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더 미워졌다.

by 포춘쿠키

우리 엄마는 평생 일만 하셨다.

내가 내 딸 만한 시절 우리 집은 동네에서 꽤 나 큰 금은방을 했었고

나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금은방집 둘째 딸이었다.


하나 나는 부유하게 산 기억보다는

텅 빈 집 식탁에 차려진 점심을 혼자 찾아서 먹거나

그 시대 동네 아이들이 목에 하나씩 걸고 다녔던 그 열쇠 목걸이는 나 역시도 당연한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교문밖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가 그렇게도 부러웠는데

우리 엄마는 교문 밖에서 나를 기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건 확실한 기억이고

학교에 우산을 가져다주는 친구 엄마 아빠의 그 손을 빌려 우리들 (언니와 나...)

우산을 건너 건너 전혀 주는 게 비 오는 날 엄마가 우리에게 해주는 최대의 배려였다.


국민학교 시절엔 학교에 잘 오지 않는 엄마가 그렇게도 원망스러웠는데

중학생이 되고 나니 도시락 대신 급식만 신청하라는 엄마가 그렇게도 미웠다.

고3 대학 진학 상담 때는 바쁜 엄마 대신 아빠가 버버리 코트를 입고 학교에 왔는데

너와는 다르게 아버님이 미남이며 호들갑을 떨던 담임 보다

어쩌면 마지막 상담마저도 아빠를 보낸 엄마에게 섭섭함에 알 수 없는 미움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해외 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20대의 끝이 채 가기도 전에 향수병과 외로움에 지쳐 결혼이라는 가장 나쁜 도피처로 덜컥 도망을 쳐 버렸다.

(사실 오랜 해외생활에 지친 나는 남편보다 엄마라는 자리가 더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혈연단신 하나 없는 그곳에서 아이를 임신했고 그렇게도 그리웠던 엄마 곁에서 출산도 했다.

잠이 많고 겁이 많았던 나는 엄마가 되는 것도 두려웠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나니 나에게 필요한 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엄마였다.


아이를 낳고 난 첫날은 훗배앓이의 아픔만큼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날이었다.


소중한 생명을 품고 고귀한 출산을 하고 나는 엄마가 아닌 아이가 되어버렸다.

왜 그렇게도 눈물이 나는 건지.. 내 감정은 왜 그리도 널뛰기를 하는 건지

아이를 안지도 않았는데 팔목은 왜 그리도 아픈 건지...

아이가 우는 이유도 아이를 달래는 방법도 왜 어느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는지

이렇게 힘든 거였다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정작 나에게 필요한 건 엄마인데 왜 내 품에는 뜻 모를 울음만 가득한 아이가 안겨있는지...


왜 우리 엄마는 친 딸인 내가 출산을 했는데도 우리 엄마는 나와 나의 아이가 아닌

본인이 업으로 삼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아기를 보러 나가야만 했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더 미워졌다.


내가 절실히 엄마가 필요할 때 그 어느 순간에도 엄마는 내 옆에 없었다.

출산을 하고 팔목이 끊어질 거 같은 고통에도

지구반대편에서 아이를 낳으러 엄마 곁에 왔지만

엄마는 매일 아침 미역국 한 드럼통을 끊여놓고 엄마의 일터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50일 남짓 한 아이를 안고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반사적으로 흐르는 게 눈물이었는데 그날만큼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어 피가 날 정도로 마음속으로 눈물을 삭히고 삭혔다.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마음을 더 이상 다치고 싶지 않았다. 엄마라는 천륜을 끊어버리고도 싶었다

그러기엔 나는 겁만 많고 모질지 못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고통스러웠던 출산과

누구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나와 남편의 청춘을 갈아 넣은 육아로 나는 마음도 몸도 병을 얻었지만 아이만큼은 건강하게 초등학생이 되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타국살이를 접고 한국에 왔지만

여전히 나에게 엄마는 달려올 수가 없다.

내 몸이 으스러져 땅속으로 꺼져 가는 고통의 날에도 엄마는 평생을 그랬듯 엄마의 일이 우선이다.

얼음장 보다 차갑고 원리 원칙으로 살아온 엄마의 루틴에 손녀 육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더 미워졌다.

나에게 엄마는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다. 차갑다 못해 깨지지도 않는 한겨울의 강바닥 같다.

따뜻한 봄이 오면 꽁꽁 얼어붙은 강바닥 같은 내 마음도 녹아내리길 바라본다.

오늘도 나는 나의 딸에게는 이야기 척척박사 멋쟁이 할머니로 우리 엄마를 한껏 포장해본다.

엄마의 꽁꽁 언 마음을 숨기고 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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