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나는 쌓이고 있다
가끔은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려는 걸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매일 나 자신을 밀어붙이며
버텨내고 있는 걸까.
사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가 많다.
오늘 하루만큼은 쉬자고,
조금은 느슨해져도 괜찮지 않냐고
스스로를 설득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나는 다시 일어난다.
도시락을 싸고, 운동을 하고,
아이들과 남편을 보내고 나면
혼자 남은 조용한 집 안에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또 하루,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영어, 일본어.
진도가 눈에 띄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 칭찬해 주는 것도 없고,
성취감을 느낄 기회도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같이 듣고, 따라 말하고, 쓰고, 외운다.
그토록 반복했던 쉬운 문장 하나가
필요한 순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얼어붙은 입술과,
허탈한 마음.
그럴 땐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는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자주 무너졌다.
단체 모임에 참석했던 날이 있었다.
작은 대화에도 끼지 못한 채
그저 웃기만 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내가 알아들은 것처럼 반응했지만
사실은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말이 안 통한다는 건
단지 불편한 게 아니었다.
외딴섬에 혼자 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는 아무와도 연결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언어가 빨리 느는 아이들.
학교 생활도, 친구들과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어쩐지 나를 작게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영어나 일본어 표현을 물어볼 때면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나보다 먼저 나아가는 아이를 보며
불안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 줄이라도,
그게 나를 붙잡아주는 힘이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날들이
의욕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다.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하루에도 수없이 찾아온다.
“그만할까?”
“내가 이걸 해서 뭐가 달라질까?”
“진짜로 영어로 말할 수는 있을까?”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쓰게 되는 날이 오긴 할까?”
책상 앞에 앉아도,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흘러갈 때가 많다.
기억도 흐릿하고, 집중도 되지 않고,
어쩌면 나는 너무 늦게 시작한 게 아닐까
스스로에게 끝없이 질문하게 되는 시간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앉는다.
왜냐면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도, 아내도 아닌
오직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은
이 공부하고 있는 시간뿐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수없이 무너져도
책상에 앉아 있는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안에서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끌어안은 채
나는 오늘도 앉는다.
그렇게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타지 생활, 엄마의 역할,
주재원 아내라는 낯선 정체성,
그리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이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려면
‘나만의 중심’을 붙잡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그게 나에게는 공부였고,
조용한 나만의 루틴이었다.
어느 날은 그런 생각도 했다.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조용히 속으로 되뇐다.
“보이지 않아도, 나는 쌓이고 있다.”
그래서 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도, 할 수 있어.”
“나이 들어서 시작해도, 늦지 않아.”
“모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해낼 수 있어.”
누구보다 느리고,
자꾸만 돌아가고,
실수투성이인 걸 알면서도
나는 다시 책을 폈다.
다시 입을 열었고,
다시 한 문장을 따라 했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그게 나를 붙잡아주는 힘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끌어안고
또다시 새벽을 시작한다.
결과보다 중요한 건
매일 다시 시작하는 나의 태도.
그 태도가 결국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내 삶을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