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뽀개는 김에 다이어트도
1. D-1
"당화혈색소 수치가 꽤 높은데요? 아직 당뇨는 아니지만 턱걸이예요. 당뇨 전단계라고들 해요. 이제 당뇨 시작이라고 봐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요."
지난 며칠 전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며 몸살이 시작되는 느낌을 받았다. 집 앞에 몇 걸음만 걸어가면 평소 자주 다니던 가정의학과 의원이 있어 진료를 받았다.
몇 개월째 이어진 야근과 잊을만하면 다가오는 철야 근무. 그리고 그것들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핑계를 대며 주 8회 음주.
이어진 음주 속에서도 '이러다 언제 한번 크게 아프겠지. 하지만 주말에 틈틈이 조깅하잖아. 뭐 내 나이에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배만 좀 들어가면 좋을텐데'라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넘기기 일수였다. 체형은 팔다리는 점검 가늘어지고 배는 나오는 소위 거미형 몸매가 되고 있었다.
접수를 마치자 간호사의 호출이 있었다.
"OOO님, 체중과 혈압 좀 재실게요. 신발 벗고 여기 올라서세요. 키도 같이 측정할게요."
지이잉. 탁.
"측정 끝났습니다. 키는 173에 체중은 83이세요."
어? 키가 줄어?
20대 때는 176으로 평균 정도였지만, 점점 줄어들어 마지막 건강검진 때 174로 알고 있지만 그새 1cm가 또 줄었다. 이러다 170 밑으로 떨어지는 거 아냐?
"이번엔 허리둘레 재겠습니다. 팔 좀 들어주세요."
허리까지? 허리야 뭐... 항상 청바지는 34를 사지만 여유가 있었는걸. 내심 허리는 자신 있었다.
"허리는 36이세요."
"진짜요?"
"네"
나는 원망스러운 눈길도 간호사를 바라보며 대기석으로 몸을 돌렸다.
"아직요. 혈압 재셔야 해요. 여기 앉으셔서 팔을 넣어주세요."
여느 병원에나 있을 법한, 한쪽 구석에 있는 혈압측정기 쪽을 가리켰다. 혈압측정기 앞에는 왜 항상 동그란 검은색 의자가 있을까? 빙빙 돌아가는...
"팔 넣어주시고, 움직이거나 말씀하지 마세요."
왼쪽 팔을 튜브 속에 넣자 간호사는 무심한 듯이 측정 시작 버튼을 눌렀다. 지 이이이 잉. 튜브가 점점 팔을 조여 오고 있었다. 한계에 다다른 듯 잠시 후 압력이 풀리며 액정 화면에 빨간색 숫자가 표시되었다.
167 그리고 102
"에고, 혈압이 높으시네요." 간호사가 말했다.
"원래 병원이 좀 높게 나오는 거 아니에요?"
"하하... 글쎄요."
자리로 돌아오니 같이 갔던 집사람의 타박이 시작되었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 맨날 늦게 오고 술 먹고 자고... 운동도 안 하고..."
나이가 들수록 아내의 잔소리 앞에서는 항상 주눅이 든다. 찌그려져 있듯이 앉아 있은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원장실에서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이요"
대기실에서 도망치듯이 일어나 원장실로 향했다. 뒤에서는 아내가 쫓아오고 있었다. 난 도망칠 곳이 없다. 앞에는 의사 뒤에는 마녀.
"혈압이 많이 높아요. 약 드셔야 할 것 같아요. 집에서 측정 안 해보셨어요? 중년 나이가 되면 한 번씩 해 봐야 해야 해요. 체중하고 허리둘레를 봐서는 당뇨도 있을 것 같은데. 오신 김에 피검사랑 소변검사도 한번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평소 안면이 있던 의사라 진료의자에 앉자마자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었고, 난 무기력하게 그 폭격을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었다.
"..."
"네. 그렇게 할게요." 잠시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아내가 넙죽 요구를 받아들였다.
내가 주인공인 이 상황 속에서 내 의견은 아무 상관없었다. 단지 처형장에 끌려온 죄수일 뿐이다. 술 자주 먹고 평소 운동 안 하고 배만 불룩 나온...
간호사에게 피를 뽑히고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소변 하고 혈액 검사는 내일 결과 나오니 다시 오세요. 혈압약도 내일 결과 보고 다시 처방해 드릴게요."
진료비와 검사비를 결제하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등짝이 따가웠다.
내일 또 혼나는 날이다.
-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