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닐라쿠키 Sep 23. 2022

엄마, 옥상에 왜 피가 났어요?

'어린이들의 말'에 대하여


아직은 모기가 눈에 띄 초가을입니다. 유치원 숲 체험에서 모기 밥이 되어 돌아온 첫째 아이 몸 곳곳의 흔적을 보니 2년 전 무덥던 여름밤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4살 아들이 울상을 해서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엄마 모기 빼줘~많이 들어갔어~


"응? 모기 물렸어?"

"아니~ 아니~"

"아아 모기 잡아 달라고?!" 

"아니야 그거 아니고~ 으아아 앙"


그러더니 답답하다는 듯 엄청나게 울기 시작해 저를 당황시킵니다. 허둥지둥 아이를 달래다가 한쪽 다리에 일렬종대로 모기 물린 자리를 발견합니다. 복숭아뼈 쪽은 이미 많이 긁었는지 꽤나 붓고 피도 맺혀 있었습니다. 아이고 간지럽고 아팠겠다. 물로 씻기고 급한 대로 아이스 겔 패치를 붙여주었는데도 아니 모기를 빼 달라며 더 크게 우는 겁니다. 기저귀 갈다 만 엄마는 어디 간 거냐고 100일 된 둘째도 울기 시작해 집은 순식간에 둘 울음소리로 시끄러워지고 맙니다. 거의 오열에 가까워지는 데시벨에 제 정신도 아득해져 갈 때쯤에서야 첫째 아이의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세상에, 아이는 지금까지 모기 물린 자리가 '톡' 튀어나온 것이 모기가 그 자리에 '쏙'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다리에 들어간 모기 3마리를 빼 달라는 말이었어요.. '와아.. 모기 물린걸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단 말이야?' 저는 도무지 멈출 기미라고는 안 보이는 남매의 눈물판 속에서 같이 힘을 보태 울어버릴까 싶던 얼굴이 미소로 바뀌었던 귀여운 추억을 회상합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상상도 못 한 포인트에서 웃음을 줍니다. 때로는 그 생각 회로가 너무 엉뚱하고 기발해 감탄을 자아냅니다. 머리를 탁 치게 하고, 부모의 가슴을 녹이기도 해요.


여유가 사라져 가는  하루를 잠깐씩 멈춰 세워주던 큰아이의 말들을 소개합니다.


인터넷으로 둘째의 한복을 고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왜 다 체포했어요?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습니다. 하루 종일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에 푹 빠져 살던 아이의 눈에 당의 저고리 안에 모아진 두 손이 체포된 사진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저는  타이밍 늦게 그 뜻을 알아채고는 그대로 노트북을 덮고 드러누워 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의 착장 사진만 수십 장 골라보고 있던 제 옆에 서던진 말이었는데요, 지금도 당의가 디피된 한복집을 지나갈 때면 그날의 그 웃음소리와 그 온도와 그 순간의 냄새가 그대로 소환됩니다. 각인된 추억이렇게 모든 오감의 기억을 불러옵니다.


다른 에피소드는 너무 피곤해서 걷고 있어도 눈이 저절로 감기는 날 찾아왔습니다. "있잖아 민아~ 엄마도 충전이 필요해, 오늘만큼은 조금만 일찍 자자" 말하고는 무작정 방에 들어가 단호하게 미등을 켰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날따라 안 자겠다고 울고 펄쩍 뛰는 대신 그대로 얼어 사색이 되는 겁니다.



... 엄마도 잘 때 저거 충전기 꽂는 거야?



"헉... 아니"


졸려서 제정신이 아니던 저는 뭐라 마땅한 설명도 못하고는 방 안 충전기에 꽂힌 핸드폰과 그 옆에 빈 충전선을 약간은 섬찟한 기분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결국은 늦게 잤습니다)



언젠가는 무찌른다는 단어를 몰라서 나쁜 사람은 왜 문지르냐고 묻습니다. 양면테이프는 양념 테이프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물웅덩이를 1년 넘게 물 엉덩이라고 부르던 것, 형아 누나들 틈에서 가위바위보를 처음 배우고 "안 내면 진다~"를 "안 넘어진다~"로 듣고 넘어졌으니 자기가 이겼다고 방방 뛰던 장면 등 너무나 귀여운 서투름입니다. 어쩐지 서투름을 그저 예쁘게만 이해받을 수 있는 지금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먹는 것과 관련된 일화들도 다양합니다.

