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위해

아름답게 녹슬어가는 오스만 제국의 발전소에서(이스탄불 빌기 대학교)

by 미네


'기상청에 따르면 내일 이스탄불에는 폭우와 폭풍우가 예상됩니다. 홍수, 번개, 홍수, 지붕이 무너지고 교통 방해에 주의하세요. B002'


11월의 우기가 시작된 이스탄불, 이젠 단골이라 그런지 거의 매주 주말이면 만나는 병원의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내게 손을 저으며 진료비를 내지 않고 처방전을 써줬다. 약국에서 나의 약까지 받아 들곤 쏟아지는 비를 보며 아들의 손을 다잡아 본다. 남편은 내가 아들과 약국에 들어가 있던 동안, 멀리 주차한 자동차를 찾으러 갔다. 아들과 나는 봉지에 담긴 약을 들고 약국 앞 처마 아래에서 우산을 펼쳐 쏟아지는 비를 뿌려 본다.

올해는 비가 너무나 세차다.


우두두, 쏟아지는 빗소리가 매섭다. 지금의 이 비의 소리는 내 슬픔인가 아니면 내 분노인가. 아들에게 우울한 감정을 숨기고 비가 와도 나가야 하는 것 같다며 평소의 나와는 다르게, 이 날씨에도 생일을 핑계 삼아 도로를 나섰다. 비의 속도에 따라 손을 휘젓는 자동차의 팔은 너무나 어지럽다.


하늘에서 억수가 퍼붓는다.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자꾸만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의 이스탄불의 하늘은 억수로* 검다.




미술시간, 선생님은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에게 전시회를 다녀와서 그 감상문을 쓰라고 하셨다. 그 시절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미술전시회. 나는 그렇게 학교 숙제라는 이름으로 친구와 손을 꼭 잡고 백화점 꼭대기층으로 한 번에 데려가는 백화점 셔틀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일요일 아침 10시, 토요일도 학교를 가던 그 시절, 나는 친구와 백화점 셔틀버스 제일 끝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어린 나는 그저 숙제를 한다며 이중섭의 전시를 보러 길을 나섰다.


지금, 집에는 이중섭의 편지가 담긴 책이 있다. 나는 가끔 그의 편지를 읽어본다. 그가 그의 아내 남덕에게 보낸 글과 그림이다. 편지의 내용은 솔직히 특별하지 않다. 세상의 변혁을 기대하거나 자연을 갈망하거나 그 어떤 장대한 의미도 두지 않는다. 비장한 인생 계획도 없다. 그의 마음은 겨우 한 문장이면 온전히 표현된다.

'네가 너무 보고 싶다.'


사실, 우리가 사는 삶은 무수한 표현과 장식으로 꾸미고 아름답게 색칠하여도, 결국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이 마음 한 가지로 그 사람에게 달려갈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남덕'을 향한 사랑처럼, 그 시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들을 위해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면서, 자연히 내가 좋아하는 책들 중 대부분은 커다란 종이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알레르기로 인해 교육기관 이용이 어렵다고 생각한 후, 아이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나의 대부분의 책들은 두 번의 이사로 제법 탄탄한 굵은 종이 상자에 넣어져 테이프로 봉해졌다.


내가 살던 지역 구청에서 운영하는 육아지원센터는 신도시에 새로 지어져 건물이 깨끗하고 참으로 편리했고 나는 아들의 또래가 없는 오전 시간, 그곳에 가서 아이와 책을 읽었다. 거의 매주 그곳에 가서 아이의 책 10권과 나의 책을 한 두 권을 빌렸다. 아마 나의 아들은 그 책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해당 육아지원센터의 유아 전집은 거의 모두 빌려본 것 같다. 흔히 엄마들 카페에서 괜찮다고 말하는 유아, 아동 전집이 모두 도서관에 있었으니 그 시절, 나는 아들을 위해 그 책을 모두 소리 내어 읽어냈던 것 같다. 그저 반짝이는 아이의 눈을 보며 내가 매일 아침에 켜두던 라디오처럼, 나는 끊임없이 책을 읽어냈다.

남덕을 향한 이중섭의 끝없는 사랑처럼, 나는 그가 내게 눈만 깜박이던 시절부터 끊임없이 책을 읽어주었다.



나는 친구의 손을 잡고 이중섭의 작품을 보았다. 은빛 담배값에 그려놓은 그림들의 아이들은 몸을 온전히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은 종이 속에서 얽히고설켜서 몸을 비비고 있다. 그 공간이 은색 담뱃갑보다 작은 것인가.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워져 맞닿고 싶은 것인가.

