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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가 어디예요?

'가나다라'처럼, '아베제데'로 소리내어 읽어보자

by 미네

Giriş nerede?

입구가 어디예요? (기리쉬 네레데?)


작년 9월, 이스탄불 살이가 시작되고 지방에서 살던 촌사람으로선 이스탄불은 크고 붐비는 도시였다. 한쪽에선 아주 오래된 모스크(cami; 자미)가 있으면서도 다른 쪽은 거대한 쇼핑몰이 넘치는 곳, 이스탄불은 여행이 아니라 삶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1990년대 초반과 지금 2020년대가 공존하는 신기한 도시다. 엄청난 쇼핑몰과 그 옆 골목을 돌아서면 나무로 집을 데우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쏟아오르는 가정집들. 전혀 어울리지 않는 40년의 시간들이 도시 안에 함께있다.


이런 큰 도시에서 살게 된 나로선, 처음 적응부터가 힘들었는데 특히 음식에 있어선 자유롭지 못했다. 뭐 물론 아들이 여러가지 알레르기가 있고, 그것도 참깨 알레르기가 아주 심한 이유로 외식을 하면 거 참, 집밥 안 먹인 어미의 죄로 죄책감이 몰려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엄마의 숙명으로 어쩔 수 없이 밥솥을 신나게 돌릴 수 밖에 없었으니,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이스탄불 살이에서 장을 보거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쇼핑몰에 가게 된다.

한국에선 '쿠#'도 있고 '11#가'도 있으니 가격비교도 하고,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하고 따지지만, 뭐 터키어 까막눈인 외국인(yabancı;야반즈)의 삶에서 이것저것 따질 여유는 없다. 솔직히 뭐 눈에 보이면 그걸 그 자리에서 사야지, 뭘 고르고 나중에 이러면, 이 번역의 탓인 건가 후에 인터넷에서 제대로 못 찾기도 하고 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게 오기도 한다. 200일이 넘은 지금에야 물론 가격 비교도 가끔 하고 사지만 그 때는 뭘 보면 급하게 집어온 것 같다. 그러다 이스탄불 살이 초기, 아이를 데리고 대형 쇼핑몰에 갔다. 눈치껏 입구를 잘 찾고, 쇼핑을 잘했다. 그러나 나오는 길에 머뭇거린다. 그렇다. 어디로 나가야 하나? 이럴 때도 눈치껏 나간다. 나이는 헛먹은 게 아니다. 촌사람이지만 씩씩하게 출구를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것이었다. 매일 미그로#에서 소고기에 야채, 과일만 먹다가 이제 고향의 맛이 그립다. 그런데 여긴 없다. 그 흔한 어묵, 마트에 잘 진열된 두부, 유럽에서도 흔한 한국산 라면, 만두, 돼지고기 여긴 정말 없다. 가격은 비싸도 대다수의 유럽권의 국가는 대형 마트에서 한국음식을 취급한다. 그런데 여기는 정말 없다. 게다가 돼지고기도 없다. 여기서 웬, 여기는 에잔이 울리는 이슬람국가다.

두부? 대형 마트에 절대 없다. 웃기게도 대형마트에 잡지 코너에 'KORE POP'이라는 잡지책은 늘 있지만, 한국 식재료는 없다.


처음에 이렇게 한인 마트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로 국민 소득이 우리나라보다 낮아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니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른 개발도상국 또한 국민 소득이 낮은데 비해 한인 마트가 발달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종교 때문인가를 생각했지만, 다른 무슬림 국가도 한국 식품 수입이 튀르키예보다는 원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한국 식품의 수입이 이렇게 원활하지 않는 이유는 종교도 국민 소득도 아닌 튀르키예의 GMO(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대한 기준이 다른 유럽보다 철저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로 인해 수입되는 대부분의 식품이 정식 통관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럽권에서 흔히 보는 한국산 매운 라면도 여기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이다.




