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부산의 어느 평범한 가정의 둘째 딸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우리 집의 기억에는 티브이에서는 야구가 항상 틀어져있었고 아빠의 탄식도 함께했다.
걸음마를 배우고 자전거를 배울 때 사직운동장 앞마당은 인생의 추억의 대부분이 되었다.
아빠 손을 잡고 종이 고깔모자를 나눠 쓰고 야구가 뭔지도 모르던 꼬맹이는 운동장에만 가면 사주는 사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함성과 열기, 그 뜨거운 사직 땡볕에도 눈을 반쯤 찡그린 채 잠이 들곤 했다.
국민학교 2학년 시절, 동네 슈퍼에 가서 껌 몇 개와 롯데 선수들 사진이 든 (요즘 말로 포토카드 같은 ) 네모진 상자를 들고 집에 와서 아빠와 선수 이름 맞추기를 하던 그 가을이 우리 아빠가 가장 행복해했던 롯데의 우승이었다.
올해 나는 순수한 한국 나이로 마흔두 살이 되었고,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 엄마가 되었다.
20대 초반부터 시작한 해외생활에서는 나의 유일한 구원처는 롯데 자이언츠였다.
아빠가 매일 그래 왔듯이, 시차가 어떻게 되든 한국 시간 6시 이 후애는 항상 집에는 야구가 틀어져있었고
사실 인터넷이 잘 되지 않던 해외 생활 초기에는 롯데 야구가 너무 그리워 한국 비디오 가게에 들러 롯데 야구만 녹화본을 떠서 팔 수 없냐는 부탁과 한인 피시방에서 롯데 야구 관련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는 게 해외생활 중 향수병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매일 이기든 꼴찌를 하던 사직 야구장의 향수는 다녀온 사람만 안다.
어릴 적부터 자라온 고향 같은 곳,
가족이 유일하게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곳,
내가 어른이 되고 지구반대편에서 찾아가도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그곳
잘하는 날 보다 못하는 날이 많았지만 롯데 자이언츠라는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나의 어릴 적 추억과 기억의 대부분이라는 것과 세상에 태어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게 롯데 야구라는 거였을 거라 믿는다.
죽이니 살리니 탄식과 욕이 섞인 야유가 싫어서 하는 보이콧이 아니라 자식 같은 팀,
아무리 간절히 응원해도 나오지 않는 성적,
'봄데' '꼴데' 같은 수식어를 낳는 매년 겪는 연패의 수령의 좌절감,
가을에는 우리 빼고 하는 남의 잔치를 지켜만 봐야 하는 씁쓸함.. 이 모든 것 몇십 년간 응축된 롯데 팬으로
살아온 애환과 설움 그리고 어쩌면 오기와 독기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보다 더 할지도 모른다.
한국에 가장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 그리고 나의 버킷리스트는 퇴근 후 아이 손을 잡고 나의 아빠처럼 사직 야구장에서 웃고 춤추고 노래 부르며 인생을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꿈꾸던 부산도 아니고 , 현생에 치어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푸릇푸릇한 잔디냄새 가득한 야구장에서 퇴근 후 마시는 맥주는 인생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나의 삶의 일부분이다.
올해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우리 팀이 가을야구를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거 같아 매년 지옥 같던 봄이 가을을 기대하는 가장 봄 다운 봄이었다.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 보다 힘들다는 '롯켓팅'을 뚫으며, 전국 구장 도장 찍기도 다니며 가을에는 더 행복할 꿈만 꾸었다.
하지만 롯데의 응원가처럼 영광의 순간은 왜 이리도 멀고 험한지... 왜 유독 우리에게만 고난과 시련을 주는 건지.. 12연패를 창원에서 직관하면서 내 인생사 보다 더 굴곡 진 이 팀에 대한 투혼투지는 나에게만 있는가 하는 의문과 좌절감
이기는 법을 잊은 팀에게 무조건적인 응원만이 답인가 하는 마음은 롯데 팬으로서 그 어떠한 마음고생보다 힘들었을 2025년의 여름이었을 거다.
평소 나쁜 말 한번 안 하던 아빠가 롯데야구만 보면 험한 말과 탄식이 가득했던 아빠는 백발의 노신사가 되었고 나는 중년이 되어 아빠와의 안부 인사를 전날 롯데 야구의 승패로 서로의 안부를 시작하고 끝낸다.
남들이 보기엔 그렇게까지 야구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게 과하다 생각하겠지만
내가 바닥을 치고 가장 힘들 때 의지도 하고, 희망도 가지고, 꿈도 꿔볼 수 있게 해 준 게 롯데자이언츠라서..
언제부터 우리가 우승권이고 가을야구 당연히 가는 팀이었냐고.. 난 올해도 스스로를 위안하고 마음속 깊은 기대를 다시 내려놓는다.
마음 같아서는 단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묵힌 욕을 발사하고 싶지만 마음 한편에는 사랑한다고 외치는 이중성, 안보다 절대 안 본다고 해놓고서는 녹색창 스코어를 몰래몰래 훔쳐보며 안심하는 매일 밤.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 평생 나의 동반자 롯데자이언츠
제발 우리 아버지 살아계실 때 가을에 멋들어지게 야구하고 우승하는 거 보게 해 주길 오늘 밤도 기도해 본다.
사랑한다 나의 롯데 사랑한다 나의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