이 그림에 대해 어른들이 매겨놓은 숫자를 모른 채, 그 시절의 어린 나는 그의 그림들을 바라봤다. 에스컬레이터를 연달아 오르내려 백화점 꼭대기 층에 올라 숙제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제 돈을 내고 보는 그림 전시회, 그때의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 시절 모든 것이 처음인 내게, 벌거벗은 어린아이들은 서로의 몸을 엉켜 부둥켜 안아 꽉 찬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담뱃갑 안쪽 은박지에 곱게 펼쳐 그려진 그림 속 아이들은 그 좁은 공간 속에서도 참으로 행복하다.

백화점 꼭대기 층, 그 그림 속의 아이와 같던 나는 그림 속 아이들을 보며 빙그레 웃는다. 어른들이 말하는 담뱃갑 안쪽 종이까지 써야 했던 이중섭, 그의 가난과 슬픔은 어린 내가 모르던 시절이었다.




스물아홉, 지금 생각해 보면 여전히 청춘이었던 시절, 나는 학교에 있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단계를 건너면 모든 게 완벽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하나 온전한 건 없다고 느끼던,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던 서른 살 즈음의 나는 런던에 이르렀다.

한 때 가장 강력하던 영국이 그저 산업혁명, 성장, 발전소의 이미지만 남겨진 그 시절, 새로운 시작을 알리던 밀레니엄, 테이트 모던*. 나는 테이크 모던 앞의 템즈 강 앞의 런던올림픽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혼자 서 있었다.

이중섭처럼 그 누군가를 때론 그 무언가를 온전히 사랑하지도 못했고, 지금의 나처럼 모난 나를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고 솔직히 말하지도 못한 채, 시간에 흐름에 따라 낡아 버려진 예전의 화력 발전소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마구 새로운 물건을 찍어낼 때는 무한히 사랑했던 그 발전소를 1981년 버렸고, 영국은 다시 2000년에 그것을 미술관으로 바꾼다. 나는 그 속에 새로 찍어낸 남들 보기에는 꽤 값이 있어 보이는 공산품으로 그렇게 혼자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나이를 먹고 사람을 알고 이별을 하고,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마흔의 나는 아들과 남편과 함께 지난 이스탄불 출발 때, 우기에 용이하다며 한 번 입어보곤 가격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급하게 샀던 그 재킷을 교복처럼 입고, 예전 오스만제국 전기 발전소가 대학교로 바꾼 '빌기대학교*'로 향한다.

날씨 탓인가. 나의 마음이 탁한 탓인가. 모든 것이 스산하고 울적하다. 1층의 전기 박물관, 아들이 신기한 듯 만지는 전기 관련 전시물에 지금의 내 감정과 상관없이, 괜히 더 밝고 신나게 반응한다.

대학교로 바뀌어진 오스만 제국의 전기 발전소를 바라본다. 한 때 굉음을 내고 달렸을 법한 거대한 모터는 먼지에 싸여 그 자리에 굳어져 멈춰있다.

토요일임에도 그 시절의 나처럼, 학생들은 대학교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쓸데없는 감정의 잡념에 사로 잡힌 내 옆에서 아들은 토요일임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형과 누나를 바라본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발전소 철제 기둥만 남겨진 그곳은 독서실로 바뀌었고 유리로 벽을 삼아 답답할 공간은 넓게 열어졌다.


젊은 그들의 움직임이 분주한 건, 모든 것이 유리로 연결된 이 발전소의 공간 변화 탓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설사 그런 것이더라도 괜찮다. 젊은 그 시절의 그때의 나처럼, 다른 이의 눈에 의한 남을 의식한 분주함일지라도, 그런 몸짓이더라도, 아니 그 어떤 의도였건 괜찮다. 어차피 어떤 의도이건 우리의 몸짓과 그 생각은 결국 영원할 수 없다. 그저 그 순간의 감정에 따른 행동일 뿐, 나는 너 또한 그리고 나 또한 변할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나는 지금의 나의 최선을 그저 다할 뿐이다.


이스탄불, 비바람에 휘어지는 우산을 빗겨들어 내 나름의 최선으로, 너에게 걸어가고 있다.



*억수로, 매우, 아주 많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 억(億) 수(數)라는 한자의 복합어가 사투리로 굳어진 형태


*테이트 모던, 2000년 5월 12일 개관했으며 영국 정부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템즈강변의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새롭게 리모델링한 곳에 들어섰다. (위키백과 참조)


*Istanbul bilgi universitesi(이스탄불 빌기 대학교), 오스만 제국 시대의 전기 발전소를 1층은 전기 박물관으로 그리고 나머지 공간은 대학동으로 바꾸었습니다. 근대 시기의 전기발전소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현대 세계사를 설명해 주고 간다면, 좋은 체험이 될 것입니다. 입장료가 무료이나 주차료는 지불해야 하고, 대학 내 외부인 출입도 가능합니다. 전기 관련한 설명이 영어, 튀르키예로만 되어있으나 전시물이 어린이가 접근하기 좋도록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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