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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쿠키 Sep 08. 2021

너와 나의 연결고리 '바닐라 쿠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육아 레시피가 궁금하세요?


"아니 세상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있다니.. 내가 보고 느꼈던 30년 치의 모든 귀여움을 뛰어넘는 신기한 녀석이 나타났.. 당신과 내가 이 반짝이는 작은 것부모라니.." 그렇게 적응해가나 싶었던 육아였다. 나의 모든 걸 내어것도 육아라는 걸 인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 번은 우는 아기 앞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반짝이는 것을 돌보느라 내 눈앞이 어지러워 정말 별이 반짝였으므로. 머리에도 반짝 눈에도 반짝 별이 물에 비췄다. 예쁜 별을 껴안고는 현기증과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는, 24시간이나 되는 하루 속에서도 어느 것 하나 내 의지로 돌아가는 것이 없음에 무기력해지다가 울 때 빼곤 웃기만 하는 첫째를 보고 무장해제되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휘몰아치는 실전 육아에 두드려 맞느라 가고 나면 아쉬울 순간 임도 알 턱이 없어 그저 힘주어 열심만 냈다. 퇴근이 늦어지는 남편에게 차갑게 아기를 건네고 그손에 들린 예쁜 조각 케이크도 눈에 안 들어오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서로만 바라보던 부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나란히 아기만 바라보느라 조금씩 서운해졌고,

엄마로 아빠로 적응하느라 거울로 자신을 들여다볼 일도 줄어 갔다.



적응되는 듯 마는 듯하는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된장찌개에 넣을 우렁살을 찾느라 냉동실을 뒤지던 날이었다. 정체를 모르겠는 지퍼백 안의 검고 길쭉한 것을 발견했다.  상한 것은 바로 '바닐라빈'이었으니 말라버린 갈색 콩자루 같은 곳에  이 알갱이들이 바닐라향의 향료라는 신기함에 빠져 남겨놨던 재료들이었다. 남편과 나는 퇴근길에 함께 베이킹 학원을 다니며 신혼을 보냈다. 달달한 간식이면 신나 방방 뛰는 내게 남편이 했던 제안이었고, 한동안은 집에 있는 오븐만 바라봐도 좋은 날들이었으니 참 행복했다. 아기랑 같이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베이킹. 한때는 달콤했던 나의 부엌이 눈에 오래 밟히는 날이었다. '우리 한 번 해볼까?' 캡처해뒀던 사진과 필기해둔 레시피를 야심 차게 펼치던 날, 너와 나의 바닐라 쿠키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당시 나의 부엌 사진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내줬다면 밀가루 오감 놀이하는 문화센터에 와있다 해도 의심치 않을 매우 처참한 광경이었건만, 신이 난 아기 얼굴과 덩달아 신이 난 내 모습의 기억만이 오래오래 남았다. 무엇이 반죽덩어리인지 헷갈리는 작고 통통한 손이 그때부터 반죽 과정의 필수 도구가 되었고, 반죽덩어리들의 일부는 촉감놀이용으로 쓰이다가 라버리기를 반복했다.




그 정량의 그람수가 요구되는, 미세한 온습도 차이 천차만별의 결과로 이어진다고 배웠던 나의 이론 속의 정교한 베이킹 세계는 그렇게 완전히 틀어져갔다. 떠올려보니 그날부터 나의 파트너 꼬마 파티시에와 함께 참 많은 빵과 디저트들을 만들었다. 만들 땐 몰랐건만 다양한 쿠키들과 식빵, 도넛, 꽈배기, 케이크 등 결국 이곳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디저트들이 되어있었다. 딱딱한 교과서 같던 레시피가 여기서는 날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레시피로 태어났으니. 이를테면, 유통기한 임박한 하루견과가 눈에 띄어 부숴넣은 것이 쿠키맛을 좋게 해 아이는 견과류까지 실컷 먹었다. 서툰 수저질로 옴팡 넣어버린 소금 때문에 단짠단짠의 정석이 된 우리집표 선물용 인기 쿠키가 생겨났다.


