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 내린 따뜻한 빛 한 줄기
2023년 11월, 우리는 일본에서 인도로 재파견되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가족 모두가 그 낯섦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아이들도, 나도, 남편도
어떤 익숙함도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뭄바이에 내려앉았다.
회사에서 같이 파견된 분들은 전부 일본 분들
우리는 유일한 한국 가족이었다.
도움받을 사람도, 기대볼 이도 없었다.
그 현실 앞에서
마음 한편이 무너지는 걸 매일같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기적처럼 들려온 소식이 있었다.
이 아파트 안에,
또 다른 한국 가족이 계시다는 이야기.
가슴이 뛰었다.
한 줄기 빛 같았다.
그리고 정말 운명처럼
늘 후문으로 다니던 내가
그날따라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장을 보고 돌아오시던 그분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그 한마디가
이 낯선 땅에서 나를 살게 만든 첫 번째 숨이었다.
그분은 인도 생활만 6년이 넘은 분이셨다.
아이들의 또래도 같았고,
나이도 같았고,
마음도 이상하리만큼 잘 통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깊은 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그리고 말 못 할 외로움까지
그 모든 게 나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정작 ‘ 외롭다’는 말을 꺼내는 건 너무 두려웠다.
약해 보일까 봐
괜히 오해받을까 봐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더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밝은 척을 했고
더 괜찮은 척
더 강한 척을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단단하게 포장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말없이 눈빛으로 짧은 한숨으로도 마음을 읽어주는
그분.
거의 일주일에 한 번,
점심을 함께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인도에서 겪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던 막막함, 외로움,
울음을 삼키며 견뎌야 했던
가끔은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하루들을
그분 앞에서는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표정과 기색만으로도
“알아요”라고 말해주던 사람이었다
언어가 되지 않아 주눅 들고
내 아이들보다 언어가 느린 나 자신이 부끄럽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 낯선 인도가 원망스러웠던 날들,
그 마음들을 처음으로 꺼내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가족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
말끝마다 눈물이 흐를까 삼켜야 했던 그 말들을
그분은 아무 말 없이 들어주셨고
그 따뜻한 침묵이 내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나도 몰랐던 내 이야기들이
그분 앞에서는
천천히,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누군가가 내 말을
‘진짜 내 말’로 들어주는 경험.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나는 인도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인연은
나에게만 위로가 아니었다.
우리 아이와 그 집 아이도 함께
서로 오가며 정을 나눴다.
나는 아이들에게 독서 수업을 해주며
어느새 가족보다 가까운 시간을 나누었고,
우리 일상 깊숙이
그분 가족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분이 갑자기 중국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잘 됐어요”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하지만 그 순간
내 마음 안에 뚫려버린 커다란 구멍에서
텅 빈 메아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덥고 습한 이곳 인도에서
나는 오히려 안에서부터 서늘하게 식어갔다
햇살은 따갑게 내리쬐는데 가슴속은 계속
시리기만 했다
인도에서의 생활은
이제 더 이상
그분이 함께한 인도의 모습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내가 인도에 있을 동안 당연히 늘 함께 할 것이라는...
그만큼 나는
그분 없이 이곳에서의 삶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도 많이 의지했고,
내 진짜 마음을 보여준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2023년 12월부터
2024년의 봄, 여름, 겨울, 지금까지.
그분과 함께 보낸 1년 반의 시간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 따뜻한 눈빛,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던 손길,
밥 한 끼에도 담겨 있던 위로.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나는 인도에서도
조금씩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분은 떠나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겠지만
마음에 남겨진 그 시간들은
더 선명하게 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리움이 아프게 밀려올 때면
나는 그때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분이 웃으며 말했던,
“여기서도 우리, 충분히 잘 해내고 있잖아요”라는 말...
맞아요.
그 말처럼
조금은 외롭지만
더 단단한 마음으로 살아보려 합니다.
당신이 있어,
나는 괜찮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언젠가 꼭 전하고 싶었어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특히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큰 행운이라는 걸,
이 낯선 땅 인도에서 다시금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외로움 속에 내 마음을 조용히 들어주고,
말하지 않아도 나의 복잡한 감정을 알아주었던 단 한 사람.
그 시간은 제게 삶이 내게 건넨 따뜻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그래서 더 고맙고, 그래서 평생 기억하고 싶은 오늘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 외롭고 지칠 때,
작은 등불 하나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서로의 삶을 비춰주는 따뜻한 사람이요.
당신은 내게
햇살 같았고,
바람 같았고,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 같았습니다
그 시간들이 있어서
나는 인도에서의 이 낯선 생활을
견딜 수 있었고,
살 수 있었고,
때로는 웃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있어,
나는 괜찮을 수 있었습니다.
몸은 비록 멀어지지만 마음만은 늘 함께해요
중국에서도 찬란하게 빛날 영은 씨 가족을 응원합니다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따뜻한 마음 감사했습니다. 평생 기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