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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Jul 02. 2024

안경은 개나 사람이나 불편하다.- 시력 일대기 1

푸코와 나의 안경

수의사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강아지용 고글을 샀다. 가리는 도구 덕에 푸코의 내성적인 성격을, 작아지는 눈을 위장한다. 소심하고 쫄보같던 녀석도 고글을 끼면 힙하고 쿨한 강아지가 된다. 존재만으로 존재를 위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보는 사람의 입장이고 정작 녀석은 고글을 끼면 고장난 듯 걸어다닌다. 야생성이 강한 푸코는 몸에 무언가를 걸치는 것을 극도로 불편해한다. 마치 나처럼.

지금은 라섹수술 끝에 온전한 시력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나도 녀석처럼 눈이 불편했던 때가 있었다. 중학생 때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나의 시력을 앗아간 건 공부도, TV도 아닌 인터넷 소설이였다. 중학생 때 ‘그놈은 멋있었다.’가 전국 중고등학생의 마음을 강타했다. 그당시 학교 도서관의 책은 늘 대여중이였고, 이모티콘이 절반은 섞여 있는 인스턴트 같아 보이는 책을 부모님이 사주실리도 없었다.

그렇게 브라운관 모니터(CRT) 앞에 앉았다. 매일밤 ‘그놈은 멋있었다’와 혹은 그 아류, 파생 작품들을 보기 위해. 부모님 눈에는 두꺼운 모니터 앞 딸의 행위는 책을 읽는다기보다 그냥 ‘컴퓨터 하며 노는 여중생’으로 비춰졌다. 게다가 그때의 국룰 답게 컴퓨터는 거실 한 가운데에 놓여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이면 마치 바퀴벌레 한 마리처럼 스르륵 기어나와 화면의 빛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새벽 2~3시까지 까페에 들어가 인터넷 소설을 보곤 했다.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허겁지겁 전원을 끄고 소파에 누웠다. 어떤 날은 눈이 너무 건조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게 시력 저하의 신호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일 년 가까이 그런 생활을 이어갔다. 무더운 여름밤 모니터화면의 열기와 함께.

점점 시력이 흐릿해져갔다. 칠판의 글자, 친구들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여 분간이 되지 않을정도였다. ‘안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싶지 않아 끝까지 거절하다가 결국 안경점을 찾아갔다. 양쪽 시력은 0.1에 가까웠고, 그동안 눈을 혹사시키고 있었던 게 발각됐다. 여전히 부모님은 ‘우리딸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해서’로 알고 계시지만 차마 ‘지은성 오빠 때문에’라고는 고백하지 못했다.


안경과 함께 하는 삶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온도 차가 많이 나는 장소를 오갈 때, 라면을 먹을 때 같은 보편적인 문제를 뛰어넘어, 수영을 즐겨했기에 수경까지 도수를 넣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도수가 들어간 수경은 비쌌다. 기스를 함부로 내선 안됐다. 물건을 ‘모시고’ 사는 조심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로써는 무언가 조심해야할 물건이 생긴게 성가셨다. 조심성과는 거리가 더 멀어져 안경을 벗어두고 자다가 밟아서 안경테가 휘어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가끔은 버스에 두고 내려 안경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엄마는 '얼굴에 쓰는 걸 도대체 어떻게 잃어버리는거야.'라고 하지만 안경이 콧등을 짓누르는 무게감은 언제든 벗어버리고 싶은 것이였다.

거기에 이상형 중 '안경 안 낀 여자'라는 이상한 항목을 갖고 있던 아빠는 안경낀 한창 못생길 때의 여중생을보며 '흠..'을 연달아 소리내셨다. 비만 오면 활개치는 곱슬머리, 멀대같이 큰 키 위에 빨간 색 뿔테 안경을 썼으니 그럴 법도 했다. 요즘에야 안경 낀 아나운서가 TV에 나오지만(그럼에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그 당시에는 안경 낀 여자의 이미지는 굉장히 한정적이였다. 여러모로 '안경을 끼고 싶지 않음'이 나의 결론이였는데 그걸 잠시 잊고 있었다.


다행이도 "고글을 끼면 =산책을 간다."는 신호를 푸코는 점차 익혀갔다. 출발 전 고글을 건네면 순순히 얼굴을 내어주지만, 이내 산책 장소에 도착하면 머리를 털며 어색한 걸음걸이로 고글이 얼마나 불편한지 표현한다. 나도 그의 걸음걸이를 보며 벗겨달라는 또다른 신호를 익혔다. 여기저기 쿵쿵 부딪히는 녀석이기에 고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덕분에 안경을 썼던 불편한 감각이 생각났다.


미안하지만 푸코는 앞으로도 쭉 고글을 쓸 것이다. 반면 나는 안경잽이 5년의 생활을 벗어나 새로운 삶이 시작했다.


-시력 일대기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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