그렇게 우리 집 베이커리에는 달콤한 추억이 쌓여갔고, '성장'을 덤으로 얻었다. 결과물이 좋지 않던 날마저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는 건 아이에게도, 몸만 커버린 어른인 나에게도 분명 엄청난 배움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버터와 설탕이 가미된 밀가루를 갓 구워낸 것은 웬만해선 맛있다는 사실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충분히 즐거웠고 많이 웃었다. 그 심플한 사실 하나가 하루 종일 집안까지 달달하게 했으니 눈앞에 놓인 완성된 쿠키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마디로 '개이득'을 본 기분이었. 현관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풍기던 날은, 남편도 바깥에서 무거워졌을 신발을 조금이나마 말랑한 마음으로 벗고 들어오는 날이 아니었을까.


내가 알던 레시피는 이미 달나라로 떠났고 상상 못 한 변수들은 앞으로도 을지어 우리에게 달려들겠지만 결국 그게 우리네들의 육아가 아닐까 싶다. 육아는 결코 교과서 같을 수 없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은 육아에도 적용된다. 각종 육아서들은 딱 참고서로만 삼고 아이와 내가 일대일 정면 육아를 할 때에야 우리는 한 뼘씩 자랄 수 있었다.(눈물로 아기띠를 하고 뭐라도 얻어낼까 매일 서점으로 출근하던 엄마가 바로 나야 나. 나도 그만큼 육아가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어려워 밤마다 오은영 박사님 영상과 애들 얼굴번갈아 보다 잠이 다.)


서툴던 하루하루가 경험이 되는 시간 동안 아이는 금방 자라 걷고 뛰고 재잘댔다. 부부는 다시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아직도 거울로 자신을 살피지 못하는 짝꿍을 토닥였다. 둘에서 셋이 된다는 것은 나란히 서서 아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손 잡고 마주 본 우리 안쪽에 아기를 품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때쯤 셋에서 넷이 되었다. 부부 단단해져가니 적어도 바깥 상황에 휘둘리는 일은 줄어갔다. 지금은 순간이 아쉬워 잡고 싶은게 시간이 되었. 


이곳엔 오늘도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어느덧 2년 6개월 경력직이 된 인생살이 5년 차 팀원에다가 이제 꼬마 신입이 하나 더 늘어나버린 우리 집 베이킹에는 어떤 재미난 이야기들이 추가될까. 과연 무슨 새로운 재료가 나타날 것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맛과 향을 풍기게 될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팀의 팀장으로서 아주 기대되는 포인트다. 그 '결과물'이 아닌 '과정'의 기대감을 깨우쳐준 나의 꼬마 스승과 오늘의 레시피를 기대해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귀여운 팀원들이 엄마품을 벗어나 사회로 뛰어들어서도, 이불속에서 현관 밖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아가서도 지금의 기억들이 시간을 돌고 돌아 한 번씩 꺼내볼 수 있을 따뜻한 위로와 달콤함이길 바란다. 그럴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너와 세 번째로 바닐라쿠키 만들던 날. 첫 번째 두 번째 베이킹 당시는 사진 찍을 정신까지는 없었나 봅니다.
이 날의 꼬마 제빵사는 반죽 섞기와 호두 올리기를 담당했습니다
기저귀 갈자마자 큰일보시어 닦이고 왔더니 빵이 타버린 날입니다. 덕분에 난생처음 겉바속촉 파운드케이크도 맛보았습니다.
야심차게 혼자(아들 몰래) 만들다가 하원시간 번개같이 치운다고 눈사람도 진저맨도 얼굴이 없습니다
분명 팀원은 늘었는데 이상하게 팀장은 더더더 바빠졌답니다 ^^



'너희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자라나길 기도하는데, 이 부족한 엄마에게 먼저 빛과 소금이 되어주고 있는 작은 생명체들에게 오늘도 감사하며.. 엄마도 이 말랑한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계속 성장하는 어른이 되겠다고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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