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이공

사랑하지만 사랑만은 주지 않는 나의 도시

by 포춘쿠키

스물하고 다섯, 아는 이 하나 없는 동남아의 한 도시,

가방 하나 가지고 떠난 나는 마흔 살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8년 7월

대학 졸업반이었던 그해 여름, 중동 항공사의 승무원이 되고팠던 나는 마지막 면접의 고베를 마시고 예정에도 없었던 동남아의 어느 도시에 인턴쉽을 잠시 떠났다.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며 잠 쪼개며 야간대학에 복수전공까지 했던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여느 평범한 20대 여대생이 아니었기에 몸이 아픈 아버지, 피아노 전공 언니, 앞길이 창창한 중학생 남동생.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과 이 모든 걸 잊고 싶은 그 순간 어쩌면 도피였는지도 모른다.


한국을 떠나던 그날의 공항은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비행기에 타서 잠시 눈을 감았는데

눈이 부어서 뜰 수도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난 그날의 이유는 오늘도 기억나지 않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내가 수십 년을 살았던 고향 땅을 하늘에서 바라보면서 설렘보다 남겨질 가족걱정, 소중한 친구들과의 추억 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겨울 법했던 다섯 시간의 비행이 여러 걱정과 설렘으로 가득해질 무렵

"여러분은 호찌민 떤선녓 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기내 방송과 함께 사이공에 도착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냄새와 온몸을 감싼 습도, 벌떼가 몰려다니는 듯한 오토바이들의 소음

처음 도착한 그날의 사이공 공항의 냄새와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너무 강렬하다 못해 머릿속에 다른 생각하나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도시의 첫 느낌.

나의 도시 사이공.


[Saigon 사이공]

월남은 알아도 호치민은 모른다는 외 할머니

외 할머니의 막내 동생 우리 집에서는 사당동 삼촌이라고 불리는 엄마의 외삼촌

남 베트남이 통일되기 전 십여 년 가까이 미군 냉방 설치 근무 했던 도시 사이공.

사이공에서 현지 여대생을 만나 아들 둘까지 낳고 사이공 함락 마지막 날 가족을 두고 혼자만 탈출해 몇 달을 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한 게 못내 미안하고 죄스러워 죽는 날까지 몸도 마음도 앓다가만 외삼촌 할아버지의 이야기의 도시에 내가 왔다.


그 시절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군인의 신분으로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몇 달을 배를 타고 왔던 그 땅을

삼십여 년 후 나는 총과 칼은 들지 않았지만 인턴이라는 이름만 고급스럽게 바뀐 노동자로 밟게 되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 속 아오자이 입은 학생들을 지나면서 저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의 가족이자 삼촌의 피 붙이일수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귀 고막이 터질듯한 오토바이 부대 속을 지나갈 때에도

"삼촌 할아버지 저 왔어요 저 여기서 무사히 잘 지내게 해 주세요"라고

겁 많은 나는 어디 하나 의지할 데 없던 이억 말리 타지에서 마음속으로 할아버지에게 그렇나마 빌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공항에서 나와 동기를 태운 봉고차는 호찌민 한 대학 앞 기숙사에 차를 세웠다.

"이곳이 여러분이 베트남어도 배우고 먹고 자고 생활할 곳입니다"


끊임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 속 우거진 나무들

동남아에 왔다는 걸 잊지 말라는 듯 야자나무 아래 빌딩과 야자열매를 양 어깨에 맨 할머니

집에서 입을 것만 같은 잠옷 상하 복을 입고 맞춘 것 마냥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는 잠옷의 아줌마와 학생들.

2000년대에 살던 나는 다섯 시간 만에 시간여행으로 내가 태어났던 해 1980년대로 시간여행을 온 것만 같았다.


나는 매일 다섯시간을 호치민 인문사회대학이라는 곳에서 베트남어를 배우게 되었다.

내 의지가 아닌 앞으로 파견가야 할 한국 기업에서 베트남어를 기초라도 할수 있는 관리자를 원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적으로 배워야 했다.


현직 대학생인 내가 베트남에 와서 다시 학교를 다니다니...

우리 나라 처럼 여느 대학의 캠퍼스가 아니고 입시 재수학원 단과반 같이 단과대학별로 캠퍼스가 쪼개져 나눠져있는 시스템으로 나는 인문사회대학의 한 캠퍼스를 다니게 되었다.


우리를 안내한 한국어학과 학생 설명으로는 이 캠퍼스가 한국인 유학생이 많아서 가장 높은 빌딩과 새 건물을 올릴수 있었다는 능숙한 한국어로 우리를 캠퍼스 여기저기를 소개 했다.


-2편에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