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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Jul 16. 2024

시력을 잠시 잃다 - 시력의 일대기2

라섹 수술과 강아지의 녹내장

안경이라는 불편한 도구와의 삶에서 한단계 나아가 ‘콘택트 렌즈’로 넘어갔다. 렌즈를 처음 착용한 날이 기억난다. 아마 고등학생 때 숙박 여행을 가기위해 시도했을 것이다. 비교적 눈이 들어간 함몰안인 나는 렌즈를 ‘뽑아’ 내기 위해선 두 손가락으로 눈을 잔뜩 벌리고 세균 하나 없는 손으로 렌즈를 만져냈다. 눈은 시뻘개 졌지만 안경없이 세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물론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안경을 벗어냈다고 외모의 드라마틱한 효과같은건 없었지만 그래도 빨간 뿔테 안경을 쓰는 것보다는 봐줄만했다. 야자를 할 때도, 밤새 술을 마실 때도 언제나 렌즈를 착용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렌즈는 착용하면 편리했지만 눈은 점차 건조해졌고, 결국 시력은 마이너스 3에 가까워졌다. 365일 중 350일은 렌즈를 끼고 다녀서인지 건조함과 이물감이 잦아졌다. 이젠 이별을 해야할 때를 직감했다.

두부가 외칩니다. 안경시러~

부모님은 ‘눈알에 레이저를 쏴서 각막을 깎아내고, 다시 붙이고’와 같은 일련의 행위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단호했다. ‘안경 이제 그만 쓰고 싶어.’ 당시 같이 일했던 K와 이런 저런 병원 정보를 수합하고 드디어 강남의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엄청난 분업시스템을 갖춘 신논현 사거리 한 복판에 있는 병원은 아주 정교하고 믿음직한 공장같았다. 수술 후 엄마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저팔계가 쓸 법한 가볍고 얇은 선글라스를 끼고 방바닥에 누웠다. 마취가 풀리자 통증이 아려왔다. 아무런 감정변화 없이도 눈물이 이렇게 많이 흐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눈이 보이지 않자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가족의 도움 없이 밖으로 나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며, 누워서 책이나 휴대폰을 보는 가장 물리적 가동이 작은 행위 조차도 허락되지않았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잠에 들 수는 없었으며, 그냥 누워만 있었다.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방바닥과 하나가 되어 심지어 방바닥에 눌러붙을 것처럼. 불편함보다 지루함이 뚫고 나와 지루함을 쫓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누워서 라디오 듣기’ 유투브가 보급되기 전 91.9mhz를 즐겨들었다. 다이얼을 돌려 소리가 선명해지는 주파수를 찾아들고 깨끗한 목소리와 음악이 나오면 공부하는 동안 라디오를 들었다.

오랜만에 누워서 라디오를 듣는다. 보통 한 프로그램이 2시간씩 진행된다. 세상 사람들의 소식, DJ의 말재간을 너무 많이 들었는지 둘쨋날이 되니 라디오가 물렸다. 부모님의 돌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으로만 보는 게 익숙한 사람이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보통 사람들의 시각의존도는 80~90%가 넘는다.) 결국 3~5일은 꼼짝말고 집에 있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당부가 해체되자마자 엄마를 산책 도우미 삼아 나섰다. 강한 해는 안됐기에, 선글라스를 끼고 노을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열대야를 잔뜩 안은 구름들이 널어진 노을은 여전히 선명하다. 제대로 본 것인지 알 도리는 없지만. 고작 삼일인데도 시력을 잠시라도 잃는다는 것은 괴로웠다.

엄마와 5일만의 외출

오늘은 푸코와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섰다. 푸코의 당찬 산책 걸음걸이를 보며 어째 녀석은 보이지도 않는 길을 저렇게 당차게 걸을 수 있는지, 어느덧 계단을 어렵지 않게 오르는 녀석을 보며 오감 중 한 감각이 무너졌다고 생활이 불가능했던 그 때가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앞이 보이지 않는 불편함과 막막함. 그럼에도 인간과 달리 아마 개는 늘 그렇듯 새로 공간과 사물을 인식하는 법을 깨우쳤을 것이라는 소망을 한다. 집, 자주 오가는 산책길도 나름대로의 맵핑을 끝내지 않았을까. 녀석의 원래 주된 감각기관이였던 후각을 중심으로 모든 감각체계가 다시 재구성되었길 조심히 바라본다.


푸코는 집안의 구석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외출 후에는 많이 피로한 지 꼭 침대로 올려달라고 한다.


덧.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는 것과 선천적으로 시력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또한 세상을 인지하는 구성 체계가 굉장히 다르다고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라는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덧. 수술 때문인지 밤운전이 여전히 힘들다. 아무리 닦아도 여전히 뿌연 느낌. 눈의 피로도가 굉장히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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