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지 않을까 봐 더 조심스러웠다
중2인 딸아이는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하루에 몇 마디밖에 하지 않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표정도 말투도 예전 같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가가는 일이 오히려 거리를 더 벌려놓는 건 아닐까,
매번 조심스럽고, 무서웠다.
사춘기라는 건
이해받고 싶지만 말로는 표현하지 않는 시기 같다.
엄마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다가가고 싶지만, 혹시라도 상처를 줄까 봐
물러서게 되는 시기.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중심에 두고
빙빙 도는 행성 같았다.
서로를 바라보되,
조심조심 가까워지지 못하고 맴도는.
아이와 나는 일본에서도,
인도에서도
낯선 환경 속에서 함께 버텼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친구,
그리고 엄마인 나조차도 낯설었던 문화들.
한국에 있었다면 좀 더 수월한 사춘기를 맞이했을까.
그런데 아이는
그 안에서도 잘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어쩌면 억지로 웃고 있는 건 아닐까
늘 마음이 쓰였다.
말을 걸고 싶었다. 함께 하고 싶었다.
“힘들지 않아?”
“요즘 어때?”
하지만 아이는 늘 짧게 대답했다.
“괜찮아.”
“그냥.”
그 ‘그냥’이라는 말속에
어떤 감정이 숨어 있는지 몰라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서운했다.
이해하려고 애쓰면서도,
왜 나는 이렇게 멀게 느껴져야 하는 걸까.
나도 상처받고, 나도 외로운데
엄마니까 당연히 괜찮아야 하는 걸까.
그래서 딸아이의 방문 앞에
멍하니 서 있을 때가 많았다.
노크도 못 하고,
그저 문 앞에서 한참을 있다가
조용히 돌아서 오곤 했다.
어쩔 땐 화도 났다.
“말 좀 해주면 안 되겠니?”
“엄마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모르겠니? “
“나도 정말 힘들어. 엄마 그만하고 싶다!!! “
참으려던 말들이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었다.
그리고는 또 후회했다.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내가 더 어른스러웠어야 했다고.
그런 일이 있었다.
딸이 일본학교에 다닌 지 1년쯤 되었을 무렵.
같은 반에 단 세 명뿐인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우리 아이에게
등을 돌린 적이 있었다.
그 작은 교실 안에서
그 아이와 말도 하지 않게 된 두 달.
딸은 평소처럼 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안다.
그 시간들이 얼마나 조용히, 깊이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는지를.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 깊게 파인 그늘과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 눈물자국들
그 사건이 있었을 때,
나는 정말 당장이라도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께 묻고,
그 친구에게 “ 도대체 왜 그러냐”라고 따지고 싶었다
차라리 내가 대신 부딪히고
아이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혼자 해결할 거야. 엄마, 절대 나서지 마.”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운하고, 속상하고,
도와주고 싶어서 속이 타는데
딸아이는 그마저도 싫다고 했다.
나는 그저,
문 앞에서
그 아이의 작은 세상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기다림은 솔직히
두려움이었다.
이 일이 계속 길어지면 어쩌나,
아이 마음이 더 멀어지면 어쩌나.
그날들이 계속 이어질까 봐
밤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걸 보는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아프고 무서웠다.
정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런데 두 달 뒤,
봄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말없이 내 옆에 와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 싸웠던 그 친구와 이야기했는데
이제 다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기뻐서, 안도해서, 간절히 원했던 일이라서,
그리고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깊이 깨달아서.
나는 그날,
아이를 믿는다는 게
이렇게 큰 일이구나
다시 배웠다.
엄마는
무언가를 대신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아이 곁을 지켜주는 사람,
언제나 믿어주는 편이면 되는 거구나.
사춘기 딸에게 다가가는 일은
조용한 기다림인 것 같다.
엄마라는 이유로
무조건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옆에 있는 사람,
언제든 다가가도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사랑하지만 말로 다 할 수 없고,
가까이 있고 싶은데 자꾸 멀어지는 이 시기를
우리는 함께 지나고 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딸과의 거리를 재며,
가끔은 웃고,
가끔은 멀어지고,
그러면서도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그 거리 안에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여전히 있다는 걸.
지금은 서툴고 불편한 말투,
멍하니 서 있었던 문 앞,
함께 울고 싶었던 어느 날의 밤들이
훗날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기억이 될 거라는 걸.
사춘기는 아이만 통과하는 시기가 아니라
엄마인 나도 함께 걸어가는 시간임을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오늘도 딸과 함께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사춘기를 건너는 중이다.
닿지 않을까 봐 더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더 진심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