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지나간다
안탈리아의 눈, 지나가는 시간의 이야기
안탈리아 여행 사진을 이제 꺼내서 정리해본다. 일 년 전, 1월이지만 가을 점퍼면 충분했던 따뜻한 안탈리아의 날씨, 참 따뜻했다. 비행기를 타고 렌터카를 빌려 저 멀리 보이는 하얀 눈 덥힌 산을 보며 도로를 달렸다. 제주를 사랑하는 나라서 그런 걸까. 튀르키예에 와서 '아, 아름답다.'는 말을 처음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제법 지쳐 있었다. 지금 느끼는 이스탄불의 아름다움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학교에서 일을 할 때 사실 학교 가기가 참 싫었다. 특히 집 근처의 학교에 다닐 때 이 마음은 더 컸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뒤늦게 사춘기 왔었던 것 같다. 학교를 퇴근하고, 학교가 집 근처에 있고 결혼도 안했으니 애도 없고 자연히 수업을 많이 배정받았다. 오래 서 있는 탓에 자연히 무릎이 자주 아팠고 그래서 대중 목욕탕에 빈번히 갔는데, 갑자기 옆에서 음료수를 건네신다.
지금의 나라면 홀딱 벗은 몸이더라도 능글거리며 음료수를 감사히 받을 나이지만, 20대 후반의 아가씨가 거 참! 고맙기보다 그 자리에서 목욕탕에 땅굴을 파고 싶었다. 아하하하. 생각해보면 수업 시수가 일주일에 22시수에 마치고 방과 후 수업까지 주중, 토요일 다했으니, 힘들어서 주말에 외출을 못했다. 한창 꾸미기 좋아할 시절인데 쇼핑하는 것도 힘들어서 옷을 홈쇼핑으로 사 입었으니 아하하하.
일요일 저녁이면 밤에 잠도 잘 못 잤다. 학교에서 일은 열심히 하는데 맨 땅에 헤딩하듯, 같은 일을 여러 번 해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했는데, 끊임없이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고 살았다. 그때의 나는 힘들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속은 불안했다.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분량 이상의 일을 하고 떠났고 자연히 그 탓에 연애도 잘 안되었다.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사랑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자존심에 청춘을 낭비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서른이 넘어 지금의 남의 편, 남편을 만난 덕도 있다. 아하하하.
내 20대는 그렇게 지나갔다.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나와 다른 이를 비교하고, 슬프게 지나갔다. 그러곤 한참이 지나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30대가 되었다. 우습게도 같은 학교였지만 그때까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다른 교과 선생님과 멀리 있는 학교에 같이 일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같이 시외 직행버스에 올라탔다. 연구학교인 탓에 매일 아침, 매일 저녁 늦게 그녀와 같이 퇴근했다. 그리고 제법 친해진 우리는 같이 저녁을 자주 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처음에 선생님은 좀 재수 없었어."
아하하하. 난 그녀에게 재수가 없었다. 남들 하기 싫다는 일을 다 맡아서 하는 나, 지금은 그게 내 성격인 것을 알지만 처음에 나 때문에 그녀 자신이 알게 모르게 다른 부장 선생님께 비교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난 그렇게 재수가 없었다. 바른 소리 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주신 일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재수 없는 동료였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보는 줄도 모르고 나는 학교 생활 속에서 한없이 괴로웠다. 나는 운이 왜 이렇게 없지 왜 이런 아이들이 우리 반이지 이렇게도 생각하고, 거절 못한 애매한 경계선의 일을 맡아서 다 하고 있었다. 우울증 약을 먹는 아이, 충동 조절이 안 되는 아이의 엄마의 하소연, 그리고 당연히 수업 시간에도 이어지는 이상 행동, 나는 솔직히 힘들었다. 다른 이의 눈엔 그저 착한 척하는 재수 없는 교사이지만, 나는 정말 그 몇 해 간 재수가 없었다. 내가 맡은 반 아이들은 다 이런 걸까. 솔직히 참 힘들었다. 일은 늘 쌓여있었고, 일요일 아침이면 학부모의 전화를 받아 그녀의 하소연을 또 듣고 지쳐갔다. 경계선이 없었다. 어떤 선도 없이 끝까지 옳다고 생각하는 지점까지 그렇게 일했다.
