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기록
7.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주 작가와의 회의를 진행할 때면 이번 회의에 필요한 질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첫 번째로는 미리 받아본 작가 노트와 포트폴리오를 꼼꼼히 훑어본 후에 던진 질문들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많은 리서치와 고민의 흔적은 정제되고 단단해져서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었는데, 그 글들을 나의 시선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질문의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덕분에 다듬어진 형태가 아니라 날것의 가벼운 구두 언어들로 이루어진 작업 세계를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팔아보는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될지 되지 않을지는 모르는 세계이지만, 전시를 통해 작품 판매 혹은 작품에 관련된 것들을 팔아보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품 판매 외에도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오갔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 중, 선도록*과 포스터를 제작해, 작품을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상품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디지털 프린트를 이용해 저렴하게 제작한 소규모 책자, 포스터, 플라이어**를 빠른 시간 안에 디자인부터 제작, 그리고 두 손에 받아보기까지의 과정을 다룰 수 있었다. 남주 작가는 리토그래피*** 기술을 이용해 핸드메이드 북커버와 포스터 모티브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로 했다.
세 번째로는 전시의 공간 구성이었다. 남주 작가도 나도 전시 주제에 맞는 새로운 작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일찍이 작품 리스트를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각자 할 수 있는 최대의 영역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오갔다. 드레스덴과 뮌헨의 거리 차이, 그리고 전시 공간을 아무 때나 드나들 수 없는 물리적 제한 때문에 내 쪽에서 사전에 미리 해놓을 수 있는 것은 준비해 놓고 싶었다. 그래서 3D 공간 모델링과 전시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작품 리스트를 이용해 몇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는 제안을 했다. 남주 작가는 꽤나 부정적인 기색을 보였다. 그 이유는 큐레이션을 전공하는 학생들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했던 이전 경험이 별로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의견은, 결국 공간에 직접 작업을 걸어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며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는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리 계획을 세우더라도 실제로 작품을 걸었을 때 적합하지 않아 모든 것이 바뀌게 될 것이 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남주 작가의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했다. 일단 걸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각각의 작품에 필요한 공간, 그리고 작품과 작품 사이의 거리 등을 고려했을 때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부분 말이다. 모든 것이 바뀔 가능성이 있더라도, 공간에 들어갈 작업의 색감과 부피가 대략적으로 어느 정도를 차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작업 옆에 어떤 다른 작업이 맥락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작업 공간을 몇 주에 걸쳐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리저리 작품을 걸어볼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하루나 이틀 안에 벽을 정리하고 셋업을 마쳐야 했다. 그래서 청사진의 1안과 2안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물론 최악의 경우, 준비한 모든 것을 뒤엎고 하루 전날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 전날 작품과 공간을 마주해 주먹구구식으로 작업을 배치하고 싶지는 않았다.
과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 생기더라도, 준비가 부족해 공간이 비어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작품을 걸어보고 위치를 조정하거나 바꾸는 것은 전체적인 그림과 공간의 균형을 점검하고 디테일을 다듬을 때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청사진은 말 그대로 제안일 뿐 그것만을 따라야 하는 규칙이 아니며, 다수의 작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단체전이 아니라 듀오 전시이기 때문에 더 유연하게 변형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시각 차이를 좁혀 나갈 수 있었다.
우리의 회의는 경청하고 질문하며 공동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이미지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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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록(扇導錄): 전시 시작 전에 제작된 자료집으로, 기획 의도나 준비 과정을 담아 전시 기획자, 작가, 또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문서입니다.
**플라이어(Flyer): 홍보용 전단지로, 작은 크기의 인쇄물에 간단한 정보와 이미지를 담아 대량 배포를 목적으로 제작됩니다.
***리토그래피(Lithography): 석판화 제작 기법의 하나로, 기름과 물이 섞이지 않는 성질을 활용한 평판 인쇄 방식입니다. 예술 분야에서는 작가가 직접 제작한 한정판 작품으로 많이 활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