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주재원 생활, 이스탄불 엄마 학교의 시작

by 미네

내가 사는 시떼(이스탄불의 아파트 단지)는 수영장이 있다. 요즘 튀르키예의 물가가 치솟는 바람에, 관리비도 당연히 올랐고 수영장에서 1일 1 수영을 해야 계산이 맞을 만큼 많은 돈을 관리비로 내고 있다.


이 수영장을 보고 남편은 현재의 집을 선택했는데, 솔직히 수영장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면 너무 좋다. 그러다가 관리비를 생각하면 저기 매일 들어가서 때라도 밀어야 하나 고민을 한다. 아하하


시떼에 같이 사는 한국인, 일본인 주재원 엄마의 추천으로 시작한 아들의 수영 수업은 현재 내가 아들에게 시키는 유일한 사교육이다.

기관지가 유전적으로 안 좋을 것을 생각해서 시작했지만, 한편으론 수영을 하고 나면 아들이 피부를 긁어대고 밤에 힘들어해서 그만 두려다가 지훈이에게 알레르기 약을 적절히 먹이고, 또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여전히 아들을 보면서 나는 번민을 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또 걱정이다.


지훈이가 수영 수업을 받을 때, 선생님이 계시니까 그가 수영장을 도는 것을 보면서 나도 비슷한 속도로 옆에서 수영을 한다. 이렇게 수영을 하고 있으면 시떼의 일본인 엄마들이 내게 '최고!'를 날리시는데(너무 고마운 그녀들), 사실 나의 현재 수영 실력은 나의 무수한 실패의 흔적이다.




입시에 실패했고, 원하지 않은 대학에 들어갔다. 결국 재수를 하려다가 대학 성적이 너무 잘 나왔다. 결국 안온한 삶을 살고 싶어 그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장학금을 받으며 성실히 살았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임용시험에 자신이 없었다. 임용을 준비하는 학원에 가보니 왠지 다들 나보다 더 똑똑한 것 같고, 스무 살의 나는 지금보다 걱정이 만 배는 많았고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를 고민할 때, 승무원 준비를 하는 같은 학과 선배가 있었다.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대뜸 한 마디를 하는 것이다.


"키 크고 영어도 되고, 그런데 승무원 시험 준비는 왜 안 해?"

나의 얇은 귀는 그 시절, 그렇게 펄렁거렸다. 그렇게 무언가 밀릴까 싶어서 스펙 쌓기의 문어발을 펼치며 2달 속성으로 끝내자며 수영을 시작했다.(승무원의 체력 검정에 수영은 필수다.)그리고 승무원 시험을 보러 갔고, 서류 통과 후, 그룹 면접장에서 똑 떨어졌다. 면접장에 들어가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키도 크고 너무 예쁘고 화장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또 나보다 잘난 사람을 만났다.

아무리 봐도 나는 저 사람처럼 화장을 못할 것 같았다. 자세도 바르고, 너무 예뻤다. 그리곤 역시 실패 인증을 하고, 내 분수를 자각하고 도서관에 다시 갔다. 아하하하.

그렇게 무수한 실패의 기록 중 하나인 수영 실력, 나의 실패의 소산이다.




'브런치'에 가입해서 작가로서 글을 쓰면, 내 글에 대한 '통계'를 볼 수 있다. 통계라는 항목은 다음과 같다. '조회수', '인기글', '유입경로', '유입키워드'까지 볼 수 있다.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무엇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는 지를 대충 알 수 있다.

가끔 '유입키워드'를 보면서 나는 가끔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직접적으로 나의 예전 필명인 '지훈이엄마'로 검색하는 경우도 있고(구독은 안 하고 지속적으로 내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하하하), '이스탄불 장기 주차장', '주재원 갈 때 보험' , '튀르키예, 불가리아 여행' 등 다양한 검색어로 내 브런치로 오신다.