서른이 넘어 나는 내가 재수 없다는 그녀와 함께 다시 다른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집에서 다소 먼, 고속도로를 매일 아침 같이 탔고 거기에도 이상한 친구들은 있었다. 그래도 농촌이라 그런가 아이들은 그래도 순박하고 가끔 이상한 녀석이 있어도 참 귀여웠다. 나는 그녀와 참 친해졌고, 젊은 사람이 많은 학교 분위기 탓에 같이 초과근무도 하며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일이 여전히 많았지만 행복했다. 저 멀리 학교 너머 보이는 산 꼭대기의 눈도 참 좋았다. 가끔 너무 학교가 가기 싫을 때, 나는 멀리 있는 산 꼭대기를 보며 '나는 등산하러 간다. 나는 등산 가는 중이다. 여행 가는 중이다.' 이렇게 되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순간은 또 지나갔다.
나의 아버지는 매일 세 시간씩 출퇴근 버스를 타신다. 아버지께 왜 회사 근처로 이사 가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너희들이 더 좋은 교육환경에 있었으면 하고 말하셨다. 그러시던 어른이 언젠가, 주변 어른이 또 그 질문을 하니 다르게 답하신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집에 가는 버스를 탈 때 너무 시원하다고 말씀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하시고도 어느새 서른아홉 해, 여전히 같은 직장에 출근하신다. 그는 지금도 너무 성실하며, 젊은 시절의 그는 태풍이 오면 우리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배를 잡으러 회사에서 잠을 자셨다. 크레인이 쓰러지지 않게 그는 그곳을 지켰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돌아오는 길, 회사 일의 모든 것이 점점 멀어질수록 자신의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가끔 너무 먼 길의 출근길도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퇴근길이 될 때, 우리의 몸은 점차 가벼워진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 지금의 이 슬픔도 어려움도 결국 내가 견디고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가끔 내가 조금 재수 없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나를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뭐 모르면 또 어떤가 그저 우리의 할 일을 할 뿐 그리고 오늘 하루를 충실히 보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기도 이제 제법 추워진다. 일 년 전 안탈리아 사진을 꺼내 작년의 코로나 시절, 우리의 아픔도 그렇게 모두 지나갔다고 이제 다시 또 한 해를 보낼 겨울이 다가온다고 말한다. 모두가 11월, 지금부터 지나가는 이 2022년의 시간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모두 건강하길 다시 한번 빌어본다. 모두 평온하길 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분명히 지나가고 있다.
덧붙임)
이스탄불에서 안탈리아까지 자동차로 8시간, 우습게도 올해 1월에 안탈리아로 페가 수#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지만 비행기 연착(무려 2시간)과 렌터카도 약속 시간보다 늦게 차를 준비하는 덕분에 거의 7시간이 걸려서야 안탈리아의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처럼 정각, 정시 출발 등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가끔은 정말 많이 느립니다. 지연에 대한 아무 알림도 없이 안탈리아 공항 불도 끄고 있는 작년 1월, 아하하하. 일 년을 살아낸 탓에 이제는 이런 느림을 받아들이지만 1월엔 마음이 참 힘들었네요.
그래도 너무 아름다운 안탈리아, 겨울엔 호텔을 제외한 다른 집은 아직 나무로 난방을 하는 곳이 많은지 밤이 되면 공기가 안 좋습니다. 코로나 끝나도 마스크 필수입니다. 저는 호흡기 질환자이니까요. 그래도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들이 1월에 옷을 훌러덩 벗던 그곳, 지나고 나니 모든 게 참 좋네요. 또 가고 싶습니다. 인간이 망각해서 참 행복해요. 아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