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픽션들(7)

페인팅 / 확장

by 김지수


8.

전시 공간 구성과 동시에 페인팅 작업도 병행되었다. 작업은 '프로파게이션', 즉 모체에서 개별적인 개체가 확장되어 가는 식물의 생식 방식을 차용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림의 소재는 주로 우리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세계, 그리고 나를 매혹하는 것들이었다. 주된 소재로는 먹고 남은 음식 재료의 껍질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 해변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 여행지에서 눈길을 끈 이름 모를 건축 양식의 문양, 파리 지하철의 벽화, 누군가의 서재에서 본 형형색색의 책 등이 있었다.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스냅샷이나 스크린샷 형태로 작업에 활용되었다.


230215_Fotowall_49psc_Final-18.jpg
230215_Fotowall_49psc_Final-16.jpg
230215_Fotowall_49psc_Final-24.jpg
230215_Fotowall_49psc_Final-40.jpg
230215_Fotowall_49psc_Final-30.jpg


작업은 물질과 형상을 직접 다뤄보아야 가능해지는, 즉 계획할 수 없는 요소들이 상당 부분 차지했기 때문에 첫 번째 시리즈는 그림을 그려가며 방향을 잡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그림의 형태는 표면 위에 덧입혀졌다가 부서지고 뭉쳐지며 다시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제작되었다. 사물을 관찰하는 시간은 초반의 몇 분에 불과하다. 이후 닦아낸 형상을 재구성하기 위해 색과 비율, 형태, 즉흥성, 계획된 머릿속 구성 간의 균형을 가늠하며 화면을 채워 나간다. 첫 번째 시리즈는 디지털 이미지의 형상과 색을 바탕으로, 모였다가 흐트러지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색의 덩어리들이 유기적인 형태로 균형을 이루었을 때 마무리되었다.


IMG_1778.JPG
IMG_1727.JPG
20240202-IMG_1716.jpg



붓질과 사용하는 물질의 연속성은 다음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다만 색상은 기존의 클로즈업 사진 이미지가 아닌, 스냅샷과 스크린샷으로 생성한 주변 디지털 이미지에서 추출한 색을 바탕으로 한다.



20240112_163837.jpg
20240112_163849.jpg


9.

작업의 강도와 유연성을 동시에 확장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다.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두 명의 작가에게 글을 부탁했다. 이들은 주어진 이미지들에 대해, 혹은 이미지들을 매개로 A4 한 장 분량의 자유로운 형식의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저예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작업 기간은 2개월, 보수는 80유로로 설정했다. A는 그림에 대한 아무런 컨텍스트 없이 오직 이미지만을 보고 글을 쓰고 싶어 했다. 반면, M은 '그림과 픽션'이라는 주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뒤 이미지를 매개로 명상과 형식에 대한 고민을 진행했다. 작가들에게 손글씨 원본과 스캔본을 요청했고, 스캔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색을 입혀 작품으로 완성했다.


230215_Fotowall_49psc_Final-51.jpg
230215_Fotowall_49psc_Final-52.jpg


확장으로서의 작업은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작업은 '픽션들'이라는 큰 틀 아래에서 다음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가상의 프로파게이션 과정을 엮어가고 있다.


사진 = 김지수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픽션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