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부모라면 누구나 거치기에 하나의 관습과 문화처럼 행해져 왔다. 다행히 요즘 부모들은 육아책을 많이 사서 보고 서로 육아정보를 교류하기도 하며 자녀에게 어떤 육아를 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육아정보들 속에서 내 아이를 위한 정답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인간 특유의 복잡성으로 어릴 적 특정 육아 방법이 원인이 되어 아이에게 특정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그 누구도 쉽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에 의해 정립된 육아 정보가 아닌 떠돌아다니는 정보들은 대부분 개인의 경험적 사건들인 경우가 많아 내 아이에게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은 더 많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양육 방식은 매우 민감한 문제여서 아무도 내 자녀를 위한 육아법에 대해 진심으로 조언해 주지 않는다. '책 육아가 좋다더라.', '유대인 육아법이 좋다더라.'정도의 피상적 정보만이 회자된다.
결국 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선 부모 스스로 공부하고 정보를 모아 자녀에게 가장 적합한 육아법을 생각해 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육아 책을 섭렵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그중 정말 내 자녀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건져내는 낚시꾼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나와 자녀에 대해 깊은 이해가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적절한 육아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내 기본적 기질은 어떠한가?', '자녀를 위해 어느 정도의 교육비를 사용할 수 있는가?', '내 자녀의 성격은 어떠고 사회성, 언어 능력은 어떤가?' 등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자녀를 위한 다양한 육아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자녀가 아주 어린 시기에선 따뜻한 사랑과 적절한 양육, 세심한 관심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의 인지 능력이 커지면서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의 양도 많아지고 체험할 거리도 다양해진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극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일반적으로 많은 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아이와 계곡에서 혼자 배운 아이의 수영 실력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부모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어떤 양육 옵션을 선택해 어떤 교육을 할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는 교육법(영어 유치원, 비싼 사교육)을 무조건 행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지만 때론 사교육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내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주고, 독서력을 길러주며, 감정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과 같은 보다 원론적이며 부모 입장에서도 타인에게 맡기는 행위가 아닌 주체적 행위가 되는 그런 교육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육아 관계론과 균형 잡힌 자녀 발달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사회성, 인지, 감정, 언어, 운동)는 각박한 육아 환경에서 보다 주체적 육아를 하도록 큰 그림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를 다시 조명해보고 자녀의 양육에 어떤 교육적 옵션을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육아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섯 가지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육아 관계론도 각각의 연결성과 영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 구성 요소들과 각 개체는 서로와 관계를 맺으며 영향력을 행세한다. 이런 관계론적 사상은 독자가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좋은 관점이 될 수 있다. 조직 내에서 개체 간의 관계, 기업 내에서 조직 간의 관계, 기업과 기업, 기업과 국가, 국가와 국가,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통찰하는데 좋은 관점이 되며 결과적으로 통찰을 제공한다. 세상은 이제 모두 연결되었다.
이런 연결된 세상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서른이 지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에 나는 무엇이든 배우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그 애매모호한 이중성 속에서 난 오늘도 세상이라는 거친 해류 속에서 내 배의 선장이 되어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작은 배를 이끌어 간다.
나는 나의 글 속에 단순히 육아를 넘어선 세상과 인간의 통찰에 대한 파편을 넣으려 많은 고민을 해왔다. 부디 독자가 지혜로 한 발짝 나아가는 시간이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