 남아있다.
박물관에서는 끔찍한 고문과 학살의 흔적, 희생자들과 관련된 기록물들을 볼 수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따라 밖으로 나가니, 희생자들이 묻힌 매장지와 회백색 유골들로 가득 찬 추모탑이 보였다. 그 근처에는 ‘킬링 트리’라 불리는 큰 나무가 하나 서있는데, 크메르루주군은 아이들의 두 발을 잡고 이 나무에 머리를 내리쳐 무참히 목숨을 빼앗았다. 한때 무고한 아이들의 피로 얼룩졌을 이 나무는 이제 추모객들이 걸어 둔 형형색색의 팔찌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비극의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 어떤 슬픔보다 먼저 밀려온 것은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마치 가슴 한쪽이 무거운 돌에 짓눌리는 듯한 답답함도 계속 느껴졌다. 그리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시간이 흘러, 한 북한인권 시민단체에서 인턴십을 할 때도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같은 자료들을 통해 북한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접하며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뿐일까, 과거 중국 마오쩌뚱의 문화대혁명과 구소련 스탈린의 대숙청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남긴 상흔은 여전히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의 상식과 양심으로는, 한 인간과 한 정권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무참히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분명 있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러한 대량학살 사건들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킬링필드의 폴포트, 문화대혁명의 마오쩌뚱, 대숙청의 스탈린, 그리고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북한 정권 - 이 모두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무신론적' 유물론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 사상은 인간을 한낱 '물질', 혹은 '노동력'으로 이해한다. 마르크스가 설파한 이러한 '인간관'이 공산주의 사상을 배우고 따랐던 이들의 '인간관'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전광식. 목회자에게 주는 인문학의 의미. 교회갱신협의회 2018년 제23차 영성수련회)
공산주의를 추종했던 이들은 인간을 단지 '단백질 덩어리'나 '빵 만드는 기계' 정도로 보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생명을 죽이는 일이 어떤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전광식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인간은 공산주의의 붉은 불길을 더욱 거세게 타오르게 할 '땔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과 더불어, 현시대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역시 초월적 존재를 베재하는 세계관 위에서 형성되었다. 이들의 이론 속에서 인간은 '동물'로 격하되며, '욕망의 하수인'으로 환원된다.
이렇듯, 무신론적 생각의 틀 안에서 인간은 더 이상 고상하거나 특별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아니다. 이러한 인간관이 지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음의 땅으로 내몬 것이며, 오늘날에도 이 세상이 겪고 있는 수많은 진통과 비극의 배후에 있다.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
무신론적 인간관이 초래한 '인간의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답은 ‘기독교 인간관’에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존귀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지으셨다'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다. 이러한 믿음이 '천부인권 사상'으로 발전해 '무신론적 인간관'의 끊임없는 위협 속에서도 인류의 존엄을 지키고 보호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는 그들에게 양도할 수 없는 몇 가지 권리를 부여하였다. (1776 미국 독립선언서 중)
나아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 사건 -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인간들을 위해, 직접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 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가장 깊이 있고 강력하게 증거하는 메시지이다.
영국의 국회의원으로 노예무역과 노예제 폐지를 위해 일생을 헌신했던 '영국의 양심' 윌리엄 월버포스. 나치의 박해 속에서 유대인들을 구하고, 강제수용소에서 가족들을 죽인 이들을 용서한 '용서의 증인' 코리 텐 붐. 비폭력 저항운동을 펼치며 미국의 인종차별 폐지를 이끈 'I Have a Dream' 마틴 루터킹.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양자로 삼았으며, 사회에서 버림받았던 나환자들을 보살폈던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 돈이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천막 진료소를 세우고,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초석을 놓은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우고, 신분제 철폐, 토지개혁과 의무교육을 통해 국민을 위한 나라를 만든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이들이 보여준 사랑과 용서, 섬김과 희생,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이들이 가졌던 '인간관'과 절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인류 역사의 '진보'를 외치며 다시 한번 신을 못 박으려 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무신론 사상과 이론의 신봉자들은, 기독교 전통에서의 탈피만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인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은 죽었다’라는 그들의 외침이, 결국 '인간의 죽음'으로 메아리쳐 돌아왔음을 분명히 증언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기독교 신앙과 가치를 따르고 지키는 것에 있음을.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짐바브웨에서 만난 한 동생의 응원과 격려 덕분이었습니다.
- Big thanks to SJ.
본 글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이며, 제가 속한 조직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해당 내용은 개인적인 경험과 관점, 신뢰성 있는 자료와 학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특정 국가나 단체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