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버티는 힘, 숨은 그림 찾기 16
월요일 점심에 날이 하도 좋아서, 햇살을 놓치는 게 너무 아까워서,
서둘러 밥을 먹고 경희대 골목길을 산책했다.
자전거를 타면 속도가 나서 속이 시원해지는 반면, 예쁜 풍경을 담지 못하고 지나치는 때가 종종 있는데,
걸어서 골목을 구경하면 마음에 들 땐 언제고 멈춰 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생길이 이거나저거나 다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좋기만 한 여행이 없고, 나쁘기만 한 길이 없다.
여행도 길도 굴곡이 있게 마련이고, 시련이 있으면 그 뒤에 평지가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경희대 곳곳을 걷노라니 중국어 간판이 엄청나게 많았다.
여기가 중국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게다가 중국어 간판 앞을 지나는 학생들의 상당수가 중국어로 말하고 있기까지 했다.
상하이의 한국인 거리에 온 것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이제 우리나라 사립대의 재정을 떠받치는 것은 아시아 유학생들의 학비라더니 바뀐 세상이 실감났다.
호운래 반점이 눈에 띄었다. 하오윈라이라고 발음되는데, "행운이 찾아온다"란 뜻이다.
거기 들어가서 꼭 밥 먹지 않아도, 나처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도 행운을 나눠주는, 착한 상호명이다.
한국식 상호명은 반점이지만 중국어로 적었다. 반면, 한국어로 적어 놓은 '카오'는 중국어로 굽다란 뜻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경 오리가 카오야(烤鸭)로 구운 오리란 뜻이다. 표기에 반전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언젠가 한 번 찾아가서 먹어볼 지도 모르겠다. 맛까지 있다면 단골이 되고야 말 것이다.
소미는 샤오미라고 읽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샤오미와는 한자가 다르다.
간판의 샤오미小咪는 귀여운 고양이 소리를 흉내내서 부르는 애칭 같은 것이다. 우리 말로 냥냥이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가전업계의 샤오미小米는 좁쌀 혹은 작고 단단한 혁신, 생활 밀착형 기술을 뜻하는데, 창업자 레이쥔(雷军)은 샤오미의 브랜드를 가리켜 "작은 쌀이지만 세상을 바꾼다"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샹사오미는 뭔가?
저 서로상 좌로 물수 변이 붙은 상은 후난성을 뜻한다.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둥의 고향이기도 하다.
후난성은 중국 중앙에서 살짝 아래쪽, 장강과 동정호 근처에 있다. 내륙에 위치해서 습하고 더운 기후, 그리고 매운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우리가 한때 누구나 몰입했던 삼국지에는 후난성 북부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이 "형주(荆州)"로 불렸다. 형주는 유비가 차지하려 애썼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제갈량이 은거했던 와룡강이 후난과 인접한 지역에 있기도 하다. 유비는 형주를 거점으로 세력을 키웠고, 관우를 그 곳에 두어 지키게 했다. 장사(长沙, Changsha)가 오늘날 후난성의 성도(수도)이며, 삼국지 당시에도 장사군(长沙郡)으로 존재했다. 후한 말기와 삼국 시대에는 오나라의 손권 세력이 장사지역을 통치하게 된다. (삼국지빠인지라...)
다시 말하자면, 여기는 후난식 귀여운 음식을 파는 식당 되겠다.
내가 알아볼 수 없는 폰트로 만들어진 맨 윗글자의 상형을 보면 국수류를 잘 할 것 같고
간판 아래 설명을 보면 채소 요리를 제대로 한다고 적어 놓았다.
유비도 관우도 제갈량도 손권도 모두 이 매운 후난 국수와 야채를 먹었을 생각하니 좀 웃기다. ㅎㅎㅎ
이 가게 안에 들어가면 귀여운 냥냥이가 중국말로 먀오 하고 손님을 반겨주는 걸까?
원래 한우 요리하던 초우가 있던 곳에 극락돈이 들어섰다.
초우 고기가 좋아서 몇 번 왔었는데 살짝 아쉽다.
극락돈은 뜻이 명쾌해서 좋다만, 먹는 사람과 잡힌 돼지 중 어느 쪽이 극락에 속하는 것인가?
맛있는 돼지고기 먹고 손님이 극락으로 간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극락에 있던 해피 피그를 데려와서 요리했단 뜻인가? 대충 우리집 돼지가 천상의 맛이다 이런 뜻이려니 퉁쳐서 생각해 본다.
짧은 점심 여행의 끝은 회기동 파전 골목에서.
아직은 중국말이 들어오지 않은 작은 우리의 문화 장소이다.
한결 같이 이 골목을 지켜온 벚나무를 황홀하게 바라보다 회기동을 떠났다.
다시 오후 근무를 하러 직장으로.
괜찮다, 일도 산책도 이 모든 게 인생의 여정이므로.
* 어제 출장이 있었는데 글 올릴 시간이 없더군요. 오늘 두 개 서둘러 올려야 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