때론 다소 자극적인 '주재원 왕따' 이런 식의 검색어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궁금함에 그 검색어를 나도 검색 사이트에 눌러보고, 내 글이 어떤 순서에 나타나나 눌러보기도 한다. 무슨 마음으로 읽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을 읽어보면,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걱정과 고민을 안고 이곳에 오는지를 알게 된다. 나의 걱정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하하하


솔직히 좁은 주재원 사회에서 이곳에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든 일이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는데 그 사람은 나를 아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꼭 학교에 근무할 때, 동네 목욕탕에서 홀딱 벗고 때를 밀고 있는데 학부모가 너무 반갑다며 노란색 뚱땡이 바나나 우유를 건넬 때의 기분이다. 아하하하.(솔직히 스트레스가 있다. 아하하하)


그러나 나로 인한 삶이 아니라 아들을 낳고, 아들에 의해 남편에 의해 모든 삶의 방향성이 정해지고 난 후, 노력으로는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글에는 다 적지도 못할 무수한 실패를 겪고 나란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 후, 어떤 면에선 인생은 보다 명확해졌다.




예전엔 교사로서 삶을 살 때, 흔히 말하는 문제아가 교실에 있었다. 솔직히 교사로서 성적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 성적이 높다고 나한테 성과금이 오나?(학부모님 죄송합니다.) 교실에서 바른 자세로 나를 바라봐주는 학생이 좋고, 그 학생이 나를 매번 즐겁게 만나길 바라면서 나 또한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다.

이렇게 열심히 듣는 학생은 반에서 일등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서 만나보면 다들 제 나름의 삶에서 행복하고 멋지게 살고 있다.


이렇듯 교사와 학생 관계에서 성적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아이의 성적에 따라 학부모들이 학교에 오는 자세가 다른데, 솔직히 학교를 떠난 교사로서 성적이 좋은데, 청소는 안 하고 약한 애들 괴롭히면 더 재수가 없다. 아하하하.(또 너무 솔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학부모님)

그런데 가끔 돈도 훔치고 학교도 늘 늦게 오고 당연히 수업 시간을 방해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들 그럴 수밖에 없는 아픈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나타난다.


한 친구는 가장 기본적인 등교도 어려웠는데, 그 친구를 등교시키기 위해 나는 학교에 가기 전, 그 아이의 집에 가기도 했다. 어머니는 홀로 아이들을 챙기느라 늘 바쁘셨고, 아들을 사랑했지만 경제적인 사정으로 아들을 오랜 시간 다른 사람 손에 맡겼다. 그리곤 사춘기가 되어서야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오셨는데 그 녀석은 이미 많이 커져있었다. 그런데 몸만 커진 채, 마음은 여전히 아파서 그걸 계속 다른 식으로 표현했다.


어머니는 내게 그가 학교만 매일 가게 도와달라고 해서, 나는 그 엄마의 전화가 나의 모닝콜일 때도 있었다. 그 시절, 아이만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어머님의 하소연, 우리 반에 들어오는 다른 교과 선생님의 불평, 반 아이들의 고통, 학부모의 민원 등 그 아이 때문에 나는 그 해, 학교를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임용시험에 목전에 둔 기간제 교사였고 명목은 시험공부였지만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학교의 소문을 들으신 내 자리의 선생님은 육아휴직을 연장하셨고, 나는 자리가 있음에도 기간제 교사로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나의 마지막 탈출구였다. 교감 선생님은 가지 마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1학기를 끝내고 학교를 떠났다.

솔직히 그 순간, 내가 기간제 교사라서 다행이라는 마음도 가졌다. 도망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 교실에서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그 아이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그 교실이 싫었다. 나는 무기력해졌고 그렇게 변하는 내가 싫어서 도망쳤다.


나는 그 학교를 떠났고 도서관에 들어갔고 시험을 쳤고, 나는 시간이 흐르고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 사이, 내가 없던 그 교실에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건만 아이는 교실에서 진정하지 못하고 사고를 만들었고, 그 일로 아이는 결국, 학교를 떠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아이의 엄마가 들고 온 커다란 꽃바구니가 생각난다. 1학기 말, 학교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겠다는 내 말에 우리 아들 때문에 학교를 쉬시는 거냐고 물으셨다. 어머니는 그때의 내 마음을 아셨다. 도저히 못하겠다는, 그 도망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아셨다. 그때 내게 힘들어도 우리 아이를 위해 학교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의 엄마의 말이 아직, 생각난다.

