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라며 사회와 가정에서 내가 행해야 할 일들과 규칙에 대해 배워간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들과 생활하며 금기시되거나 제한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그에 맞춰서 행동을 한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경계선을 맞춰가는 것이다. 이러한 경계선을 그을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부모이다. 부모는 아이를 통제하거나 탐색을 허용하고 권장함으로써 자녀의 행동 범위의 경계를 그어준다. 되도록 많은 탐색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것이 자녀의 인지 발달에 도움이 됨을 앞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의 자녀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탐색 행위를 해야 한다. 친구가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을 호기심의 마음에 빼앗아 탐색 행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규탄받을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을 부모는 제한함으로써 자녀들은 친구의 장난감을 빼앗아선 안된다는 규칙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들은 부모의 감시가 있건 없건 행해질 때 바른 사회성이 길러질 수 있게 된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선 안된다는 것, 친구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 어른을 공경하는 것들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 규범으로써 교육을 통해 알게 된다.
자유와 제약은 국가에서 시민에게 제도로써 허용하며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관습으로써 허용한다. 국가는 법으로써 시민에게 적절한 자유를 제공한다. 부모는 경험을 통해 자녀에게 적절한 자유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유사한 관계를 통해 바른 부모상을 생각해 보자.
1. 독재형 국가와 부모
절대 왕정이나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법의 제정 권한을 한 명의 독재자가 지니게 된다. 왕의 말이 곧 법이 된다. 현재에 대한 통찰적 시각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현명한 왕은 국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적절한 자유와 제한은 국민들을 기쁘게 하며 평화와 부를 선물할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왕이 드물게 나타날 수 있지만 그러한 사람은 역사적으로도 흔치 않다. 대부분의 왕은 권력을 확고히 하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나라를 이용하지 결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는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이다. 독보적 권위를 지닌 아빠나 엄마에 의해 가정의 규칙들이 정해질 때 자녀들은 태어나면서 한 번도 자유를 알지 못하게 된다. 권위에 순종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선'으로 여겨진다. 부모의 명령이 자연의 절대적인 법칙인 듯 받아들이며 이에 대한 관점이 사회로 그대로 이어져 순종적 성인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2. 귀족정 국가와 부모
소수의 뛰어난 귀족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는 어리석은 왕이 등장할 위험이 독재형 국가에 비해서는 낮다. 혈통을 통해 자격을 인증받은 소수의 귀족들이 직접적, 간접적으로 국가를 다스리며 법과 제도를 만든다. 시민들은 노동자 계층으로써 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시민들은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는 경제활동이라는 주어진 소명을 다하지만 정해진 계급을 결코 벗어날 수는 없다.
귀족정 부모는 부부가 원활히 규칙들을 제정하고 육아 원칙을 세울 수는 있지만 자녀의 의사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는 아직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존재로 부부가 정해준 삶의 경계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현명한 부부의 토론을 통해 정해지는 규범들은 아주 현명하고 유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자녀의 주체적 삶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3. 민주정 국가와 부모
민주정에서 시민들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주체로 격상된다. 그들은 직접적, 간접적인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제도를 만들어 낸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민주사회의 모습이며 시민들이 투표를 통해 결정한 내용에 시민이 직접 책임지는 형태를 띤다. 현명한 시민들이 많아져 올바른 민주정을 띄게 되면 더할 나위 없는 정치 체제가 되지만 시민의 눈의 역할을 하는 언론이 타락하여 시민들이 진실을 알 수 없게 되거나 우매한 시민들이 많아지게 되어 현명하지 못한 지도자를 뽑게 되었을 경우 국가는 퇴보할 수 있다.
민주정 부모는 자녀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자녀는 부모와 동일한 발언권을 가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가정의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설령 그로 인해 손해를 보더라도 자녀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을 지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원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녀의 발언권이 지나치게 강해져 아직 어린 자녀가 일차원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규칙들이 제정된다면 장기적으로 가정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
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녀들의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어린아이들은 일차원적인 욕구 충족이 중요하기 때문에 육아 초기에는 귀족정 부모가 필요하다. 부부간 합의하여 현명한 규칙들을 제정하여 적절한 육아 환경을 자녀에게 제공한다면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들은 성장한다. 인지능력이 강해지며 독립성을 지향하게 되어 귀족정 부모에 반항심을 느낄 수 있다. 그 시기는 자녀가 사춘기일 수도 있고 초등학교 시기일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귀족정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되면 자녀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자녀에게 이롭건, 해롭건 자유의지를 빼앗긴 것은 인간에게 큰 고통을 준다. 나는 자녀의 요구에 맞춰 귀족정 부모에서 민주정 부모로 자연스럽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기에 자녀에게 줄 수 있는 발언권은 1/3명에 해당하는 정도의 작은 발언권일 것이다. 하지만 점차 자녀의 의식이 성장하고 타당한 주장을 하게 되면 부모와 마찬가지로 1명에 해당되는 발언권을 주고 함께 가정의 규칙들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우리 자녀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녀의 독립성을 점점 인정하고 세워주는 것이 보다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