견과류 피스타치오를 보고 이거는 무슨 조개냐고 물었던 것, 핫도그를 처음 먹던 날 가운데 가시를 빼 달라던 , 김밥에 반짝반짝 참기름 바르는걸 까치발 들고 보더니 엄마 김밥에 꿀 발라? 신기하게 묻던 말들생각납니다.


조개라 불리우던 이녀석은 현재 아이의 최애 견과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집 식탁 위에서 은색이 금색으로 변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것은 '갈치'였습니다.


엄마한테는 비린내 나는 생선에서 발라줘야 할 가시가 있는 생선이 되었을 뿐인데, 구워진 갈치 토막을 보자마자 은색 물고기가 금색 물고기가 되었다고 툭 이야기하는 표현의 귀재가 바로 아이들입니다.


시고 달콤 달콤 달콤해~


과일에서 새콤달콤한 맛이 모두 나는데 비교적 달콤함이 더 크다는 뜻을 단어의 개수로 멋지게 표현합니다.


아이들의 언어는 뱉는 그대로가 예술입니다. 아무 편견이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입에서 톡톡 튀는 팝핑 캔디처럼 터져 나와요. 미처 메모해 두지 못한 캔디들이 아쉬울 뿐입니다.


멋있어 보이려고 칭찬받으려고 하는 말도 아니고 상 받으려고 골똘히 쥐어짜 낸 표현도 아닙니다. 겉과 속이 똑같아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 컴퓨터와 프린터가 있다면 아이들의 머릿속과 언어일 것입니다.


이런 순간마다 저는 잠깐씩 멈춰 서게 됩니다. 그게 단 몇 초뿐이어도 말이죠.  몇 초가 저의 남은 하루를 반전시켜주던 경험을 놓칠  없습니다.


아이들의 말은요, 무뎌지는지도 모르게 둔해진 엄마 마음을 다시 깨트려주고 피어나게 돕는 단비입니다. 굳어지는지도 모른 채 굳은살이 박여가는 머릿속을 반짝 비추어주는 햇살 같습니다. 탁해지는 세상을 말 한마디가 시원한 소나기처럼 씻어주는 기분입니다. 너희들 때문에 더 빨리 늙어가는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깊은 곳의 아이를 꺼내어주는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아이가 6살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자라 버렸고 이런 재미도 줄어  즈음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아들이 또 심각하게 물어옵니다.


엄마엄마엄마!! 옥상에 왜 피가 났어?!
어어?! 20층에도 피! 피 있어!!!


", 뭐라고? 어디 피가 묻어있다는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엘리베이터 안에서 둘째 머리를 묶어주다 말고 이 정신없고 시시한 엄마는 눈을 뜨고 주변을 살핍니다.



'아.... 피난층......'



아.. 옥상은 정말로 피난층이 맞았습니다.

(20층에도 정말 '피'가 있네요.)



그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차가 딸꾹질한다고 깔깔대지 않고, 더 이상 코가 막혀 일어난 아침마다 자고 나서 콧구멍이 작아졌다고 다시 크게 해 달라며 통곡하지도 않습니다.


조그만 두 애들을 키우다 보면 나의 시간표는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만 봐도 분명히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구나 합니다. 


어떤 날은 하루의 대부분이 지치는데 이런 찰나의 순간들이 그 하루를 살게 하네요. 피로감 눌려 '육퇴'(육아 퇴근) 시간만 기다려놓고는 할 일도 고 잠든 애들 얼굴을 보고 있는 저는 머리가 나쁜 엄마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나의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며 살아도 제법 살만하게 살아지는 것, 이 자리를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자식을 키우는 육아의 신비함 같습니다.



세 살배기 우리 딸은 앞으로 또 얼마나 재미있는 말들로 저를 깨우고 녹이며 자라날까요? 

엄마~ 엉덩이 엉덩이!!


소나기가 남기고 간 물웅덩이를 가리키며 딸아이가 저를 부릅니다. 둘은 어쩔 수 없는 남매인 걸까요, 아니면 이것만큼은 제 발음이 문제였을까요? 생각해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너와 나의 연결고리 '바닐라 쿠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