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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Oct 16. 2020

직장에도 환불원정대가 필요하다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뭐하니’를 통해 결성된 걸그룹 ‘환불원정대’의 인기가 대단하다. 데뷔곡 ‘Don’t touch me’는 발매 하루 만에 국내 주요 음원차트 1위를 휩쓸었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음악차트에까지 잇따라 진입했다. 환불원정대의 이 같은 인기는 사실 예견된 일이긴 했다.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라는 각기 서로 다른 시대를 사로잡은 대표 디바들이 한 팀으로 뭉친다는 소식만으로도 가요팬들은 환호했고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실제로 그들이 뭉쳐 세상에 내놓은 음원은 뚜렷하게 다른 네 명의 개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각자의 장점은 더 부각됐고, 완벽한 시너지를 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들의 나이였다. 네 멤버의 나이는 각각 50대, 40대, 30대, 20대로 세대가 확연히 다르다. 마치 일부러 여러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을 선발한 것처럼 서로 다른 세대가 한 명씩 모였다. 이들의 세대 분포가 특별히 눈에 들어온 건 그것이 현재 보편적인 직장들의 인적 구성과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20대에서 50대의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고 관계를 맺으며 성과를 내고 있다. 회사별로 직급의 이름과 체계는 다르지만 대체로 50대는 부장과 임원, 40대는 차장, 30대는 과장, 20대는 대리를 맡고 있고, 각 직급별로 담당하는 역할과 권한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환불원정대가 다른 점은 구성원들의 나이와 경력이 그렇게 다 제각각이지만 모두 똑같은 위치에서 속된 말로 ‘견장을 떼고’ 일을 한다는 점이다. 함께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이가 훨씬 많은 선배라고 해서 더 존중받는 것도 없고, 반대로 후배라고 해서 더 봐주는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모두 똑같은 한 명의 멤버일 뿐이다. 서로 다른 건 노래의 파트 분배에 있어서 각자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맡는다는 것 정도이다. 이들은 그렇게 똑같은 팀원으로써 어떤 배려나 차별도 없이 각자 자신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써 팀 전체가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하고 있다. 이게 별 것 아닌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직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환불원정대 각 멤버들의 활동을 잘 들여다보면 이런 조화가 가능하게 하는 각자의 역할이 숨어있다.


 팀원들 가운데 경력이 가장 많은 50대의 엄정화가 팀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모두에게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약점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다. 갑상선 수술로 목이 다쳐서 지금은 전처럼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과 지금의 아이돌과 달리 자신은 체계적인 연습생 기간을 거치지 못해 제대로 안무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공개했다. 과거 최고의 노래와 춤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사람이 자신의 무기가 이제 녹이 슬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지 않고 지금의 부족함을 인정한 것이다.

 더 중요한 건 고백에서 그치지 않고, 그런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초부터 다시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선배로서의 권위를 내려놓은 채 자신보다 한참 어린 후배들 앞에서 다시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안무 훈련을 위해 더 많은 연습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다. 과거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로서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후배들로부터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나이와 경력이 주는 혜택을 누리지 않았다. 정작 후배들은 하지 않는 기초적인 발성연습을 다시 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지금 한창 활동 중인 2,30대와 정면으로 맞붙어서도 결코 실력으로 밀리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본다. 그러한 단단한 의지는 결국 그녀의 잃어버렸던 목소리를 되찾아 주었고, 그녀의 노력을 지켜본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엄정화의 이런 모습은 50대가 되면 소수의 관리자, 혹은 보직자가 되어야만 조직에서 살아남고, 그 자리에 앉지 못하면 그대로 조직에서 도태돼 버리거나, 아예 조직을 떠나야 하는 우리 사회의 직장 문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나이와 경력이 다르면 하는 일도 달라야 하며 그에 따라 역할이 제한된다는 고정관념은 얼핏 보면 경력자들을 우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로 그들을 밖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경력이 쌓일수록 갈 수 있는 자리는 급격히 줄어들고 할 수 있는 일은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조직이 잘 되려면 나이가 아닌 능력과 적성으로 사람을 평가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50대가 20대의 일을 할 수도  있고, 그것이 누가 보아도 어색하지 않은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견장 떼고 20대들과 함께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노장들의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다.


