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안 통해도 마음은 전해진다

처음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전부

by 김소연

일본에서 10개월을 살다가

우리는 인도 뭄바이로 이주하게 되었다.

일본어는 간단한 인사밖에 할 줄 몰랐고,

그마저도 완벽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지낼 땐

학교에 한국인 선생님이 계셔서

행정이나 상담, 소통이 조금은 수월했다.

하지만 뭄바이의 일본학교는 달랐다.

우리는 그 학교 역사상 최초의 한국 가족이었다.


정원 35명의 교실엔

전부 일본인 아이들뿐.

우리 아이는 전학 온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나는 오롯이 혼자 모든 걸 해내야 했다.


말 그대로,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처음’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했다.



처음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던 날,

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손엔 식은땀이 맺혔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미리 외워둔 인사 한마디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 순간 속으로 작게 속삭였다.

“그래도 해보자.

한 번은 용기를 내보자.”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마음을 전해 보기로 했다.


하루는 아이 학교 친구의 엄마들을

조심스럽게 집으로 초대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정성스럽게 점심을 준비했다.


한국식 반찬을 만들고,

예쁜 그릇에 하나하나 담으며

그들의 시간과 마음을 환영하고 싶었다.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툰 일본어로 인사하고,

음식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날,

많은 말을 나눈 건 아니었지만

내가 전하고 싶었던 건

말이 아닌 마음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 마음은 조금씩 전해졌다.


또 한 번,

내 진심을 다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그날만큼은,

아이에 대해 내가 얼마나 진심인지

꼭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준비했다.

한 문장, 한 문장 한국어로 적은 뒤 그것을

다시 일본어로 적어보며 번역기를 돌리고,

어색한 표현은 바꿔가며

정성스럽게 내 마음을 정리했다.


그렇게 작성한 상담지는

무려 5페이지가 넘었다.

아이의 장점, 걱정되는 부분,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질문과 부탁.


하루에 한 장씩,

입으로 되뇌고 손으로 써보며

잠들기 전에도, 아침을 시작하면서도

나는 그 문장들을 외웠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마음만큼은 단 한 글자도 틀리고 싶지 않았다.


상담 당일,

교실 문 앞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던 순간.

손에는 땀이 나고,

가슴은 마구 뛰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줬다.

“괜찮아.

말은 부족해도,

너는 준비했으니까.

마음은 꼭 전해질 거야.”


그리고 정말,

서툰 문장 끝에서도

선생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따뜻한 끄덕임 하나에

나는 다 전해졌다고 느꼈다.


나는 언어가 서툴렀고,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단 한 번도 서툴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마음까지 막힐 필요는 없다는 걸

나는 그때, 내 온몸으로 배웠다.


지금도 나는

무언가를 나누고,

서툴더라도 내 마음을 전하려 노력한다.


꼭 여행 다녀오면 기념품을 챙기고

한국에서 온 작은 것들도 건네며

“나는 당신이 고맙고,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을 마음으로 전한다.


그게 나를

이곳에서 살아가게 해 준 가장 큰 힘이었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을 다해 하루를 살아간다.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은,

분명히 전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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