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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Aug 10. 2023

발리에 두 번 살다 (2)

매캐한 아침 공기 vs 무심히 푸른 하늘

사실 나는 오늘로 발리에 들어온 지 닷새 밖에 되지 않았다.


도착한 지 4일 만에 정신 차리고 일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굉장히 빠르게 정착한 셈이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었을 일이고, 15년 전의 인연들이 도와준 덕분에 할 수 있었다.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도움 받으며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았다. 내가 남을 도울 때엔 그렇게까지 절실히 와닿지 않더니, 내가 도움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단비 같은 도움을 받으니, 내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교훈으로 뼈에 새기게 되는 것이었다. 이 다음 내가 누군가를 도울 차례가 되면 더 신실하게 도울 수 있도록. 


15년 전에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었기에 단촐하게 함께 살 홈스테이를 구해서 살았고, 그 때 함께 살았던 발리인 부부가 우리의 평생 친구가 되어 주었다. 아이를 기다렸지만 얻지 못했던 나는 발리 부인이 부러웠고, 이제 세 살 된 큰 딸과 젖먹이인 둘째 딸을 키우느라 진이 빠진 그녀는 자유롭게 일하는 내가 부러웠다. 삼십 대의 우리는 둘 다 결혼한 여자들의 세계란 어쨌든 헬이란 걸 몰랐다. 뭘로 힘드냐 이 정도만 다른 것이었는데. 우리가 헤어진 후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서, 나는 드디어 기다리던 아들을 얻었고 그녀도 셋째로 아들을 낳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지난 주에 드디어 만났고 사귀어가기 시작했다. 학교는 다르나 한 학년인 둘은 금세 친해져서 함께 그네도 타고 게임도 하고 강아지도 산책시키며 어울려 놀았다. 서울은 큰 도시라 친구들이 다 멀리 살고 가까이에 없었다. 우리는 내 회사와 가까운 학교를 고르고 그 근처에 집을 구했다. 그렇다보니 연고가 없는 동네에서 살게 됐고 친구들은 다 다른 곳에 있었다. 정작 발리에 오니 친구가 바로 곁에 있었고, 아들도 바로 제 친구를 만났다. 세계 방랑 유목민이 살면서 찾는 즐거움이랄까. 


나는 아들을 맡겨 놓고 생필품을 사러 친구 부부와 함께 다닐 수 있었다. 아들들은 다 성장한 누나들이 맡아 주었다. 나는 태어난 지 두 주 밖에 안 됐던 둘째와 헤어질 때 다가와서 나를 껴안아주며 뜻 모를 발리 말을 했던 세 살 박이 첫째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둘 다 멋지게 성장한 어린 숙녀가 됐다. 안티(Auntie)하고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는 딸들을 보며 15년 동안 나는 얼마나 나이들어 왔을까 생각하게도 됐다.


아 그러나 발리 생활에는 예전에도, 지금도 항상 복병이 있다. 15년 전에 가장 괴로웠던 것은 동네를 무리 지어 떠돌던 미친 개들(정말 광견병에 걸린 게 분명해 보였던)과 길마다 넘쳐 났던 개똥 애똥 들이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발리도 발전하게 되면서 확실히 거리고 깨끗해진 것을 느낀다. 이제 문제는 발전에 수반된 고통 - 공기 오염이다. 차들이 엄청나게 많아졌고, 모또르(motor)라 불리는 오토바이들도 많아서 주도로들의 공기가 정말 탁하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1층에 꽉 차 있는 목탄 냄새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다. 아니 발리에서 공기청정기를 구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보다 딸랑 공기청정기로 이 엄청난 공기들을 정화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가. 발리의 기본 생활은 모든 창문을 다 열고 지내는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워서 난리가 나는데 말이다. 문 다 열고 모기, 개미, 바퀴벌레들과 그냥 동거하면서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데, 문 닫고 공기청정기 + 에어컨을 틀고 한국식 생활방식을 고수해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무척 복잡해졌다. 우리의 폐는 과연 1년 동안 잘 적응하면서 버텨줄까.



그런데 하늘을 바라보면 또 깜짝 놀라게 파랗다. 이 나쁜 공기들은 저 높이까지는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저 하늘 높이 검은 공기를 밀어올릴 만큼 이 곳 세상이 나쁜 공기로 꽉 차 있지 않다. 아니면 섬 가장자리를 살랑이는 바닷바람들이 최선을 다해 섬 공기를 씻어내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늘 끝까지 꺼멓게 차 있던 서울의 공기를 생각하면, 가끔은 멀쩡히 서 있는 북한산을 지우개로 지워내듯 검은 공기로 덮어버렸던 서울의 하늘을 생각하면, 발리의 공기는 여전히 깨끗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아, 그러나 아침 저녁 동네를 채우는 요리용 목탄 냄새는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여보, 아무래도 우리 옆집에 가스 렌지 하나 놔 드려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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