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끝자락에서,

2023년을 맞이하면서.

by 팔월의날씨

나의 집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살고 있는 H. 늦은 시간 그녀를 태워다 줄 때면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은 밤, 여느 때처럼 H를 데려다주는 길에 그녀가 말했다.


- 나는 네가 쓰는 글이 좋아.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난, 몇 년 전 인스타그램에 과거 궁상맞은 생각이나 감정들을 시나 글로 써서 올리다가 운과 시기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아마추어 작가들을 대상으로 출판하는 출판사와 연결이 되어 나를 포함해 6명 공저로 시집을 냈었다.


얼마 전 절판된다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던 책


당시 군복학하고 나서 1-2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인데, 공저출판이라는 희귀한 경험을 하면서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구체적으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과 같은. 하지만 나는 글 쓰는 능력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고, 혼자 책을 낸다거나 강연을 하기엔 어느분야에 전문지식이 없고 뛰어난 언변이나 진행경험도 없는, 남들과 다른 독특한 경험도 하지 않은 보통 사람이었다. 아울러 '취업'이라는 현실에 가까웠던 시기였던지라 마음을 접고 쫓기듯 휴학을 내고 18년도 끝자락 공무원시험에 뛰어들었다.

시험준비를 시작하고 난 뒤 글과 자연스레 멀어졌다. 시험에 붙으면 다시 글을 읽고 써야지 했다. 그리고 후에 언젠가 단독 출판으로 책을 내겠다는 작은 꿈을 품고서 열심히 두꺼운 책들을 열심히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20년도 하반기 시험에 합격했다. 그렇게 교육기관에 입교하고 몇 개월 교육을 받고 나와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나 갈망하던 단어 그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될 줄 알았다. 내가 원하는 차 타고 다니고, 번듯한 집도 가지고 행복하게 결혼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은 쉽지 않았고, 내가 바라는 차를 굴리기엔 통장잔고와 매달 들어오는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집을 산다는 건 더욱 어렵다는 걸 몸소 느꼈다. 결혼에 대해서도 걱정이 생겼다. 그랬다.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만 늘어난 어린아이였다. 또 내 몸은 교대근무에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동기들은 아침에 퇴근하고 타지에 놀러도 가던데. 난 쉬는 날 잠자기 바빴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잠을 자고 또 자도 피로감이 해소되지 않았다. 책을 사서 읽는다거나, 글을 쓰기에는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글과 멀어졌다.


시간이 지나 22년 8월 새로운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이곳에서는 2년을 있어야 하는데 다행히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나이가 나와 대부분 비슷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전에 있던 부서와 비교하면 받는 스트레스는 훨씬 적다. 이제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겨서일까. 어느 날부터 가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글과 너무 멀리 지낸 탓일까, 간단한 글을 쓰는 것조차 너무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져 내가 써 내려가는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글을 쓰기가 싫었다.


- 갑자기 무슨 소리래.

- 네가 썼던 글 중에 좋아서 저장한 거 몇 개 있는데 뭘.


라면서 휴대폰 갤러리를 뒤적이더니 시 하나를 읽어주는 H.


H가 읽어준 예전에 썼던 시


- 아 이거 좋지. 내가 쓴 것 중에 맘에 드는 글 중에 하나지. 사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들을 보다 보면 몇 개는 좀 잘 쓴 것 같긴 하더라.

- 나는 니 글이 좋아. 오늘처럼 나 태워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네 생각 말해주는데 공감이나 위로받을 때도 많아서 이런 것들을 산문으로 쓰면 어떨까 싶은데.

- 그래 생각해 볼게. 사실 요즘 글을 쓰고 싶은데 뭐랄까 글을 쓰는 게 어려워. 글이 안 써지고 머리가 굳어있는 느낌이랄까.


H를 내려다 주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가오는 23년에는 천천히 글과 다시 가까이해보자 다짐을 했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고, 자주 글을 쓰면서 남기고 싶은 감정이나 생각들을 붙잡아두어야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내 이름으로 책을 내보자고. 다시 작은 꿈을 갖고 살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