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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Dec 01. 2023

발리에 두 번 살다 (8)

거꾸로 가는 계절

더운 입동을 적도 아래에서 맞다. 15년 전에 그러했듯. 단지 그 시절과 비교해서 기후가 크게 변화했다. 지구촌 다른 곳이 그러하듯.


매일 새벽 6시 20분에 기상해서 7시 10분이면 아들을 학교에 보낸다. 부지런한 아침을 보내고 책상에 앉는다. 가끔 8시에 필라테스 클래스가 있는 날은 거기에 다녀온다. 클래스가 없는 날은 점심때 운동을 가는데, 아직 요일이 루틴으로 정착되진 않았다. 내게 알맞은 루틴을 여전히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아침을 보내며 벌써 석 달이 이곳에서 지나갔다. 석 달의 절반은 삶의 터전을 잡느라 모든 힘을 다 쏟았고, 다른 절반은 시름시름 아팠다. 이 모든 과정이 '정착'에 필요한 노력들이었다. 설렁설렁하면 아프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는 걸 싫어하다 보니 결국 한 번은 크게 아프고 말았다. 기침과 가래가 심해서 항생제를 먹었고, 막판에 급성 방광염을 앓아서 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진통제와 함께 먹어야 했다. 호되게 물갈이를 했다.


나는 겨우 정착했고, 생애 두 번째로 발리 생활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는 15년 전과 같은 동네에 산다. 그때 함께 살던 발리 친구가 동네에 집을 잡아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젊고 용감했던 시절, 뜨겁게 달궈진 푸푸탄 광장 가장자리를 걸어 출근했던 내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의 나는 좀 더 원숙해졌거나 덜 생기롭다.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믿기에.


이제 곧 뜨거운 소설小雪, 염서炎暑의 대설大雪을 맞을 것이다.


반팔 입은 산타가 맞아주는 성탄절을 지나고 나면 작렬하는 겨울 태양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는 오늘, 창문 너머로 발리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우리들 중 나만 다른 기후에 대해 절로 생각하게 된다. (나와 아들은 독감 예방주사가 필요 없는데, 한국에서 자꾸 문자가 온다. 아들 주사 맞히라고.)


내년 입춘이 지나면 내 인생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을까? 앞으로 15년이 흐르고 나면 내가 살았던 오늘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게 될까?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우리 모두의 일을 위해 어떤 의미일까? 나는 과연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입춘이 지나고 오늘을 돌아보았을 때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하고 평안하게 인도양을 헤치며 의미를 찾아가는 인생 항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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