나는 그렇게 비겁하게, 도망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그 아이와 있던 학교로 돌아왔지만 아이는 학교에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실패의 기록을 하나 더 썼고, 나는 한동안 힘들었다. 그리고 아이는 학교 밖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학교 밖에 있고, 그 아이는 20대 후반의 청년이 되었다.


그도 나도,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가끔 싸운다. 우리는 서로 다툼이 있다. 살이 맞대고 사는 가족끼리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준다. 가깝고 자주 만나니 싸우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여기서 제일 편한 사람은 일본인 주재원 어머니들이다. 나와 전혀 싸울 일이 없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지난 학교의 일을 적을 수 있는 것도 내가 학교 밖에 있는 외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출발도 전에 주재원 생활에서의 관계를 걱정하는 무수한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너무 의식해서이다.

내가 그 세계에서 도태되거나 실패하면 어쩌지? 우리 아이가 국제 학교에 가서 다른 아이보다 못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가 그 학교에서 다른 아이와 못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 걸까? 주재원 부인들 사이에서 내가 함께하지 못하고 무시받는 것은 아닐까? 왜 우리 아이만 이런 걸까? 왜 나만 여기 혼자 있는 거지? 나는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닐까?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이러면 안 되는 건 아닌가?


그렇다. 우린 너무 다른 사람을 신경 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노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솔직히 이렇게 글을 적고 있는 나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 이 모든 글은 어쩌면 나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주재원 생활을 시작하며 내 글을 보는 그 누군가가 저런 검색어로 나의 이야기까지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좁은 주재원 사회에서 누군가는 나를 알아본다. 그리고 나의 글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 나를 생각하는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같은 주재원 가족이며 친한 언니는 내게 더 이상 글을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누가 너를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 그 말을 전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말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얼굴도 모르는 그녀가 그녀의 소중한 인생에서 이렇게 나를 한 번이라도 생각한 것이니, 바쁜 이 인생에서 나의 글도 읽어주고 그리고 그 글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까지 해준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가. 혀 한 번 차고 씁쓸하지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나의 길을 가면 된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 참으로 많지 않은가. 그 사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은 분명해진다.

지금의 나의 글이 내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나의 이름으로 살기 위한 또 다른 실패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도 무심히 글을 쓴다.


그 어느 누구도,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덧붙임)

아들의 참깨 알레르기로 인해 저는 한글학교에 아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냈다가 아들의 말을 들어보니 수업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고, 수업을 마친 후 두드러기가 온몸에 퍼져서 집에 온 후, 그의 얼굴이 부었습니다. 저는 한글학교 담임선생님께 이 소식을 전했고,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시며 아이의 건강을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업료 또한 전액을 환불받았습니다. 늦었지만 다시 한번 더, 진심으로 이스탄불 아시아 한글학교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즐거운 토요일마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써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며, 이스탄불에서 한글학교를 운영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 보니 '공부방을 열어달라.', '왜 너는 한글학교를 안 보내냐?', '혼자만 간직하는 아들을 가르치는 비법이 있는 거 아니냐?' 묻는 사람이 엄청 많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만 쓰지 사실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데, 조금 친해지면 모두 이 말을 제게 다 하십니다. 그래서 어쩌면 검색 사이트에서 조금만 검색하면 다 나올, 아무 특징이 없을 수도 있는 '이스탄불 엄마 학교'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그 어떤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 나눔 카페 등에 정말 하나도 가입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학교를 교사로서 다니면서 느꼈던, 중등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리터너들이 겪는 문제점을 봤고, 그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도록,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를 엄마 또는 아빠가 지도할 때 중요한 점, 찾아보면 좋은 사이트 등을 연재하겠습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연재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건강하길 다시 한번 바라봅니다. 그리고 읽고 계신 여러분의 가족의 건강도 응원합니다. 참고로 저는 연재될 모든 자료를 아들에게 모두, 매주, 매일 실천하지 않습니다. 아하하하.

왜냐면 실제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아들이니까요.

아휴, 자식은 마음대로 안됩니다. 아하하하.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저도 힘들어요. 아하하하. 오늘도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해 봅니다. 모두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