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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Mar 17. 2021

단톡방에서는왜 흔적 없이 나갈 수 없을까?

 내가 속해있는 카톡 단체방 중에 애매한 곳이 몇 곳 있다. 단체방에 들어가 있기는 한데 딱히 메시지를 읽거나 쓰지는 않고, 그렇다고 방에서 나가지도 않은 채 계속 머물러 있는 곳들이다. 이런저런 경위로 들어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속해 있지만 대화에 동참하지는 않다 보니 다른 사람들 역시 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잘 인식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나로서는 별로 관심 없는 메시지들이 자꾸 뜨고 있어 웬만하면 나가고 싶은데 막상 그걸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흔적 없이 조용히 나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가는 순간 곧바로 방 전체에 선명하게 탈퇴를 알리는 메시지가 뜨기 때문이다.


“***님이 나갔습니다”


 물론 에서 른 사람의 탈퇴 메시지가 뜨건 말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내 의도와 달리 여러 가지 오해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별 뜻 없는 단순한 탈퇴 메시지가 자칫 단체방에 남아있는 이들과 인연을 끊겠다는 공개 선언으로 읽힐 수도 있다.


“당신들한테 불만 있습니다”

“더 이상 당신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


 실제로 내가 속해있던 한 모임에서는 평소 운영 방식에 불만을 갖고 있던 한 멤버가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무 말 없이 단톡방을 탈퇴해버렸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뒤이어 줄줄이 방을 나갔다. 그들의 탈퇴를 알리는 메시지들이 연달아 뜬 뒤 한동안 썰렁했던 단톡방의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에게 단톡방 탈퇴 메시지는 어떤 말보다 강력한 불만과 항의의 표시였으며,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최근에는 단톡방 탈퇴 메시지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새로운 학교폭력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단체방을 만들어서 친구들을 초대한 뒤, 한 명만 남겨놓고 모조리 탈퇴해버리는 식이다. 평소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자신만 남겨놓고 모두 떠나버리는 상황을 맞닥뜨린 피해자는 자신을 향해 계속해서 울리는 탈퇴 메시지들에 큰 충격을 받는다. 한 개인을 향해 집단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일종의 사이버 왕따인데, SNS 등을 이용해 사이버상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는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의 한 형태이다. 이런 일을 겪은 피해자들은 물리적인 폭력 못지않은 큰 상처를 입게 되며, 평생 동안 치유되지 않는 깊은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단체방 탈퇴 메시지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집단을 향한 항의의 표시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력의 수단으로 쓰이다 보니, 특별한 의미가 없더라도 탈퇴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서 ‘흔적 없이 단톡방 나가는 법’을 검색해 보면 엄청나게 많은 글들이 나온다. 각종 편법을 이용해 조용히 단톡방을 나가는 방법들이 소개되는데, 하나같이 복잡하고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굳이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흔적 없이 단톡방을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원하지 않는 단톡방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몇 년 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성인남녀 731명을 대상으로 단톡방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단톡방으로 인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처방법으로 ‘조용히 퇴장했다’고 답한 사람은 7%에 그쳤고, ‘양해를 구하고 퇴장했다’는 사람은 3%에 불과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단톡방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눈치가 보여서 차마 나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참아가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왜 카카오톡은 누군가 단톡방에서 나갈 때 모든 참여자들에게 반드시 탈퇴를 알리는 메시지를 띄우는 것일까. 한 기사에 따르면 카카오 관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단톡방을 나간다는 알림을 설정한 것은 메신저 서비스 특성상 수신자와 발신자 양쪽을 고려한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재는 변경 계획이 없다. 해당 기능을 없앨 경우 단톡방에 해당 멤버가 나갔는지도 모른 채 대화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여전히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단톡방에 대한 다양한 건의 사항이 있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2018.9.8. 머니투데이. ‘카톡 메시지도 삭제…단톡방 몰래 탈퇴는?)


 카카오로서는 갑자기 탈퇴 메시지를 없앨 경우 가입자들이 겪을 수 있는 또 다른 불편과 부작용을 고려한 듯하다. 단체방에서 누군가와 한참 대화하고 있는데 중간에 상대가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방식이 많은 이들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그것이 사이버폭력의 수단으로까지 이용되고 있다면 한 번쯤 다른 대안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단톡방에 한해서 특정한 조건 하에 탈퇴 메시지를 안 띄울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거나, 사후에 별도의 창에서 탈퇴멤버의 현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은 어떨까 싶다.

 몇 년 전부터 사이버상에서 주목받고 있는 말 중에 ‘잊힐 권리’라는 게 있다. 보통 사이버상에서 자신의 남겨진 기록들을 삭제하고 싶어 하는 경우를 얘기하는데, 인터넷과 SNS에서 개인정보 침해로 인한 문제가 많아지고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면서 최근 들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카카오톡이 사람들의 일상이 되고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통로가 된 지금 단톡방에서도 조용히 잊힐 권리를 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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