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살아지더라

by 포춘쿠키

길고 긴 해외생활을 끝내고 그리도 원했던 한국 생활이 시작됐다.

"6시 내 고향 "

고향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눈물이 나와 먹먹해지던 나에게 한국은 그저 새로 태어난 천국 같았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친정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라도 다녀오면

꿈에 그리던 엄마 품에 안겨 있듯 두 다리 쭉 뻗고 잠들 수 있었고, 밥에 김치만 먹어도 진수성찬을 먹은듯한 엄마 집밥은 얼음장에 생채기 난 내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고 한국에서의 한 해가 지나가 버렸다.

주부, 마담,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나에게도 한두 가지 일의 소 일거리가 주어졌고

한국 사회 적응을 핑계로 아르바이트라는 일들도 한두 번씩 나가게 되었다.

해외생활에서는 적성에 맞지 않았던 사무직 회사원을 대기업이라는 명함을 버릴 수가 없어 억지로 끌고 다니며 나를 괴롭혀왔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몸을 쓰는 일을 해도 내 자존감은 높아만 갔다.

아마도 적성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마흔이 넘어서 처음으로 깨달은 거 같다.

20여 년 전 첫 월급과 다르지 않았던 급여를 받음에도 어떤 일에도 내가 쓰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남을 돕고 그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음을 스스로가 기뻤고 행복했다.

운 좋게도 어느 날 우연히 본 공고에서 모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었고 회사 모토만큼이나 혁신적인 그곳은 마흔도 넘은 나에게 무 경력인 나를 무한한 가능성만 보고도 최종합격이라는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고맙고 고마운 회사.

기대 이상으로 어려운 교육, 쟁쟁한 실력과 경력자들과의 교육은 마흔을 넘은 나에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로 자존감이 바닥으로 치 닿는 매일이 도전이자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매일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앞으로 나가가야 할지 멈춰야 할지 스스로가 결정할 수 없는 매일의 불안에 대해 나 조차도 물음표를 새기며 매일이 도전에 도전을 하며 지나간다.

"살아보니 살아지더라|"

예전에 무심코 이 말을 들었을 이십 대 중반에는 이 이야기가 무척이나 무책임하다 느꼈고

헛웃음 칠 정도로 매사에 모든 게 자신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인생의 시간이 돌고 돌고 살아 보니 이 마음이 가장 내 마음에 꽂히더라

그래 살아보니 다 살아지더라... 지나고 보니 아무렇지 않은 거처럼... 무던히 내뱉은 이 한마디가 많은 것에

지치고 지친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힘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힘주어 힘내라. 다시 일어서라 말 대신..

살아보니 살아지더라..

이 시대를 살아나가는 청년들, 아버지, 어머니,,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너무 힘에 넘치는 긍정적인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어쩌면 오늘이 그런 날의 하루 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다 멈추고 싶은 그런 날 중 하루 일듯..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마무리 한 모두들에게 해주고픈 한마디...

살아보니 살아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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