튀르키예에 도착하고 얼마 후, 한국 음식 재료를 파는 한인마트(스마#)에서 시떼까지 한국 음식 재료를 배달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물론, 같은 시떼에 사는 다른 주재원 아내 분이 주신 정보다. 알려준 정보대로 네이# 카페에 가입해 그 가게의 카페 주문글에 내가 주문할 음식 재료를 적고 주문을 했는데, 두둥 '기리쉬'로 나와서 받으라는 것이다.


'뭐, 기리쉬?'

'기리쉬가 뭐지?'

그렇다. 난 소심하다. 기리쉬가 뭔지 한참 생각했다. 기리쉬? 터키어 무식자가 '기리쉬'가 뭔지 알 턱이 없다.모르면 물어야지. 그게 세상살이 정답이다. 괜히 아는 척하다가 고생한다. 음식 재료을 주문한 가게 사장님께 메시지를 보낸다. 다행히 답장이 왔다. 기리쉬는 입구란다. 새로운 터키어를 하나 더 알게 되었다. 시떼 입구로 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한 날 약속된 시간에 서 있다. 두근두근, 행여나 오시지 않을까 바람 맞을까 두려운 소개팅녀처럼, 기리쉬 앞에 나는 서 있다. 다행히 두부와 콩나물, 떡국 거리를 받아왔다. 이걸 구할 수 있다니 오랫만에 아들은 잘 먹었다. 늘상 볶음밥만 하던 일상에서 처음으로 탈출하던 순간이다. 야호!




입구, 영어로는 'Entrance', 터키어로는 'Giriş '. '뭐야? 'S'에 꼬리가 있네. '쉬' 소리가 나네.'

그때가 내가 처음 터키어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입구는 '기리쉬', 출구(çıkış; Exit)는 '츠크쉬, 쯔끄쉬'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대형 쇼핑몰인 '졸루센터' 등에 갔을 때, 자연스럽게 입장하는 방법 바로 눈치! 검색대가 어디있느냐를 보면 된다. 뭐, 실상 세상살이 눈치만 있으면 별일 없이 사는 것처럼, 대형 쇼핑몰 입장 시에는 테러를 대비해서 검색대가 필수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갈 때는 물론 검색대가 없다. 즉, 기리쉬에는 검색대가 있고, 츠크쉬에는 검색대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나가면 된다. 아마도 대다수 터키어를 몰라도 잘 통과할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눈치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꼭 있다. 그래 나다. 머뭇거리지 말고, 그 순간을 위해 '기리쉬' 외워두자. 입구만 알고 잘 들어가서 사고 싶은 것 사고 오면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나 또한 그러고 있으니 아하하하. 난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늘 생각한다. 아자!



덧붙임)

아래의 사진을 보고 관찰력이 대단한 분은 터키어가 i (이)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터키어는 i (이), ı(으) 소리가 있습니다. 아마 이것만 아셔도 대충 읽을 수 있습니다. 대충 읽어버려요. 아하하하.

'C'에 꼬리가 달린 것도 발견하셨나요? 오! 대단. 당신은 터키어 영재! 'ç'는 '츠' 또는 '쯔' 소리로 발음됩니다. 정확히 하자면, '체,쩨'로 읽어야 합니다. 원어민 발음을 들어보면 사실 둘 중에 어디에 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아하하하. 어떤 사람은 '쯔', 어떤 이는 '츠' 해서요.

우리나라가 '가, 나, 다, 라' 이렇게 읽는 것을 터키어는 'e'를 붙여서 '게, 네, 데, 레' 이런 식으로 읽는다고 아시면 됩니다.

그럼, 자 질문! 'A, B, C' 어떻게 읽을까요?


두구두구두구!

맞습니다.

'아, 베, 제'

에이, 비, 씨 아닙니다. 터키어 읽는 법은 달라요.

이것 맞추셨으면 그냥 이제 공부하지 마세요. 아하하하하! 너무 똑똑해!

그냥 이스탄불 오셔도 됩니다. 아하하하하.


내 생애 쇼핑몰은 터키서 다 가보네. 집곰 엄마의 말을 이제 아들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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