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속 이스탄불 고양이

글을 안 쓰는 이유와 새해 인사를 함께 드립니다.

by 미네

아침에 아들과 함께 등교를 시키곤 동네 산책을 하곤 집안일을 하고 반찬을 하고, 가끔은 동네 카페에 앉아 다른 엄마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귀가 열린 탓에 들린다. 사실 엿듣는다는 건 정확하지 않다. 일일연속극처럼, 꽤 재미가 있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계획한 영어공부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아들을 데리러 아들의 학교로 간다. 그리고 같이 문구사에 들러 한국산 아이스크림 물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과 함께 못 먹어본 한국 아이스크림이 아직 많다. 그동안 살얼음 가득한 '왜'랑 비슷한 '#'도 먹었고, 상어모양 '#스바', 요구르트 맛의 #맘때'까지. 맛있다고 계속 같은 맛만 먹은 탓에 아직 도전지가 많다. 찬바람이 막 부는데 아들 학교 앞을 돌아 있는 정자에 앉아 덜덜 떨며 그러고 있다. 4년 만의 한국의 겨울은 제법 춥다. 둘이서 낭만을 넘어 청승이다. 아하하.


이렇게 아들과 나는 친정집 근처에서 한창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 전학을 시켜도 되건만 아들의 지금의 평온한 일상이 조금 더 유지되길 바라며 이러고 있다.

요즘의 나는 참말로 게으르다.




헝그리 정신, 그런 거 없다. 글이 안 써진다. 남편까지 한국에 오곤 조금 더 마음이 편해졌다. 아하하. 그동안의 마음을 보상받듯, 한껏 여유롭다. 서럽던 감정이 내려갔다. 엄마 반찬은 매워서 아들밥을 따로 하지만, 뭔가 이스탄불에서의 식단 계획을 짜던 타이트함은 없어졌다. 긴장이 풀린 듯하다.


이건 일기장에 써야 하는 글인데 하며 글을 지운다. 매번 생각하지만 매일 매주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리시는 분들은 돈 받고 쓰는 글쓰기가 직업인인 작가나 기자 등도 아닌데 어떤 동기로 쓰시는 거지 하는, 그들의 엄청난 성실함에 놀라곤 한다.


그리곤 역시 나란 인간은 돈 받고 글 써야 하나 하곤, 이 자본주의적인 인간이라고 자신을 돌아본다. 쫓겨야 하구나. 막 땅이 뒤집히고 흔들려야 하나. 아하하. 큰 웃음을 짓는다.



요즘 아들과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징비록'을 함께 읽고 있다. 한국에 온 후, 아들은 그동안 못 본 학습만화에게 복수를 하듯 학습만화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사교육도 없고 학교를 다녀오면 노는 게 제일 좋은 아들과 할 일은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도서관에 가는 일이다. 집에 오면 할머니집 텔레비전의 끝번호까지 가서 온갖 채널을 섭념하는 탓에 동네 도서관에 데려간다. 그리곤 도서관 마칠 때까지 같이 앉아있다 온다. 밝을 때 가서 깜깜할 때 오거나,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동네커피집에서 아들과 군것질을 사 먹는다. 나도 아들이 책 읽는 동안 어린이실에 함께 앉는다. 매주 같은 날 가서 보니 도서관 수업도 많은지, 아들보다 어린아이들로 늘 도서관은 북적북적 거리는 모습이다. 어린이자료실이지만, 여러 책을 꺼내 내 기호대로 최대한 읽고 있다.


빌린 책을 아들과 자기 전에 읽는다. 이게 어린이 권장이 맞나 하지만, 별문제 없이 읽고 있다. 내가 어린이들을 무시하나. 아하하. 거의 모든 이야기가 우리나라가 왜와 명나라에 치이는 이야기건만 아들은 꽤나 흥미롭나 보다. 나도 아들 반응이 괜찮아서 같이 누워서 열심히 소리 내서 읽어주고 있다.


징비록을 읽으면서 계속 느끼는 건, 평화가 계속되었던 조선에 위기가 없었기에, 그들에게 임진년에 일어날 이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나를 떠올린다. 너무 평온하다. 이런.




한국에 오니 너무 평온하다. 별 일 없이 산다. 두부도 콩나물도 예전처럼, 계획적으로 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저벅저벅 걸으면 저기 마트에 있다. 카드를 긁는다.


"어, 너무 쉽네."


태생이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이라 그런가. 이 편안함을 즐기자고 결심했지만 '징비록'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런, 이럴 때가 아닌데."


성격이 팔자라 생각하는 마흔의 나는 거듭되는 생각에 이리저리 정리되지 않는 글을 바라보며 오늘은 말도 안 되는 이 글이라도 올려보자며 잡담을 적는다.


신년 이맘 때면, 나 같은 사람이 있겠지 하며 글을 적어본다. '뭐, 그렇게 세차게 살아.' 이러고 싶었지만 나도 같은 번민이라며 적어본다. 아하하.

위기가 없는 게 위기라더니 참 쓸데없이 잠념이 많구나. 아이의 성공을 위해 위기를 만들어 주라는 어떤 전문가의 글을 보며, 뭔 헛소리를 참으로 길게 적었구나 하고 웃던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아하하.


"고난을 견딘 사람이 지나고 나서 예쁘게 기억하려고 곱게 그렇게 접어보는 거지 뭘. 아하하."


위기가 없으면 우선 감사부터 하고 즐겁게 지내자. 정말로 위기가 오면 나처럼 엄청 짤 거면서, 뭔 헛소리를 길게 하는지. 아직 이스탄불에 있는 그대들에게 재밌게 웃고 살라고 말하곤, 떠날 때 필요한 준비를 정리해서 보내주었다.

나는 또다시 '징비록'을 들어 아들과 함께 우리나라가 한없이 깨지는 이야기를 읽는다. 간혹 나오는 우리나라의 승전에도 결국 그 누구도 승리자가 없다는 책 전반의 흐름을 다시 느낀다. 전쟁과 위기에 무슨 승리가 의미가 있는지, 안 싸우고 별일 없는 게 뭐라 해도 최고다라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생각한다.




한국에 이제 돌아온다며 이스탄불에서 맺은 인연들이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온다. 이스탄불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을 늘 하는데, 대답은 같다.


" 이스탄불 고양이가 보고 싶어. 아하하. "


오랜만에 모니터에 앉아, 이스탄불을 다시 글로 그리다 결국 '에잇 실패다.' 하며 글을 미루는 나는 내게 두려움 없이 다가오던 그 고양이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겁이 없이 사람에게 다가오는 녀석들, 일부러 실패와 고난을 주기 위해 무얼 한다는 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스탄불 고양이를 떠올린다.


어쩌면 이스탄불의 그 녀석들처럼, 그게 고난인지 도전인지도 모르는 정도가 되어야 우리가 아이에게 그 어떤 새로운 그것을 두려움 없이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한국 속세에 어느새 물든 나를 바라본다.


"아, 여기 너무 좋다. 근데 고양이, 너무 보고 싶다."


'징비록' 속에 살면서, 마음은 이스탄불 고양이가 되고픈 나는 나를 다시 살펴본다. 그리곤 '나는 그저 한국 고양이일세.'라며 말하곤, 사람 소리에 놀라 황급히 몸을 숨겨본다.



한국에서의 첫 여행,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에서

모두가 잘 지내시길, 늦은 새해 인사를 보내봅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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