 40대인 이효리는 팀의 리더를 맡고 있다. 그녀보다 윗세대가 존재하지만 팀원들은 오직 능력과 적성을 고려해 그녀를 리더로 선정했다. 중간 세대가 리더를 맡고 있지만 팀에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탄탄한 경험에서 오는 노련함과 여전한 젊음에서 오는 에너지를 동시에 갖춘 40대의 그녀는 중간에서 확실하게 중심을 잡고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모두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해 준다. 팀원들이 활약을 펼치는 동안 자신은 물러나 있는 듯하다가도 꼭 필요할 때마다 딱딱 나서서 세게 한 방씩을 터뜨린다. 데뷔곡이 주요 음원차트의 1위를 휩쓴 날, 엄정화는 SNS에서 이효리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너는 정말 큰 사람이구나. 멋있어. 무대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외의 모습과 모두를 위해 쓰는 마음이 너무나도 멋있고 크구나.”


 나이 많은 선배한테서 ‘큰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는 후배도, 리더인 후배를 이렇게 진심으로 존중하고 따르는 선배도 모두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직장에서 40대는 어떨까. 일부 대기업에서 소수의 사람이 임원으로 발탁되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직장에서 40대의 역할은 50대를 떠받치는 참모로 제한된다. 환불원정대의 이효리 같은 능력이 있어도, 리더는 되기 어렵다. 그러면서 위에서 눌리고 아래에서 치이느라 온갖 고생을 떠안는다. 2,30대보다 경험이 많고, 50대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장점을 활용해야 하는데, 거꾸로 2,30대보다는 나이가 많고, 50대보다는 경륜이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권한은 적고 책임은 많으니 스트레스만 늘어간다. 정치권에서도 40대가 총리나 대통령이 되어 다양한 나이와 성별의 장관들을 리드하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조차 40대가 별로 없는 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40대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환불원정대의 젊은 세대인 30대 제시, 20대 화사가 보여준 건 압도적인 실력이었다. 녹음실의 그녀들은 감탄 그 자체였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으로 중무장한 그녀들의 실력 앞에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환호와 찬사가 전부였다. 마이크 앞에서 화려하게 풀어내는 그녀들의 소울과 스타일은 음악 환경이 전혀 다른 시대에서 성공을 이룬 윗세대의 가수들이 차마 흉내 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 앞에서 나이와 경력을 내세워 거드름을 피울 수 있는 윗세대는 없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 그녀들은 노래뿐만 아니라 입담에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들보다 훨씬 경력에서 앞서는 선배들 앞에서 조금도 꿇리지 않고 맹활약을 펼치는 그녀들을 보며 데뷔곡 ‘Don’t touch me’의 제시 파트 한 구절이 떠올랐다.


“몇 살을 먹는대도 절대로 난 안 꿇리는 걸”


 직장에서 2,30대가 4,50대의 경험과 노하우를 넘어설 수는 없다. 윗세대는 젊은 세대보다 그 분야에서 훨씬 많은 일을 겪었으며,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지혜를 쌓았다. 그들의 노련함 앞에서 2,30대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윗세대가 갖지 못한 그들만의 감성과 감각, 그리고 개성이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모든 게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윗세대보다 훨씬 IT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취향은 강력한 무기이다. 그런 자신들만의 강점으로 조직에 기여한다면 젊은 세대는 윗세대의 아랫사람이 아닌 당당한 동료로서 존재할 수 있다.


 세대갈등은 계층갈등, 지역갈등과 함께 우리 사회의 통합을 막는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갈등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신통치 않다. 그동안 가장 많이 나온 해법은 '상대에 대한 이해'이다. 하지만 어쩌면 갈등을 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상대가 아닌 자신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자신의 실력과 개성을 냉철하게 되돌아본 뒤, 윗세대는 불필요한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젊은 세대는 조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때 모든 이가 차별과 배제 없이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환불원정대가 주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환불원정대가 직장에서, 그리고 여러 조직에서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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